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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리는 제임스 Feb 07. 2024

나의 두번째 마라톤, 하프 마라톤 완주

내가 달리는 이유와 달리기를 통해 배운 것들 5

어느덧 마라톤 당일인 4월 30일이 성큼 다가왔고, 나는 지난 마라톤대회 때와 같이 대회 하루 전인 4월 29일에 휴가를 내고 집으로 향했다. 4월 29일 저녁, 다음날 있을 마라톤을 위해 필요한 물품들을 챙기며 짐을 쌌고, 몸 상태도 마지막으로 한번 점검해 보았다. 며칠 전부터 계속 이어져 오던 왼쪽 발목의 통증은 아직 완전히 가시지 않았고, 오른쪽 무릎에도 약간의 통증이 느껴졌다. 일단 대회 당일인 다음 날 오전에 다시 한번 몸 상태 점검을 하기로 하기로 하고 나는 다음날 있을 대회를 위하여 일찍이 침대에 몸을 눕혀 잠을 청했다.


4월 30일 마라톤 대회 당일, 나는 오전 5시에 일어나 대회 장소로 떠날 준비를 하기 시작했다. 발목의 통증은 단기간에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으며, 오른쪽 무릎의 통증도 장거리를 뛸 때는 약간 거슬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기에 나는 압박붕대로 통증이 느껴지는 왼쪽 발목과 발바닥을 함께 칭칭 감아, 달리는 동안에 발목이 고정되어 그나마 통증이 덜 느껴지도록 바랄 수밖에 없었다. 오른쪽 무릎의 통증이 약간 걱정되기도 하여 압박 무릎보호대를 착용한 채 6시에 집을 나섰다.


4월 말이지만 이른 아침이라 그런지 아직 쌀쌀한 공기가 콧속으로 들어왔다. 위에 두꺼운 후드집업을 걸치기 잘했다는 생각과 함께, 대회 출발 지점인 광화문 광장으로 향하기 위하여 지하철에 몸을 실었다. 전날에 잠을 잘 잔 덕분인지 몸의 전체적인 컨디션은 괜찮았다. 지난 달리기들의 기록들과 몸의 컨디션을 미루어보아, 발목의 통증이 달리는 도중에 심각해지지만 않는다면 2시간 이내 하프마라톤 완주를 해볼 수도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었고, 이 생각은 지하철이 광화문역에 가까워짐에 따라 오늘의 목표로 바뀌었다. 계산을 해보니 2시간 이내에 완주를 해보면 1km에 5분 40초의 페이스를 유지하며 달려야 한다는 결론이 나왔고, 이 페이스를 유지하며 달려보기로 마음먹었다.


광화문으로 향하는 5호선 지하철 안. 이번 마라톤 대회의 티셔츠인 검은색과 흰색 조합의 체크무늬가 새겨진 반팔티를 입은 사람들이 하나둘씩 보이기 시작했고, 광화문역에 다다랐을 때 지하철 안은 같은 티셔츠를 입은 사람들로 가득 찼다. 보통 단색으로 이루어져 있는 다른 마라톤 대회의 티셔츠와는 달리 특이한 무늬로 수놓아진 이번 대회의 티셔츠 덕분인지, 마라톤을 위해 모여있는 사람들이 유난히 더 돋보였다. 지난 대회와 마찬가지로 러닝 크루로 보이는 여러 무리의 사람들이 크루 이름이 새겨진 커다란 깃발을 들고 삼삼오오 모여 사진을 찍는 광경을 볼 수 있었다. 나는 군의관과 만나기로 한 장소인 이순신 장군 동상 뒤에 가서 군의관을 기다리기 시작했고, 기다리는 동안 환복을 함과 동시에 배에 배번표를 달기 시작했다. 배번표를 다 달았을 무렵 군의관이 도착했고, 우리는 환복을 마친 후에 짐을 맡기기 위해 물품보관소로 향했다. 물품 보관소로 향하는 동안 우리는 서로의 컨디션에 관하여 물었고, 군의관은 만약 달리다가 자신이 뒤쳐지면 내가 먼저 앞으로 나아가도 괜찮다고 말해주었다. 물품을 맡긴 후 우리는 광화문이 정면으로 보이는 출발 지점으로 가서 진행자의 구령과 단상 위에 서있는 선수들의 몸짓에 맞추어 준비운동을 하기 시작했다. 간단히 준비운동을 마친 후, 나와 군의관은 웅장한 광화문을 뒷배경으로 두고, 우리의 첫 하프마라톤을 기념하기 위한 사진을 남겼다. 사진을 찍고 우리는 우리가 배정된 그룹인 C그룹 출발 지점으로 가 제자리에서 발을 천천히 구르며 출발신호가 울리기만을 기다렸다. 드넓은 광화문 대로가 체크무늬 반팔티를 입은 사람들로 가득 찼고, 양옆 거대한 스피커에서는 진행자의 목소리와 함께 강렬한 EDM 음악이 울려 퍼졌다. 오전 8시 5초 전 드디어 카운트다운이 시작되었고, 카운트 다운이 끝남과 동시에 사람들은 앞으로 줄지어 나갔다. 하프마라톤 마지막 그룹에 속해있던 우리는 8시 5분쯤에 출발선을 지나갔고, 언제나 그랬듯 나는 기록 측정을 위해 나이키 러닝 앱을 실행하는 동시에 줄 이어폰을 귀에 꽂고 앞으로 나아갔다.


