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né-Paul Jeanneret가 디자인했고, 1953에 바젤에서 발표된 최초의 롤렉스 서브마리너 Ref.6204(MONOCHROME)
시계함 앞에서 너무 오랜 시간을 보냈다
이 글감을 떠올리자마자 나는 본능적으로 알 수 있었다: 필시 우울한 글이 되겠구나. 왜냐하면 글을 쓰고 있는 지금은 벌써 며칠째 장마가 그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이 놈의 비는 언제 그치려는지 모르겠다.
비는 무슨 시계를 차는지에도 영향을 미친다. 저게 무슨 뚱딴지같은 소리인가 싶겠지만, 옷의 TPO도 못 챙기는 나는 시계의 TPO만큼은 고려한다. 가령 예를 들어 이런 식이다: 오늘은 비가 와서 손목에 물이 묻을 일이 많을 텐데, 그 상황을 고려하면 고무로 된 시계줄이 나을까, 메탈로 된 시계줄이 나을까? 오늘은 잡혀있는 일정이 있어서 여러 사람들을 보게 될 텐데, 내가 자주 찼던 빈티지풍의 다이버 시계보다는 이번에 새로 산 현대적인 다이버 시계가 더 좋은 인상을 줄 수 있지 않을까? 놀랍다기보다는 황당하게도 나는 옷을 잘 못 입어서 내 옷의 대부분은 무채색이 대부분을 차지하고 그마저도 귀찮아서 같은 핏, 같은 사이즈, 같은 브랜드의 검은색 티셔츠가 6벌이 있다. 허구한 날 이것을 입고 다니면서도 내 손목 위의 시계만큼은 정말 성실하게 바꿔 찬다. 이 두 가지 사실을 조합해 보면 내게 '오늘 옷에 어울리는 시계는 무엇일까?' 하는 질문은 다소 쓸모없게 느껴진다. 매일 입는 '오늘 옷'이랄게 '어제 옷', '내일 옷'과 다를 바가 없고 그냥 시계만 주구장창 바꿔 차는 거지.
물론 날씨와 TPO에 대한 나의 황당한 자조가 이번 글감에서 예상되는 우울함의 이유 전부는 아니다. 그 나머지를 차지하는 것은 꽤 명확한데, 대부분 내가 오늘 머리를 하러 집을 나서기 전까지 시계를 세 번이나 바꿔 찼다는 사실에서 기인한다. 나는 외출하기 2시간 전부터 그 시계 각각의 태엽을 끝까지 감아주고, 날짜를 설정해 주었으며, 시간을 맞췄다. 그리고 나는 마지막 시계를 차고 나왔고 그 과정에서 탈락한 이전 시계들은 시계함에 고이 놓였다. 그러고 보니 파마롤을 말고 있는 지금에도 그 시계들은 제 역할을 하고 있을 것이다, 비록 그 자신을 사용해 줄 사람의 손목이 아닌 시계함 안이더라도.
내게 별다른 일정이 없어서 집에 있거나 혹은 나만의 아지트에서 쉬고 싶은 휴일에는 정말이지, 하루에 시계를 몇 번씩 바꿔 찬다. 이게 단순히 몇 시간에 한 개씩이 아니라 시계를 차고 있다가도 10분 뒤쯤 '아, 근데 A 브랜드 시계를 요즘 통 안 찼는데, 그걸 좀 차야하지 않나?'하고 바꿔 찬다. 물론 그러고 나서 또 5분쯤 지나서 '유튜브에 B 브랜드 시계가 올라왔네. 역시 그걸 차야겠다'하고 바꿔 차더니 결국 마지막엔 '그래도 내 캐릭터를 보여줄 수 있는 C 브랜드 시계가 제일 나을 거야'하는 것이다. 역시 놀랍지 않고 황당하게도 나는 이 모든 일을 나 혼자서 하고 있다. 내 시계를 봐줄 사람이 없는데, 나는 무슨 패션쇼를 하듯이 자질구레한 시계들을 돌려 차며 거울 앞에도 서 보고, 이리저리 걸어보기도 하고, 손목을 이리저리 움직이며 그 위에 놓인 시계를 바라보기도 하는 것이다, 단 10분 동안만.
지금까지 내가 즐겁게 써왔던 글을 보고 있으면, 그리고 앞으로 내가 쓸 글을 생각하면 '남들에게 보이는 시계'와 '내가 차고 싶은 시계' 사이의 묘한 긴장감이 느껴진다. 그러니까 나는 내 손목 위에 올라가는 기계식 시계에 엎치락뒤치락하는 내 사회적 자아와 내 본래 자아 사이의 다툼을 투영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내가 유독 민감하게 느끼거나 나에게 한정된 강박증 때문에 벌어지는 일일수도 있다. 남의 시선을 무척이나 신경 쓰며 자라난 나는 이런 어른으로 자랐다.
자유의 제한이 곧 자유의 조건이라는 말이 이 상황에 대한 정확한 서술이 될 수 있을까? 주체에게 주어지는 틀거리는 그 주제를 억압하는 것뿐만 아니라 주체가 그 스스로를 주체로 정의할 수 있게끔 돕고, 그 주체로 하여금 자유의 행사를 가능하게 한다. 이 이야기를 하는 이유는 내가 시계를 줄이는 이유가 바로 이것과 연관되지 않았나 하기 때문이다. 나는 가장 시계를 많이 가져보았을 때가 쓰는 것과 쓰지 않는 것을 합해서 약 30개 정도였을 때였는데, 그때 내 생각과 생각들의 충돌로 머릿속은 그야말로 아수라장이었다. 결국 이 시계를 이 사람에게, 저 시계를 저 사람에게 주고 혹은 각종 중고 시장에서 마주치는 사람마다 제발 내 시계 좀 사달라고 애처롭게 매달린 결과, 지금은 그것보다는 많이 줄었다. 요즘은 내 시계함에 놓인 빈자리를 볼 때마다 아쉽기는커녕 숨구멍이 트인 것 마냥 속이 편안해진다.
나는 여전히 시계와 시계에 얽힌 역사가 정말 흥미롭다. 약 200년 전부터 말도 안 될 만큼 작고 정교한 부품을 만들어내서 그것이 일정한 시간 간격으로, 자동으로 움직이도록 만들다니. 이 기술을 이용한 역사가 수많은 전쟁과 연관되어 있고 바다 밑의 다이버부터 저 우주의 우주인까지 연결되어 있다니, 그리고 여전히 기술 혁신이 이루어지고 있어서 시계에 대한 접근성도, 시계의 디자인 수준도 높아지고 있다니. 적어도 내가 살고 있는 21세기 이전의 근현대인 20세기를 풍미한 시계의 역사와 21세기 현대 시계의 발전을 보고 있으면 정말이지 즐겁다.
그러나 동시에 내가 딱 그만큼만 시계를 좋아할 수 있기를 바란다. 그냥 그 정도만 즐기면 좋을 텐데, 나는 왜 이리도 집착하고 있담? 아마 비가 그치지 않아서 그런지도 모르겠다. 나 같은 고민을 가진 사람이 또 있나요? 그렇다면 그대에게 무구한 영광을, 장수와 번영을, 그리고 포스가 함께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