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초에 매물이 없어서 중고시장에서 볼 수 없는 시계도 있지만 갖고싶다! VERSΛ Dual Time Reversible Watch(variowatches)
중고거래: 판매자편
자, '데일리' 운운하며 큰맘 먹고 샀던 시계가 생각만큼 손이 가지 않는다. 물론 그건 그냥 두 자릿 수가 넘는 시계에 비해 손목은 하나라서, 사실 모든 시계를 데일리로 차려면 한 달이 모자를 지경이기 때문일 수도 있다. 그러나 그걸 차치하고서라도 딱히 그 시계가 마음에 들지 않는 거라면? 이렇게 그 시계는 온라인 장터에 올라간다. '나랑 같이 우리 집에 가자'던 수많은 주인들의 매몰찬 배신을 등에 업고, 이 수십 년 세월을 버틸 것으로 설계된 시계들은(유튜브에 watch restoration 등을 검색하면 값싼 빈티지 시계라도 수리한다면 째깍째깍 굴러가는 것을 볼 수 있다) 고작 몇 주 몇 달을 주기로 주인들의 손을 오고 간다.
시계를 파는 이유는 물론 애정과 크게 상관이 없을 수도 있다. 가령 함께 동거하던 파트너에게 들켰다던지, 카드회사에서 날아온 독촉장을 보고 '내가 지금 이럴 때가 아니구나'하고 생각이 들어서일 수도 있다. 나는 이런 사정을 굳이 캐묻지는 않았는데, 간혹 상품설명에 자세히 쓰인 그네들의 사정을 읽고 생각보다 이들의 고충이 많다는 걸 알 수 있었다(물론 절박함을 가장한 거짓이었을 수도 있다). 그 외에도 많이 보이는 것은 또 다른 시계, 더 나은 브랜드의 시계를 구매하기 위해서이다.
자, 이제 시계를 판매해 보자. 구매자에게 있어 중고거래의 일반 특징 중 하나가 무엇인지 기억하는가? 바로 선착순 1명이라는 특징이다. 이런 특징 때문에 어떤 시계의 판매가 구매자에게 매력적인 제안으로 여겨진다면 너 나 할 것 없이 먼저 연락을 할 것이다. 그렇다면 그 매력적인 제안은 보통 무엇으로 결정될까? 그렇다, 가격이다. 고만고만한 시계들은 가격이 저렴할수록 순식간에 팔린다. 이 사실을 구매자도 알고 판매자도 안다. 어차피 제 값 못 받을 거라는 거.
이런 상황에서 판매자는 어떤 식으로든 가격을 방어해야 한다. 자신이 구매자일 때도 그랬고 다른 구매자들도 그러는 것처럼 심심하면 한 번 후려쳐보려는 그들을 적절히 방어해야 한다. 그러나 동시에 시계가 빨리 팔려야 한다. 시간과 여유가 많다면 모를까, 잘 매칭되지도 않는 온라인데이팅처럼 세월아 네월아 기다릴 수는 없는 것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매력을 높일 수 있을까? 가장 중요한 것은 역시 가격을 낮추는 것이다. 같은 시계라면 역시 만원이라도 낮은 거, 하다못해 택배비 포함인지 아닌지가 중요하다. 그렇기에, 가격이 내려가는 속도는 당신의 조바심 크기와 정비례한다. 언젠가 온라인 중고 시장에서 유독 많이 올라오는 매물의 가격이 매번 올라올 때마다 급격히 내려가는 것을 본다면, 흠, 많이 급하신가 보다.
두 번째는 시계의 상세한 설명과 역사적 헤리티지를 서술하는 것이다. 이는 보통 브랜드가 모호하거나 혹은 빈티지 시계일 경우에 해당된다. 즉, 마치 정말 정가에 거래하는 시계처럼 당신이 이 정도 가격을 지불한만한 물건이라는 것을 어필하는 것이다. 그렇기에 이 경우는 단순히 '가격이 저렴하다'로 판매하는 물건과는 차이가 있다. 마치 엄선된 큐레이팅을 거친 제품처럼, 어디서도 들을 수 없었던 시계의 정보를 습득하게 되는 것이다. 이들에게서 때로 블로그나 유튜브보다도 상세한 설명을 얻을 수 있다.
세 번째는 다양한 플랫폼을 활용하는 것이다. 번개시장이던, 당근시장이던, 아니면 중고시장이든 간에 온라인의 모든 중고거래 플랫폼에 물건을 올려두는 것이다. 결국 노출이 많이 되어야 물건이 팔리는 것 아니겠는가? 단순노출효과(mere exposure effect)는 경영학 마케팅의 주요한 방법 중 하나이다.
이 많은 수단을 사용해 당신은 시계를 판다. 그러나 하루가 걸릴지, 한 달이 걸릴지, 일 년이 걸릴지는 아무도 모른다. 분명 저번에 내가 샀을 때보다 낮은 가격에 올렸는데도 사람들의 반응이 미지근할 수도 있다. 진인사대천명의 마음으로 구매자님의 연락을 기다리는 수밖에. 부처된 마음으로, 망부석 같은 마음으로.
그리고 드디어 구매자가 나타난다. 택배거래를 하자며 구매자가 보내준 금액이 당신의 계좌에 꽂히는 것을 볼 때, 당신은 그동안 스쳐지나 온 수많은 떠보기와 네고시에이션, 상세설명에 대한 요구를 떠올린다. 외로운 날들이여, 이제는 안녕. 당신은 게시글의 상태를 판매완료로 돌려놓는다.
이제 남은 것은 택배 접수뿐이다. 구매자가 잘 배송해 달라며 손에 쥐어준 쌈짓돈 4천 원을 받았으니, 도의적으로라도 잘 포장해야 하고, 그러지 못하겠다면 티라도 내야 한다. 아니, 왜요? 포장을 어떻게 하든 원칙적으로 택배사에 맡기면 깨지든 말든 어차피 내 탓이 아니지 않나? 나는 포장을 잘했는데도 택배사에서 잘못 다룰 수도 있잖아. 분명히 말하지만, 이런 생각은 아주 못된 사람의 심보에서 나오는 것이다. 그렇게 나쁜 사람이 있다면 누구든 엉덩이를 맞아야 한다. 그것은 사회적 약속이다. 신성한 중고거래에서는 그러한 약속의 의무가 극대화된다. 타자와의 약속을 성실히 따라야만 당신도 보상받을 수 있다.
그러나 택배 포장 일이 쉽다는 것은 아니다. 평소에 쉽게 눈에 띄던 택배상자는 온데간데없고, 에어캡은 아직까지도 편의점에서 살 수도 없으며, 요즘처럼 온라인 뉴스가 넘치는 시대에는 그 흔한 종이 신문도 찾기 힘들다. 물론 우체국에 가면 싼 가격에 상자는 물론 에어캡도 구할 수 있지만, 불가피하게 편의점 택배를 사용해야 하는 큰 불상사가 벌어질 수도 있다. 이런 일에는 요행이 없다. 평소에 신문지와 택배 상자를 조금씩 모아둔다면, 시계 중고거래에 아주 유용하게 쓰일 수 있다는 걸 기억하는 수밖에.
편의점 택배든 우체국 택배든, 어쨌든 모든 일을 치르고 나면 당신에게는 송장번호가 주어진다. 이것을 구매자에게 보낸다면, 그것을 끝으로 거래는 (거의) 마무리된다. 이렇게 잘 쓰지 않던 시계와 또 하나의 이별을 했다. 자, 그럼, 이제 시계 뭐 살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