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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하는 일상 - 이사 가자(0)

0. 집부터 팔아야 한다

by 완소준

우리가 지금 살고 있는 신혼집은 서울 한강 위쪽에 있다. 한강에 붙어있는 구(區)도 아니다. 동부간선도로를 타고 동네로 들어올 수 있다.


작디작은 보금자리지만 서울에 붙어있고 싶었고, 당시엔 광화문에서 일하던 내가 서울 밖에서 일하게 될지 상상하지 못했다. 민이도 서울 혹은 분당에서 일을 늘려나가고자 했다.

청약을 노릴 자신도 없었고 인플레이션만 겨우 따라가자라는 마음으로 구매했었다. 그 외에는 별생각 없었다. 즉, 민이와 나는 부동산 전문가가 아니다.


그래도 나름 만족하며 지내고 추억도 많이 쌓았다. 함께 집 뒤의 공원을 산책하며 산공기도 실컷 맡고 자전거 타고 천을 따라 한강까지 자주 다니기도 했다. 내가 좋아하는 친구들도 자주 놀러 와줘서 좋은 추억들이 쌓여갔다.


하지만 앞 일이라는 게 역시 알 수 없나 보다.

사업부가 잘 나가고 가치가 점점 높아지자, 오히려 회사에서는 분사라는 결정을 해버렸다. 도전 정신없는 속물 같을 수 있겠지만 분사되는 회사로 전출 가기 싫었다. 본사에 있고 싶었고 전출과 주어진다는 달콤한 보상과 약속들을 믿지 않았다. 언제나 함께할 것 같았던 형들과 존경하는 동료들이 하나 둘도 아니고 일곱 여덟 넘게 우르르 떠나갔고 결국 나도 이력서를 써보기로 결정했다.


4년 차, 5년 되어가는 내가 도전할 수 있는 곳은 많지 않았지만 최선을 다했다. 판교에 있는 회사와 동탄에 있는 회사에 최종 합격하게 되었고, 고민을 거듭하다가 동탄으로 출퇴근하게 되었다. 심지어 민이도 계속해서 남쪽에 일이 몰리게 되었다. 둘 다 한강 건너 오가는 게 고되었고, 시간과 체력을 길바닥에 줄줄 흘리게 되었다. 새벽 일찍 졸린 눈과 부은 얼굴을 비비며 일어나는 민이의 얼굴을 보면 마음이 좋지 않았다.

결국 몸테크는 그만하고 남하하기로 같이 마음먹었다.


민이와 함께 지도를 켜놓고 대충 후보 지역을 몇 개 골라 산책과 드라이브 겸 동네와 단지 구경을 다녔다. (집 구경은 하지 않았다.) 들어갈까 말까 고민하다가 딱 한번 들어가본 동네 부동산에서 배운 결론은

'아, 집부터 팔아야 하는구나.'였다.

지금 살고 있는 집을 팔지 않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설명을 들어보니 현재 집을 먼저 처리 하지 않고 이사 갈 집부터 구하는 건 말 그대로 자폭 행위였다.

그래서 목표 매물을 대략적으로 뽑아낸 후 우리 집의 시세를 고려해 적정한 금액으로 집 앞 부동산에 가서

'안녕하세요? 집 내놓으러 왔어요!'라고 말씀드렸다. 네이버 부동산에 올릴 만한 집 사진 두어 장도 부동산 사장님께 보내 드렸다.


그 이후엔 기다림의 시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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