오른편에 있는 세종대왕과 이순신 장군의 동상을 지나 많은 사람들의 발걸음에 맞추어 군의관과 함께 앞으로 힘차게 나아갔다. 교보문고를 갈 때마다 아무 생각 없이 지나치던 광화문 대로의 한복판을 달리고 있으니, 감회가 새로웠다. 오른편의 인도에서는 많은 사람들이 멈추어 서서 이 거대한 행진을 구경하는 동시에 다양한 방식으로 그들만의 응원을 해주었다. 그렇게 나는 많은 러너들의 물결에 휩쓸려 달리기를 이어나갔다. 첫 1km 페이스는 1km에 5분 22초. 목표를 달성하기에 충분한 페이스였고, 나는 이 페이스를 쭉 이어가리라 다짐했다. 그렇게 5km 정도를 쭉 달렸고, 첫 급수대가 보이기 시작했다. 나는 종이컵을 집어 들어 파워에이드를 한 모금 입에 머금고는 계속 달리기를 이어갔다. 좀 더 달리니 마포대교로 진입하는 오르막길이 나왔고, 그 길을 올라가다 보니 저 멀리 여의도의 고층 빌딩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오르막길은 생각보다 길고 가파르게 이어졌으며, 나는 페이스를 줄여 다리에 무리가 가지 않게 천천히 오르막길을 올라 마포대교로 진입하였다. 한강을 가로지르는 대교 한복판을 가로지르며 달리는 느낌은 신선했다. 전방에는 여의도의 고층 건물들과 63빌딩이 보였고 양옆으로는 푸른 한강이 보였다. 그렇게 나는 주변의 풍경을 둘러보며, 또 이 순간의 기분을 즐기며 대교 한복판을 달렸다. 달리는 도중 고개를 들어 하늘을 올려다보니 더할 나위 없는 푸른색의 하늘에 커다란 구름 조각들이 흩어져 있는 모습이 이 거대한 다리 위의 달리기를 한층 더 즐겁게 만들어 주었다. 그렇게 마포대교를 지나 대략 7km 구간에서 우리는 여의도 거리 한복판으로 진입하였다. 왼편에는 여의도를 상징하는 고층 빌딩들이 빼곡히 줄지어있었고, 진짜 도시 한복판을 달리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빌딩들이 빼곡히 줄지어 있는 대로를 지나 우리는 다시 4차선의 작은 도로로 진입하였다. 10km 지점. 현재 페이스는 1km에 5분 36초. 확실히 초반보다는 페이스가 많이 떨어진 것이 느껴졌다. 그래도 일단은 무리를 하지 않고 계속 앞으로 나아갔고 두 번째 급수대가 보였다. 이번에는 음료가 아닌 생수가 든 컵을 집어 들었고, 달리면서 조금씩 목을 축이기 시작했다. 테이블 위에 쌓여있는 바나나도 보였기에 잠깐 고민을 하였지만 달리면서 먹으면 목이 멜 것 같아 그냥 지나쳤다. 그렇게 500m 정도를 더 지나자 거대한 터널이 나왔다. 터널에 들어가자마자 나는 생각지도 않았던 진풍경을 체험할 수 있었다. 터널 안은 마치 클럽과도 같이 화려한 조명들과 큰 소리의 EDM 음악으로 가득 차 있었다. 사람들은 터널에 진입하자 머리 위로 손을 흔들고 소리를 지르며 앞으로 나아갔다. 이 몽환적인 분위기는 내가 마치 꿈속에서 달리고 있는 듯한 기분이 들게 해주었다. 400m가량 되는 긴 터널을 지나 밖으로 나오니 평범한 코스가 다시 눈앞에 펼쳐졌다. 마치 신나는 콘서트가 끝난 것과도 같은 아쉬운 감정이 들었다. 나는 1km에 5분 30초 정도의 페이스를 유지하며 이어폰 넘어 귀로 흘러들어오는 음악의 비트에 발걸음을 맞추어 계속 달리기를 이어나갔다.


