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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소 반디 Jul 22. 2021

여름 방학, 안녕하신가요

소소교육 열일곱 번째 이야기


지난주 목요일, 첫째 아이가 방학식을 했고 약 35일간의 여름 방학이 시작되었다. 어린이집에서도 방학은 있었지만 1주일과 약 한 달은 체감지수가 현저하게 다르다. 코로나가 심해지면서 일주일에 두 번 있던 방과 후 수업도 모두 방학 후로 연기되었고, 마스크라도 끼고 아이 친구와 집에서 이것저것 프로그램을 해볼까 계획하던 것도 무산되었다. 어린이집 휴원으로 둘째도 함께 긴 방학을 보내게 되었으니. 작년 몇 개월 동안 가정 보육하던 때가 떠올랐다. 그때 어떻게 하루하루를 보냈더라, 그때 무슨 정신으로 버텼더라 기억을 끄집어내며, 미리 마음의 준비를 했지만, 그럼에도 힘든 건 어쩔 수 없다. 방학 때 엄마들이, 주 양육자들이 하루에도 몇 번 긴 한숨을 내쉬는 건 너무 당연하다.


"우리 방학 때 뭐할지 계획표 만들어볼래?"


둘째의 어린이집 하루 일과표를 샘플 삼아 아이들과 계획표를 만들어보기로 했다. 물론 지켜지지 않는 날도 있겠지만 하루가 너무 막막할 때 계획표가 도움이 되지 않을까 해서.


"낮에는 너무 더우니까 아침 먹고 밖에 나가 노는 거로 하자~"

"그림 그리거나 색종이 접기 같은 미술 시간도 만들까?"

"도니는 뭐 하고 싶은 거 없어?"

"한자 공부도 넣었으면 좋겠어요"

"아, 그럼 한자 공부랑 예절 공부 같은 거 같이해볼까?(해서 사자소학 책을 샀지만, '아버지는 내 몸을 낳으시고 어머니는 내 몸을 기르시다' '배움이 넉넉하면 곧 벼슬을 해서 나라에 충성을 다해야 한다' '사람을 가려서 사귀면 도움과 유익함이 있느니라'와 같은 내용을 아이에게 가르친다는 게 내키지 않아 반품하고, 집에 있는 천자문 책을 계속해보기로 했다)


"그리고 수학 4페이지 하는 거랑 그림일기 쓰는 건 매일 하기로 하자"

"일주일에 한 번 정도는 집 옆에 계곡이나 박물관에 가는 거로 할까?"

"토요일 일요일에는 수학이랑 일기는 하지 말고, 각자 보고 싶은 영상 보기도 넣을래?"


그렇게 시간대별로 계획표를 만들었지만 이틀째, 예상은 했지만 계획표대로 하기가 쉽지 않다는 걸 깨달았다. 아이는 자기가 하고 싶을 때 갑자기 큰 화이트보드 앞에 앉아 끄적끄적 그림을 그렸고, 밖에 놀러 갔다 와서 책을 몇 권씩 읽는 데 열중했으며 놀다가 갑자기 종이접기를 하겠다며 종이접기 책과 색종이를 들고 책상에 앉아 오래 집중했다. 어느 날은 과학책을 보다가 실험을 하고 싶어 했고, 어느 날은 둘째와 죽이 맞아 엄마 아빠 놀이를 한참 했다.


'그래, 계획표가 아니라 아직은 루틴이다'


작년에 6개월 정도 가정 보육을 하면서 루틴이 거의 일정하게 정해지니 아이들도 나도 좀 편했던 기억이 난다. 물론 중간중간 변수가 생기기 마련이고 그 루틴 마저 통하지 않을 때도 있었지만, 루틴 덕분에 하루하루 무사히 지나가는 날이 많았다.


