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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d Oct 06. 2020

할 것: 주어를 밝히는 섬세함

어제보다 잘 쓰는 법_36일 차

식재료 전문가 김진영 MD를 인터뷰한 적이 있다. 최적의 식재료를 찾기 위해 24년간 60만km가 넘는 거리를 다닌 그는 '셰프들이 찾는 전문가'로 통한다. 내로라하는 맛 연구가인 셈. 다과를 겸한 인터뷰 장소를 고르며 유독 신경을 쓴 이유다. 고민 끝에 여의도의 한 브런치 카페를 정했다. 메뉴판을 보며 "아무거나 다 괜찮아요"라는 그의 말을 듣고 나서야 마음이 놓였다.


김진영 MD는 얼마 전에도 '딱 1년 3개월 동안만' 기른 닭을 찾기 위해 해외에 다녀왔다고 했다. 그런가 하면 밀키퀸(유기농 쌀의 한 종류)과 곱창김만 있어도 맛있는 한 끼를 떼울 수 있다고 자신했다. 흔히 족발이 맛있고, 샐러드가 신선하다고 말하듯 보통 사람들이 메뉴 단위로 맛을 따진다면, 그는 식재료 자체의 맛을 음미했다. '맛있음'이라는 감각을 해부하는 사람이었다.


당연히 맛에 대한 엄격한 기준이 서 있을 터였다. 그럼에도 그는 '맛있다' 표현을 쉽게, 자주 말했다. , 그가 맛있다고 말할 때는 항상 주어가 붙었다. 가령 '육류 공급자들이 가장 맛있는 고기로 꼽는다' '저는 콩나물이 듬뿍 올라간 쫄면이 제일 맛있던데요'라는 식이다. 인터뷰를 마치고 원고를 정리하며 깨달았다. 이것이 그가 타인이 느끼는 맛과 더불어 맛이 가진 다양성을 존중하는 표현이었음을.


글을 쓰다가 생략된 주체를 따져보면 내가 아닐 때가 있다. 생략하지 말았어야 하는 경우다. 검색어에 자동 완성 기능을 적용하듯, 큰 고민 없이 자연스럽게 문장을 맺으려 할 때 그렇다. 일종의 '눙치기'다. 김진영 MD와의 인터뷰 이후 적잖이 자극을 받은 나는 느낌이나 감정을 드러내는 문장에서 보이지 않는 주체를 살피는 습관을 들였다. 그러면 더 구체적인 문장을 쓸 수 있다. 예시를 살펴보자.


효과적인 시스템: 누구에게 효과적인지? 인사 담당자인지, 홍보 담당자인지, 아니면 IT 부서인지?

비극적인 결말: 누가 슬픈 것인지? 주인공이 슬픈 것인지, 직원이 슬픈 것인지, 아니면 회사가 슬픈 것인지?

가장 중요한 전략: 누구에게 중요한지? 관리자인지, 실무자인지, 아니면 경영자인지?


물론 문맥상으로 파악이 되거나 '모든 사람' '필자' 같은 뻔한 주체라면 생략하는 게 맞을 것이다. 꼭 없어진 주어를 찾아 붙이지 않더라도, 주체를 찾는 작업은 솔직한 문장을 쓰고 있는지 스스로 돌아보게끔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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