12.5km 정도에서 우리는 양화대교로 진입했다. 마포대교보다는 폭은 좁았지만, 우측으로 바로 보이는, 햇빛이 표면에 반사되어 아름답게 일렁이는 한강의 모습은 달리는 재미를 더해주었다. 1km 가 좀 넘는 대로를 가로질러 우리는 다시 시청 방향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이 구간부터는 주행코스 양옆으로 차들이 빠른 속도로 다니고 있었다. 모세의 기적과도 같이 정신없는 차도의 한복판을 관통하여 질주하는 느낌이 너무 좋았다. 중간중간 인도에서 커다란 깃발과 확성기를 들고 화이팅을 연신 외치는 러닝 크루들도 보였다. 몇몇은 커다란 손 모양의 피켓을 들어 러너들이 피켓에 하이파이브를 할 수 있게끔 하였다. 나도 우측으로 다가가 손바닥 모양의 피켓을 나의 손바닥으로 치며 달렸고, 하이파이브를 하는 동시에 우리는 서로에게 화이팅을 외쳐주었다. 14km. 합정역을 지나 망원역 방향으로 뛰기 시작하였다. 현재 페이스는 1km에 5분 31초. 계획했던 것보다는 약간 빠른 페이스를 계속 여유롭게 유지하며 달리고 있었다. 이 지점부터 나는 군의관에게 양해를 구한 뒤 먼저 앞서가기 시작했다. 이 페이스를 계속 유지한다면 목표를 달성할 수 있을 거 같다는 자신감이 강하게 들었다. 도심 속에서 차량을 통제하는 경찰분들의 호각 소리에 맞추어 달리다 보니 어느새 15km 지점에 도착하였고, 오른편에 급수대가 보였지만, 이번에는 목이 그리 마르지 않았기에 급수대를 그냥 지나쳤다. 그렇게 나는 역전에 있는 도로들을 가로질러 계속 달렸다. 16km를 좀 지났을 때쯤, 저 멀리 상암 월드컵 경기장이 보였다. 월드컵 경기장을 마주하니 이제 얼마 남지 않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제 남은 거리 5km. 나는 내가 생각한 페이스로 계속 달렸고, 생각했던 것보다 몸의 컨디션이 좋았다. 상암월드컵경기장을 오른쪽에 두고 달리는 주행코스에 진입하였고 끝이 보이지 않는 직진코스가 이어졌다. 17km 지점. 우려했던 일이 일어났다. 왼쪽 발목의 통증이 다시 도지기 시작했다. 하지만 통증이 못 달릴 정도로 심한 것은 아니었기에 계속 달리기를 이어나갔다. 주행코스 왼편으로는 반환 지점을 지나 반대편에서 뛰어오는 러너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이때 나는 “아 나도 곧 있으면 반환 지점을 지나 반대편으로 달리겠구나” 생각했다. 하지만 웬걸. 직진코스의 끝은 보이지 않았고, 발목의 통증은 심해져만 갔다. 18km 지점. 걷는 사람들이 하나둘 보이기 시작했다. 이 직진코스를 달리면서, 이따가 내가 직진한 거리만큼 반환하여 되돌아가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고 정신이 아찔해졌다. 18.5km 지점. 아직 반환 지점은 보이지는 않았고, 이 직진코스를 반환하여 다시 돌아가야 한다는 생각과 왼쪽 발목의 통증이 합쳐져 나를 육체적으로 그리고 정신적으로 괴롭히기 시작했다. 19km 지점. 드디어 반환 지점이 보였고, 나는 속도를 줄임과 동시에 왼쪽으로 꺾어 반대편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왼편에 반환 지점을 향해 뛰고 있는 사람들을 보니 몇 분 전의 내가, 지금 내가 뛰고 있는 방향으로 뛰던 사람들을 부러워했던 모습이 떠올랐다. 앞으로 남은 거리는 2km 남짓. 나는 정면을 똑바로 바라보고 뛰며 발목의 통증을 애써 무시한 채 계속 달려 나갔다. 그러던 중 왼편에 반환 지점을 향해 달려가는 사람들의 무리 속에서 파란색 반바지를 입고 달리는 군의관이 눈에 띄었다. 나는 그 많은 사람 속에 군의관을 찾은 것이 신기하여 손을 흔들며 반갑게 인사를 했고, 좀만 더 가면 반환 지점이라고 얘기를 해주었다. 20km 지점. 끝없는 직진 코스는 계속되었다. 이제는 허벅지도 땡기기 시작했고 심박수도 엄청나게 빨라지는 것이 느껴졌다. 앞으로 끝없이 길게 늘어진 직진 코스를 바라보니 정신적으로 더 지쳐져만 갔다. 그때부터 나는 앞을 보지 않고 그냥 바닥을 보며 달리기 시작했다. 이 구간부터는 100m가, 마치 1km처럼 느껴졌다. 나의 발바닥은 불이 난 것처럼 뜨거워짐과 동시에 얼얼해져만 갔고, 발목의 쿡쿡 찌르는 듯한 통증은 파스를 붙인것 마냥 화끈한 느낌으로 바뀌었다. 나는 뛰고 있지 않았다. 그냥 몸을 앞으로 기울여 러닝화가 나를 이끌고 앞으로 나아가도록 러닝화에 기댈 뿐이었다. 20.6km 지점. 드디어 기나긴 직진 코스가 끝나고 오른쪽 길로 빠졌다. 기나긴 직진코스가 끝났다는 안도감과 1km도 안 남았다는 생각이 정신적 압박감을 줄여주었다. 200m 정도를 더 가서 왼쪽으로 꺾으니, 결승선이 보이기 시작했다. 남은 거리 200m가량. 전력 질주를 했다. 페이스는 1km에 4분 58초. 이를 악물고 달렸다. 최선을 다하여 결승선을 통과했을 때의 그 짜릿함이 얼마나 달콤한지 알기에, 죽을 것 같은 고통에도 불구하고 마지막 있는 힘을 쥐어짜 내 달렸다. 그렇게 나는 결승선을 통과하였고, 오른쪽 팔뚝에 매달려있는 핸드폰 스크린을 바라보아 기록을 확인하였다. 1시간 56분 29초! 내가 목표했던 2시간 이내 완주 목표를 달성했다. 일단 발이 너무 뜨겁고 일어서 있을 힘도 없었기에 우측으로 빠져 주저앉아 다리를 주무르며 군의관을 기다렸다. 한 15분 정도 지났을 무렵 군의관이 저 멀리서 달려오는 것이 보였고, 우리는 같이 바닥에 주저앉아 헛웃음을 치는 동시에 서로를 바라보며 물어보았다. “우리 이 거리의 2배를 과연 뛸 수 있을까?”.


