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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d Sep 11. 2020

말 것: 한껏 꾸며보려는 의욕

어제보다 잘 쓰는 법_11일 차

취업 준비를 오래 했다. 당시는 모르는 번호로 걸려온 전화가 그렇게 반가웠다. 아마도 면접을 보러 오라는 연락일 테니. 통화한 순간부터 들뜬 마음이 면접 장소를 찾아갈 때도 이어져 유독 자주 길을 헤맨 시기이기도 하다. 삶의 방향을 비유하는 '길'이 아닌 진짜 '길' 말이다.


한번은 역시나 잘못 든 도로에서 뜻밖에 한 책방을 발견했다. 면접까지 시간이 조금 남아 안을 둘러보기로 했다. 서점 분위기라는 것이 대체로 소박하게 마련인데 이곳은 규모가 꽤 있으면서도 우아하고 쾌적했다. 강남 한복판에 이런 곳이 있나 싶을 정도로 고요하고 편안한 공간이었다.


사보 기자가 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그 서점을 찾았다. 서점 주인에게 인터뷰를 요청한 것. 제안한 후 3개월 만에 성사된 자리였다는 점과 더불어 변함없이 인상 깊은 공간이 인터뷰에 대한 기대감을 더했다. 의욕에 차서 답변을 끌어모았다. 인터뷰이와 클라이언트, 팀원, 교열 선배 모두가 흡족할 만한 원고가 나올 것 같았다. 이 생각은 원고를 완성할 때까지 변하지 않았다.


이제 와서 돌아보건대 의욕에는 알코올이 함유된 것 같다. 강도가 세면 판단력이 흐려지는 것이 영락없이 취기가 오른 꼴이다. 그 정도에 따라 맥주(4.5도)가 되기도 하고 연태 고량주(40도)가 되기도 한다. 서점 주인과의 인터뷰 당시 내 의욕은 화요(25도) 정도였던 듯하다. 글을 맺은 뒤 정신을 차리기까지 하루 정도 걸렸으니.


뒤늦게 비유와 미사여구가 넘치는 글을 썼음을 깨달았다. 읽는 내내 감정도, 표현도 과한 느낌이 감돌았다. 대개 이런 글은 시간이 지나고 다시 보면 창피하다. 다행히 마감 전 의욕이 '깨서' 급히 원고를 다듬었다. 수정 전  원고를 아무도 보지 못했다는 게 얼마나 다행스러운 일인지!


기대하면 의욕이 생긴다. 그것이 문장을 치장하는 방향으로 번지면 부담스러운 글이 되고 만다. 따라서 나는 의욕이 스멀스멀 올라올 때마다 스스로 최면을 건다. '문장은 꾸미는 것이 아니라, 더 정확한 단어를 골라 배치하는 것'이라고. 매번 의지가 필요한 대목이다. 그러면 글을 쓸 때 의욕은 도움이 된다. 마치 술의 힘을 빌려 작업을 한다는 어느 예술가처럼, 나도 비로소 의욕의 힘을 빌릴 수 있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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