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교육 없이'라는 말 뒤에 무엇이 들어가더라도

소소교육 네 번째 이야기

by 소소 반디


아이가 초등학교에 들어간 뒤 학원 등을 다니지 않는다면 어떤 일과를 보내게 될까, 친구들과는 어떻게 시간을 만들어 같이 놀 수 있을까 궁금해서 인터넷에 검색해본 적이 있다. '사교육 없이'라는 검색어에 뒤따라온 내용을 살펴보니 '서울대 가는 수학 공부법' '엄마표 아빠표 교육' '세 아이를 영재로 키운 자녀 교육법' 등 아이가 좋은 대학에 간 성공담이나 집에서 아이 성적을 관리하는 노하우가 포스팅의 많은 부분을 차지했다. 사교육 없이도 아이 교육을 잘하고 싶은 욕구를 반영한 결과일 것이고 또 내 원칙대로 했더니 이렇게 아이들을 잘 키워냈다고 인정받고 싶은 부모들 마음도 담겨 있을 것이다.


처음에는 나도 솔직히 교육에 대한 소신을 결과로 증명하고 싶은 마음이 컸다. "학습지 안 시키고 학원 안 보내도 아이는 이만큼 할 수 있어요"하고. "그렇게 안 시켜서 어떡할려고" 걱정하는 사람들에게 언젠가는 내 방법도 맞는다는 걸 증명해 보여야지, 괜한 자신감에 넘쳐 있었다. 주도적으로 잘 하는 아이, 즐겁게 하면서도 잘 하는 아이, 이렇게 결과로 증명해야 내가 선택한 교육의 방법이 맞다는 인정을 받을 것 같았다. 주변의 시선 보다는 나만의 가치가 더 빛났으면 하는 바람과는 참으로 모순된 바램들일텐데.


그런데 생각할수록 아이를 잘 키운다는 것이 성적과 같은 결과로 증명할 수 있는 간단한 문제일까 하는 의문이 생겼다. 어느 카페에서 아이가 공부를 이만큼 잘 해내고 있다는 어떤 부모의 글에 달린 댓글 "아이를 참 훌륭하게 키우셨네요. 부럽습니다"를 보며 훌륭하게 키우는 것이 과연 무엇일까를 한참 고민해 보게 되었다. 그리고 오랜만에 박혜란 선생님의 책 <믿는 만큼 자라는 아이들>을 읽다가 이 문장에서 눈길이 멈추었다.



서울대가 뭐기에 아이들이 거기 들어갔다는 외형적 사실 하나만으로 그렇게 쉽게 육아에 성공한 엄마라는 평가를 받을 수 있는 걸까. 아이들의 인간성에 관심을 갖는 사람은 '별로'가 아니라 '하나도' 없었다. 게다가 나는 보통 엄마들처럼 뒷바라지를 잘해서 아이들을 대학에 '들여보낸' 엄마가 아니라 자타가 공인하듯이 '스스로 대학에 들어간' 아이들의 엄마일 뿐이므로 애당초 육아기를 쓸 자격이 없는 사람이다.

<믿는 만큼 자라는 아이들 p15 프롤로그>



그러게, 아이들의 선택이자 아이들이 걸어온 길인데 그걸 '부모 덕분 또는 부모 탓'이라고 할 수 있을까. 물론 옆에서 도움을 주고 지지하는 역할은 할 수 있겠지만 아이는 어른들의 뜻대로 만들어지는 존재가 아니다. 애초에 어른이 원하는 방향으로 아이의 삶이 결정될 수는 없다. 아니, 결정되어서는 안 된다. 아이의 의지와 선택이 최우선으로 존중받아야 한다.


아이의 삶인데 그걸로 내가 증명하려는 것 자체가 욕심이고 모순이라는 걸 깨달았다. ‘아이도 부모도 건강한 관계를 위해, 각자가 바라는 삶을 위해 사교육을 신중하게 한다’는 내 교육 소신과도 맞지 않는다는 생각을 했다. 또 누군가에게 보여주고 증명하기 위한 삶이 아니라, 아이도 나도 충만함을 느끼는 삶 자체가 중요하다는 걸 깨달았다. 물론 그렇게 생각하는 것이 결코 쉽지는 않다. 누구나 갖고 있는 인정 욕구는 '비교'와 '주변의 시선을 의식하는' 문화가 단단한 곳일 수록 강하게 작용하니까. 하지만 누군가에게 보여주고 증명하려는 삶은 자꾸만 무엇이 중요한 것인지를 헷갈리게 만든다. 자녀 교육에서도 마찬가지다. 결과로 보여줘야지 생각할 수록 아이들도 부모들도 조급해진다. 마음 속으로 되뇌었다. '누군가에게 보여주고 증명하기 위한 삶이 아니라, 아이도 나도 충만함을 느끼는 삶 자체가 중요하다'. 부담이나 책임감을 좀 내려놓으니 좀 더 마음이 편안해졌다.


사교육 없이 아이 교육을 시도했던 이야기들, 성공담 중에 도움되는 부분도 있을 것이다. 좀 더 나은 환경을 위해 노력하거나 내 아이에게도 적용해볼 수 있는 방법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거기까지다. 그다음은 아이들의 몫이고 아이들이 선택할 부분이다.


아무것도 안 시켜도 잘한다면 거기에 대해 큰 자부심을 가지지 않으려 한다. 아이가 하는 것이므로. 반대로 아무것도 안 시켰더니 공부를 잘 못한다 하더라도 실망하거나 초조해하지 않으려 한다. 아이가 행복하고 삶이 즐겁다 여기면 된다는 방향대로 나와 아이는 충만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음을 믿는다. '사교육 없이'라는 말 뒤에 꼭 성공담이 쓰일 필요는 없으니까. 삶은 성공 아니면 실패라고 나누기에는 어디로 뻗을지 모를 곁가지들이 무척 많으니까.




'아이를 어떻게 키워야 할까' '아이 교육은 어떻게 해야 할까' 육아를 하는 분들이라면 마음속에 늘 담고 있는, 때로는 심각하게 툭 터져 나오는 질문 같습니다. 8살, 6살 남매를 키우고 있는 저도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은 항상 어렵기만 합니다. 가끔 가족이나 친구들에게 교육에 대한 제 소신을 조심스레 밝힐 때면 "아이들이 어릴 땐 나도 그랬지..."라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는데, 첫째가 학교에 입학하며 '진짜 교육 현장'에 한 발짝 발을 딛게 됐습니다. 한편으로는 걱정도 되지만, 아이들과 내 소신을 믿는 마음으로 걱정을 덜어 내어 봅니다. 앞으로 아이들과 함께 할 교육에 '소소 교육'이라는 이름을 지어보았습니다.

'소소하다'는 작고 대수롭지 않다는 뜻도 있지만, 밝고 환하다는 뜻도 갖고 있어요.

그렇게 소신을 갖고, 작은 움직임으로, 아이와 밝고 환하게 교육 제도의 긴 터널을 지나가길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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