이번 대회를 통해 목표한 일의 기한을 본인이 여유롭다고 생각하는 것보다 짧게 설정하여 주어진 기간에 열심히 최선을 다하면 생각보다 목표를 더 빨리 달성할 수 있다는 교훈을 얻었다. 우리가 하프마라톤을 처음에 계획했던 10월에 참가했다면, 우리는 그에 맞추어 훈련했을 것이고 하프마라톤을 완주하는데 6개월의 시간이 더 걸렸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계획을 수정하여 애초의 계획보다 6개월 정도 하프마라톤을 일찍 완주하기로 목표를 재설정하였고, 이 목표에 맞추어 약 40일 동안 주어진 기간에 최선을 다하였다. 그 결과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빠르게 목표를 이룰 수 있었다. 아마 10월에 하프마라톤에 참가했으면 훈련 과정은 좀 덜 고통스러웠을 거고, 대회에서도 좀 더 좋은 기록으로 완주 했을지도 모른다. 목표를 앞당겨 이루기까지의 과정은 더 고통스러웠지만, 오히려 더 빨리 성취하여 애초에 목표했던 것 그 이상을 바라볼 수 있게 해주었다.


나를 죽이지 못하는 고통은 나를 더욱 강하게 만든다
- 프리드리히 니체 -


철학자 니체의 말 중에는 “나를 죽이지 못하는 고통은 나를 더욱 강하게 만든다”는 말이 있다. 10km 마라톤을 완주한 후 하프마라톤까지 40일 동안의 연습 과정에서 발톱이 빠지고, 발목과 무릎이 아팠던 경험은 고통스러웠을지 몰라도, 그 고통을 극복하고 목표를 달성함으로써 내가 짧은 기간에 많이 성장한 것은 확실하다.


그렇게 나의 두 번째 마라톤, 하프 마라톤은 과연 우리가 풀코스 마라톤을 완주할 수 있을까라는 의문과더불어, 목표를 이루기까지의 기간을 최대한 짧게 설정하여 주어진 기간에 최선을 다하는 것이 나를 좀 더 많이 그리고 빠르게 성장시킬 수 있다는 교훈을 남긴 채 마무리되었다.







마라톤 시작전 군의관(좌)과 함께




하프마라톤 완주 기록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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