그렇게 이번 방학에도 매일의 루틴을 정했다. 아침에 일어나 밥을 먹고 오전 10시쯤 나가서 2시간 정도 놀고 집에 들어와 점심을 먹는다. 아침에도 햇볕은 뜨겁지만 오전 시간, 다행히 아파트 동과 동 사이에 그늘이 있고, 놀이터도 그늘져 놀기가 괜찮았다. 첫째 친구와 9살 형, 이렇게 고정 멤버가 있어 넷이 줄넘기도 하고 킥보드도 타고 가끔은 물총 놀이도 하며 노는데 그 사이에 후다닥 설거지하고 집을 치우고 물과 책을 챙겨 밖에 나간다. 점심때 집에 들어오면 아이들이 대충 씻고 쉬면서 책을 보는 사이에 점심을 준비한다. 그리고 밥을 먹고 5시까지는 바깥 햇볕이 뜨겁고, 너무 더워 집에서 보내는데 이 시간에 아이들이랑 뭘 재미있게 할 수 있을까 생각 중이다. 지금은 그림을 그리기도 하고, 책을 보기도 하고 아이가 숙제하기도 하며 또 "엄마 심심해요" "나가서 놀고 싶어요"라고 말하거나 둘이 다퉈서 힘들어지는 시간이기도 하다. 요즘은 더워서 5시에 저녁을 먼저 먹고 밖에 나가 2시간 정도 놀고 들어와 씻고 잘 준비를 한다. 잠자는 시간이 비슷하니 아침에 일어나는 시간도 평소와 비슷하다. 그리고 방학 6일째를 루틴을 지키며 나름(티격태격, 발끈했다가 꾹 눌렀다가의 반복은 있지만) 평탄하게 보내고 있다.


매일 꾸준히 하는 건 그림일기와 수학 4페이지. 너무 학습량이 적은 걸까 생각이 들면서도 아이와 나도 첫 방학이니까 조금씩 더 할 수 있는 걸 고민해보자 싶어 힘을 빼려고 한다. 아이와 더운 날씨에 한 달 남짓 함께 있는 시간 동안, 서로 많이 투닥거리지 않고, 존중하며 좋은 관계를 유지하는 것만으로도 방학을 충분히 잘 보내는 것이라 생각하니까. (사실 제일 어려운 과제이기도 하다..) 방학 동안 확 줄어드는 나의 시간을 조금이라도 확보하기 위해 아침에 일어나 30분 정도 등산을 하고, 아이가 노는 동안 틈틈이 책을 읽고 있다. 아이를 재운 뒤 글을 쓰고, 북아트 강의를 듣고 가끔 맡는 일거리를 소화해내며 나 역시 건강한 방학을 보내려 노력한다. 얼마 전 봤던 영화 <소울>의 대사 "I'm going to live every minute of it"처럼 방학이 끝날 때쯤 매 순간순간을 살기 위해 참 애썼다고 토닥여주는 그날까지 모두 파이팅!

(방학이 아직 며칠이나 남았네, 달력을 보며 한숨짓는 대신 오늘 하루만 생각하자는 하루살이 정신도 추천한다)




'아이를 어떻게 키워야 할까' '아이 교육은 어떻게 해야 할까' 육아를 하는 분들이라면 마음속에 늘 담고 있는, 때로는 심각하게 툭 터져 나오는 질문 같습니다. 8살, 6살 남매를 키우고 있는 저도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은 항상 어렵기만 합니다. 가끔 가족이나 친구들에게 교육에 대한 제 소신을 조심스레 밝힐 때면 "아이들이 어릴 땐 나도 그랬지..."라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는데, 첫째가 학교에 입학하며 '진짜 교육 현장'에 한 발짝 발을 딛게 됐습니다. 한편으로는 걱정도 되지만, 아이들과 내 소신을 믿는 마음으로 걱정을 덜어 내어 봅니다. 앞으로 아이들과 함께 할 교육에 '소소 교육'이라는 이름을 지어보았습니다.

'소소하다'는 작고 대수롭지 않다는 뜻도 있지만, 밝고 환하다는 뜻도 갖고 있어요.

그렇게 소신을 갖고, 작은 움직임으로, 아이와 밝고 환하게 교육 제도의 긴 터널을 지나가길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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