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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태경 Jul 18. 2023

시계인과 그의 친구들(2)

스크루다운 크라운(screwdown crown)의 원리(citizen support)


시계인과 그의 친구들(2)




시계인의 손목 위에서 매일매일 달라지는 시계를 보고 있으면 가끔은 신기할 수도 있고 정말 이 사람의 주장대로 시계의 세계가 매력적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대다수의 경우 집착하듯이 시계를 만지작거리고, 조용하다 싶어서 보면 중고시장을 뒤지고 있으니, 이 놈이 시계를 좋아하는 것이 문제인지, 시계를 좋아하는 이 놈이 문제인지, 그 말이 그 말 같고 그게 그거 같을 것이다. 그렇지만 시계 애호가를 둔 사람으로서 당신에게도 다른 사람들보다 시계에 대한 접근성이 올라갈 것이다.


(3) 시계 수리해 줄게!
당신에게 수리가 필요한 시계가 생길 수도 있다. 가령 부모님의 예물 시계를 물려받게 되었다거나, 혹은 평소에 눈에 들지 않았던 빈티지 시계를 SNS에서 발견해서 사게 되었다거나하는 경우 말이다. 이런 때에는 보통 시계 브랜드가 제공한 보증서가 없을 가능성이 높고, 각 브랜드는 보증서가 없을 경우에 수리비를 더 요구하거나 혹은 수리를 거부할 수도 있다. 이런 정보가 필요할 때 당신은 대체 이 시계를 살리기 위해 일단 공식 서비스에라도 문의해봐야 하는지, 아니면 바로 사설 수리업체로 향해야 하는지 고민이 될 수도 있다.


시계인 친구는 당신의 불행과 고민에 크게 개의치 않는 것인지, 시계 수리 정보를 물어보는 당신에게 신이 나서 설명을 늘어놓기 시작할 것이다. 공식 수리와 사설 수리의 차이를 넘어 브랜드별로 어떤 차이가 있는지, 서비스별로 어떤 수리를 하고 교체를 하는지 나열할 가능성이 높다. 이 과정에서 시계인은 크라운, 베젤, 케이스, 폴리싱, 브러싱 등 여러 가지 전문용어를 남발하며, 심지어 그 용어도 즐겁게 설명할 것이다.


나아가서 시계 관리법이랍시고 이것저것 충고를 할 공산이 크다. 당신의 시계에 들어간 무브먼트는 태엽을 감아주는 것보다는 흔들어서 동력을 주는 게 좋다던가, 스크루다운 크라운을 너무 세게 잠그지 말라던가. 그걸 가만히 듣다가 당신이 모르겠다는 표정을 지으면 아마 그는 눈을 반짝일 것이다. 스크루다운 크라운이 뭐냐면…


아무리 소중하더라도 한 순간을 쉬지 않고 떠드는 당신의 친구에게 어느 순간 화가 날 수도 있다. 더 이상 궁금하지 않으니까, 내 SNS로 눌러볼 것 같지 않은 링크를 그만 보냈으면 싶을 수도 있다. 그러나 그저 이렇게 정보를 제시해 주는 것이 나을 때가 있다. 제풀에 지쳐 쓰러지길 기다린다면 이 시계인도 결국은 그만둘 테니까.


문제는 이 자식이 어디선가 허접해 보이는 드라이버 몇 개를 시계 수리 도구랍시고 가져올 때다. 무식한 사람이 신념을 가지면 무섭듯이, 유튜브로 하는 법을 배웠다며 시계를 달라는 그를 믿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하물며 5천 원만 내면 시계방에서 안전하게 갈아줄 배터리를, 이놈에게 맡기고 시계 뒷판이 갈리는 상황을 마주하기는 싫을 것이다. 그리고 혹시나 하는 마음과 시계방을 가기 귀찮다는 생각에 시계를 맡긴다면, 결국 그런 마음을 배신하고 시계 케이스에는 기스가 날 가능성이 높다. 이런 때에 당신은 친구의 노고에는 감사할 수 있으나 실력에는 유감만 들것이다.


(4) 시계 줄게!
중증의 시계 애호가라면 시계를 정말 셀 수 없이 갖고 있을 수도 있다. 시계를 차는 손목은 분명 하나일 테고, 내가 아무리 트렌드에 둔감하다한들 아직까지 시계를 양쪽 손목에 차고 다니는 유행은 없을 텐데, 이 시계인이라는 놈이 가진 시계가 두 자릿수, 세 자릿수가 넘어갈 수도 있다. 그러면 다음과 같이 묻는 건 지극히 합리적일 수 있다: "하나만 주라."


시계가 많을수록 무슨 자신감인지 몰라도 시계인은 선심 쓰듯 "시계 줄게"같은 말을 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이런 말을 할 때는 선뜻 내보이는 쿨함과 달리 보통 자기가 안 차는걸 줄 확률이 높다. 그래서 그런지 "자, 원하는 시계 있으면 가져가"라고 해놓고 꼭 당신의 마음에 드는 것들은 안된다고, 그것들은 빼고 고르라고 단호하게 목소리로 얘기한다. 그 옹졸함을 마주하다 보면 차마 "네가 가져가라며"같은 말로 같은 수준이 되기는 싫어서 '네 놈이 그럼 그렇지'하는 마음으로 다른 것을 고르는 것이다.


문제는 그렇게 얻어낸 시계라 해도, 어느 정도 값이 나간다는 점이다. 생각해 보면 기계식 시계의 부품은 빈틈없이 맞물려서 돌아갈 텐데, 시계에 눈이 돌아간 이 놈의 경제관념은 왜 이렇게 느슨하지 싶다. 그러나 그것은 어쨌든 이 친구가 후회할 일이므로 두말 않고 받아가고자 한다. 웬만한 강심장이 아니고서야 "그때 준 시계 다시 돌려줘"같은 말은 못 할 테니까. 그러나 나는 했고 시계를 돌려받았다.




시계인의 생활에 대해 다루고 있으므로 과연 주변인들이 정말 저렇게 느낄지에 대해서는 확신이 없다. 일단 내가 시계를 좋아한다고 주변에 얘기하거나 주변인들이 그렇게 느낄 때 내가 들은 말이라곤 "부자냐", "돈 많이 들겠네", "좋아 보인다" 정도였으니까. 그래도 역시 주변에 시계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많아지면 좋을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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