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캐나다 사람들이 전부 친절한 것 같지는 않다
내가 밴쿠버에 처음 왔을 때부터 현지 사람들이 격려를 위해 해주는 말이 있었는데 “캐나다 사람들은 전부 친절하니까 괜찮아”였다. 그런데 아니다. 여기서 세 달 살아봤지만 꼭 그렇지만도 않은 것 같다.
이건 당연한 이야기다. 대체 이방인에게 ‘친절하기만 한’ 사람들이 가능 키나 하겠느냐는 말이다. 몽 피투에서 일하는 사람들 중에서도 내게 친절한 사람이 있는 반면, 짜증 내는 사람도 있고, 무시하는 사람도 있고 천차만별이다. 하물며 손님이라고 안 그러겠는가.
캐나다가 인종구성이 다양하다는 건 몸소 느낀다. 그러니까 내가 미국에 갔을 때 나라는 아시안을 신기하게 쳐다보던 눈빛이 여기서는 별로 없다는 것을 느낀다. 어딜 가나 다양한 인종들이 있으니까.
영어를 못한다면, 그것도 가게 점원이 영어를 못한다면 손님으로서는 친절하기가 조금 어려운 것 같기는 하다. 당장에 점원이 내 말을 알아듣고 주문을 진행해줘야 하는데 그러지가 못하니 얼마나 답답하겠는가. 물론 영어를 못하는 점원도 답답해 미칠 노릇이다. 이제는 3개월 정도 일하니 대충 무슨 말을 하는지 알아듣는 척은 할 수 있게 되었고, 무슨 말을 꺼내야 할지는 알 수 있게 되었다.
영어가 문제가 아니더라도 불친절한 경우는 있다. 손님이나 동료가 보여주는 노골적인 적대의 표시나 무시의 표시가 어쩔 수 없이 읽힐 때가 있다. ‘나를 무시하고 있구나’하는 느낌. 그런 걸 느낄 때면 이 나라에 꼭 친절한 사람만 있으리란 법은 역시 없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이 먼 타국 땅에 와서야 내가 ‘아시안’ 남성이라는 게 몸소 느껴진다. 자기가 서있는 위치를 알게 되고 자기 객관화를 하게 되는 과정이 언제나 편안한 과정은 아니다. 다만 내가 한국에서 한국인 남성으로 소수자 운동을 하면서 들었던 그 ‘타자화(Objectification)’가 무엇인지 조금은 느끼게 된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