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쩜 이렇게 멋진 시계를 만들었지? 1957년 오메가(Omega) Railmaster ref. CK 2914(timelinewatch)
시계인과 그의 친구들(1)
태생이 사랑하고 사랑받는 걸 좋아하는 사람이라 이렇게 단언할 수 있지만, 나 같은 사람에게 관심은 애정과 동의어다. 지나가듯 던지는 말 한마디라도, 나에게 관심 가져주는 일, 그 일에 담긴 애정이 무엇인지 알아서 나도 주변인들에게 그런 말을 자주 한다. 사랑해. 고마워. 좋아해. 고생했어. 네가 있어서 나는 행복해.
그렇다 보니 주변인들도 안다. 내가 계속 시계를 쳐다보는 이유가 그들과 함께 있기 싫다는 표시가 아니라, 단순히 시계가 예뻐서 저런다는 것. 내가 계속 시계를 만지작 거리는 이유가 시계가 불편해서 그런 게 아니라, 단순히 시계가 망가질까 걱정되어서 그런다는 것. 내가 새 시계를 자랑하는 게 무슨 재력을 과시하는 게 아니라, 단순히 좋아서 저런다는 것. 내가 그들의 시계를 뚫어져라 쳐다보는 게 시계의 값어치를 측정하는 게 아니라, 단순히 '그 시계 봐도 됑?'하고 묻고 싶어서 그런다는 것.
최근에 내가 가장 많이 관심을 갖고 있는 것, 그래서 주변인들에게 가장 흥미를 갖고 얘기할 수 있는 것이 시계이다. 안 그래도 시계 이야기를 떠들고 싶어 죽겠는 사람에게 시계에 관해 물으면 어쩔 수가 없다. 시계인에게 주변인들이 엮일 수 있는 상황은 아주 단순하게 요약해서 다음의 4가지 정도가 아닐까: 시계 추천해 줄게!, 시계 선물해 줄게!, 시계 수리해 줄게! 시계 줄게!
(1) 시계 추천해 줄게! 우선 내가 이 구역의 시계 마니아라고 떠들고 다니다 보면 보통은 '그래, 네가 행복하니 됐다'하겠지만, 아주 가끔은 정말 시계가 필요하거나 시계를 알아보고 있는 주변인이 있을 수도 있다. 지금은 키오스크가 할인 아이스크림부터 항공권까지 발권해 주는 시대지만, 역시 뭔가 질문하고 대답하기에는 아직까지는 사람이 더 편하다. 그러므로 고작 괜찮고 쓸만한 시계를 찾기 위해 온라인을 전전하며 '이 이모티콘으로 도배된 블로그 포스팅을 믿을 수 있을까'하고 고민하느니, 차라리 시계 좋아하는 사람에게 묻는 게 편한 것이다. 그래, 저 놈은 분명 시계를 좋아하니까 적지 않은 비용을 지불하면서 시계를 사고팔았을 것이고, 그 경험에서 쓸만하고 괜찮은 시계를 하나쯤은 추천해 줄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대개 이러한 판단은 아주 정확하다는 점에서 긍정적이다. 사실 그 시계인은 그 주변인이 생각하는 것보다 더 다양하고 잡다한 시계 지식들을 갖고 있다. 매일같이 시계 중고시장, 시계 커뮤니티, 시계 유튜브 채널, 시계 잡지를 탐독하는 그는 결국 사지 않거나 사지도 못할 시계들을 머릿속에 그리며 '이 시계는 어떤 상황에서 차면 끝내줄 것이고 저 시계는 어떤 상황에서 차면 개쩔 것이다'같은 상상을 한다. 허구한 날 가상의 시계와 가상의 TPO를 맞춰보는 그는 시계를 추천받기에 매우 적합한 인물일 수 있다.
