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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태경 Jul 18. 2023

나의 낡은 시계와 정기점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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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낡은 시계와 정기점검




나는 낡은 시계가 하나 있다. 지난번에 언급했던, 이전 판매자가 15년 정도 물고 빨다가 너덜너덜해진 가격으로 올라왔던 시계, 지금 온라인 중고 시장에 올라오는 매물들을 생각해 보면 그다지 좋은 가격도 조건도 아니어서 결론적으로 웃돈 주고 산 시계가 그것이다(그리고 놀랍게도 시계는 아무리 낡아도 사진에서는 새것처럼 나온다).


낡았다는 단어는 이 시계의 오래된 상태를 나타내는 은유가 아니라 설명이다. 분명 처음 샀을 때 내가 미지근한 물에 베이킹 소다도 풀어서 깨끗이 세척하고, 나중에 흠집 지우는 물건도 사서 깨끗이 닦았는데, 여전히 내가 가진 시계 중에 제일 낡았다. 시계 유리에 뭔가 문제가 있는 건지, 노안으로 안경이 잘 안 보여 옷에 안경알을 문지르는 미래의 나처럼, 시계 유리에 난 지문을 매번 옷으로 뽀득뽀득 닦는다. 낡은 시계를 사면 낡을 걱정을 안 해도 되잖아? 같은 얄팍한 생각은 거짓으로 드러났는데, 낡은 시계라서 그런지 손목에 차고 다니기가 더 부담스러운 것이다. 어디 부딪쳐서 다치진 않을지, 물가에서 뛰놀다 물먹는 건 아닐지, 매번 노심초사 전전긍긍이다. 그럴 때마다 '나는 이걸 열심히 써서 빈티지로 만드는 중인 거야'하고 마음을 다독여 본다. 하지만 낡은 시계가 더 낡아가고 있을 뿐이라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어떤 시계 회사에서 다음과 같이 마케팅을 한다고 쳐보자: '저희 시계 브랜드는 환경을 생각하며, 이를 위해 이번에 100년 이상 사용할 수 있는 기계식 시계 제품을 선보입니다.' 말만 들으면 이것이 이 제품의 특징처럼 보일 수 있지만, 여기서 짚고 넘어갈 것은 거의 모든 기계식 시계가 100년 이상 굴러갈 수 있다는 점이다.


유튜브에 '시계 복원(Watch restoration)' 등의 키워드를 검색해 본다면 어느 순간부터 수리를 뛰어넘어 복원을 하고 있는 전문가들의 작업을 볼 수 있다. 1960~70년대의 기상천외한 디자인의 기계식 시계들과 혹은 더 오래전 1930~40년대의 전쟁 전후에 만들어진 아르데코풍의 시계들, 그리고 비교적 최근에 만들어진 1990~2000년대의 현대 시계의 전신들이 전문가들의 손가락과 각종 장비들 사이에서 복원된다. 이런 유튜버 중에는 시계 복원을 취미로 하는 이도, 전문가로서 하는 이도 있으며, 시계 브랜드에서 고객의 시계를 수리하는 영상을 자체적으로 업로드하기도 한다. 그리고 가장 신기한 점은, 그렇게 등장한 시계들이 영상의 마지막에는 영롱하고 아름다운 자태로 째깍째깍 잘 굴러간다는 점이다.


이렇듯 기계식 시계는 대부분 100년 이상 사용할 수 있다. 닳아버린 부품은 갈아 끼우고, 없는 부품은 직접 깎아 만들고, 그마저도 안되면 시계의 외관은 놔둔 채 태엽을 통째로 새것으로 바꿔버린다. 이게 바로 200년 넘는 시계 산업에서 지금까지 해왔던 일들이다. 그러므로 이런 영상들을 보다 보면 언제나 묘한 편안함이 있는데, 이렇게 옛날부터 시계를 고쳐왔으니, 나도 내 시계와 좀 더 오래 할 수 있겠구나 하는 안도감이 그것이다.


그런데 반대로 얘기하면? 기계식 시계를 가진 사람들은 필연적으로 이런 정기점검의 시간을 맞이한다는 것이다. 기계식 시계가 100년 이상 굴러갈 수 있다는 뜻은 결국 100년 내내 주기적인 점검과 부품교체가 필요하다는 것이니까. 아니, 하물며 사람도 병원을 가는데. 이런 생각들을 하다 보면 언제나 명확한 불안함이 있는데, 내가 가진 기계식 시계가 한 두 개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걸 전부 점검해야 한다고?


지금까지의 구글링 데이터로 판단하건대, 기계식 시계를 점검하는 주기는 대략 5년 안팎이고, 보통 시계의 태엽통을 전부 분해해서 깨끗하게 세척한 뒤 재조립하는 과정을 거친다. 여기에 추가금을 들여 시계의 케이스와 브레이슬릿을 반질반질하게 닦거나 혹은 교체해야 되는 부품을 교체한다. 일부 브랜드에 공식 점검을 맡기기 위해서는 공식 보증서가 필요한데, 그런 보증서가 없을 경우엔 사설 수리업체를 이용한다. 점검 비용은 사설의 경우엔 13만 원 안팎, 브랜드의 경우에는 브랜드마다 서비스 가격을 다르게 책정한다. 이걸 갖고 따져본다면 기계식 시계 하나당 최소 5년에 한 번씩은 13만 원 안팎의 금액을 지출해야 하고, 시계가 늘어난다면 그에 비례해 비용도 늘어난다.


여기서 5년이라는 시간은 보통 기계식 시계 내부의 부품이 마모되거나 혹은 내부 부품의 윤활이 약해졌을 것으로 가정되는 기간이다. 그리고 이런 경우에는 보통 시계의 하루 오차범위가 걷잡을 수 없이 늘어나게 된다. 예를 들어 몇 년 전에는 하루에 1초씩 느려지던 시계가 지금은 1분씩 느려진다면, 내부 부품의 무언가가 과로사하거나 파업을 선언한 것이고, 우리는 시계의 내부를 열어서 무엇이 문제인지 대화를 시도해봐야 한다.


이는 반대로 얘기하면 점검 시기를 딱히 기억하지 않더라도, 슬슬 시계가 이상해졌다는 징후가 보일 때 시계의 점검을 맡기면 된다는 의미이다. 물론 감기에 걸리기 전에 미리미리 손을 잘 씻고, 야채를 많이 먹고, 운동을 해야 건강한 몸을 유지할 수 있듯이, 시계 점검도 주기적으로 미리미리 해주면 좋겠지만 그럴 시계가 어디 한둘이어야지. 어디 극심하게 아프고서야 '아, 병원 가야지'하는 것처럼, 일상적으로 사용할 수 없을 정도가 되면 '아, 점검 맡겨야지'하는 것이다.




'너, 나랑 끝까지 가는 거다?'하고 얘기하는 것치고 시계에 들이는 애정과 관심은 적고 강박과 불안은 많다. 시계가 어떻게 될지에 대해서는 걱정하면서도 지금 어떤 상태인지에 대해서는 별 생각이 없는 것이다. 그래도 내 낡은 시계에 장수와 번영과 포스가 함께 하길, 나랑 오래오래 살다가 같은 관짝에 묻히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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