동시에 이 질문이 도대체 언제 끝날지 모르겠는 추천 리스트라는 답변으로 돌아올 수 있다는 점이다. 처음에 시계를 추천해 달라는 말을 건넨다면 시계인은 아마 조금 난처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겸손을 떨 것이다: "하하, 나 시계 잘 몰라." 하지만 그는 곧 시계 잘 모르는 것치고는 굉장히 세세한 디테일을 따져가며 당신의 라이프스타일과 패션 취향 등을 물을 것이고, 온갖 잡지식을 동원한 큐레이팅을 선보일 것이다. 평소에 시계를 많이 차 봤어? 단순한 디자인이 좋아, 아니면 화려한 디자인이 좋아? 가격대는 얼마 정도로 생각했어? 시계 상태보다 사양이 중요하다면 중고 시계는 어때? 시계 방수성능은 어느 정도였으면 좋겠어? 시계 방수성능이 뭐냐고? 시계 방수성능은 국제표준화기구(the International Organization for Standardization, ISO) 22810를 따라서 정해지는데 시계사는 자사의 시계에 최소 30m의 기압부터 50m, 100m, 150m, 200m 등으로 방수성능을 기입할 수 있으며…
이건 마치 친구가 심리 테스트라길래 보내준 링크를 클릭하며 7문제 정도 풀면 되겠거니 했지만, 막상 열어보면 200문항짜리 정식 MBTI 테스트인 상황과 같다. 문제는 그 모든 문항에 답하더라도 당신은 MBTI의 경우의 수 16개보다 더 많은 리스트를 손에 쥐게 된다는 것이다. 꼬부랑글씨와 숫자로 뒤얽힌 목록들을 찬찬히 살펴보다 보면 이 놈에게 시계 얘기를 하지 못해서 죽은 귀신이 붙었거나, 시계를 팔지 못해서 죽은 귀신이 붙은 게 분명하다는 생각을 하게 될 것이다. 그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그 시계인이라는 놈은 어디선가 끊임없이 링크를 공수해오고 있을 공산이 크다.
(2) 시계 선물해 줄게! 선물을 하는 것은 쉽지만 선물을 잘하는 것은 어렵다. 상대의 취향에 대한 고려와 적정 가격선에 대한 고민, 그러면서도 선물로서 적당한 크기와 쓰임새 등을 고려하는 일은 단순한 인지 작업을 넘어서는 직관과 통찰의 영역이고, 평소에 상대에 대한 빅데이터를 쌓아놓아야 가능한 센스 혹은 스킬이다. 그렇기에 이러한 어려운 일을 미리 시도해 본 선배들은 여러 가지 유용한 조언을 남겼고 그중 하나는 다음과 같을 것이다: '선물은 네가 주고 싶은 것이 아니라 상대가 받고 싶은 것이라야 한다.'
시계인의 문제는 상대가 시계를 받고 싶은지도 모르면서 어쨌든 시계를 사주려 한다는 점이다. '요즘 시계 안 차는 사람이 어딨담?'하면서 얼토당토않은 자기 기준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그에게 있어 시계 선물이란 사실 선물의 탈을 쓴 시계 쇼핑일 가능성이 크다.
시계인은 선물을 받는 대상의 상황에 엄청나게 몰입한다. 그래서 그런지 평소에 쌓아왔던 얄팍한 데이터베이스를 총동원하여 어떻게 하면 이 선물이 상대의 마음에 들 수 있을지 고민한다. 시계인의 입장에서라야 자신이 할 수 있는 가장 최선의 일을 하는 것이겠지만, 문제는 상대는 그것에 조금도 관심이 없을 수 있다는 점이다.
이렇듯 이들의 몰입과 달리, 이들이 결여한건 상대의 감정에 대한 이입이라서, 그들은 상대가 시계를 좋아할지 싫어할지, 편하게 받을지 부담스러워할지 등은 고려하지 않는다. 그리고 대체적으로 시계 선물은 한푼 두푼하는 것이 아니며 동시에 기계식 시계라면 관리법까지 복잡하니, 받는 사람 입장에서는 부담스럽기 쉽다.
그대에게 선물할 시계를 싣고 달리는 시계인의 썰매는 브레이크가 고장 나서 그런지, 이제 상대는 선물을 받는 걸 넘어 받아야만 하는 지경에 놓인다. 내가 전공한 인류학에서는 이런 상황을 들어서 상대에게 선물을 하는 일은 상대로 하여금 나에게 빚을 지우는 것과 같다고 본다. 상대에게 마음의 짐, 부담을 지우는 것이라고 말이다.
'그래, 네가 행복하니 됐다'라고 하기에는, 시계인의 그 알량하고 덧없는 행복을 위해 당신이 쏟아야 할 관심이 이만저만이 아닐 때, 그때서야 이 놈이 시계를 좋아하는 것이 문제인지, 아니면 시계를 좋아하는 이 놈이 문제인지 고민이 되는 것이다. 그러나 이 이야기는 아직 끝나지 않았고 다음 편에 계속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