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집 술집, 꽃 술집
광명사거리에 있는 한 주택가 골목에 술집 이름이 ‘꽃집’인 술집이 있었다.
10년 전이었다. 첫 직장생활을 시작한 지 3개월이 된 어느 날. (3년 아님 주의) 저녁 퇴근길, 다음날 ‘사표를 낼까?’ ‘사표를 내야겠지?’ ‘사표를 내고 싶다’를 고민하다 속이 타고 목이 타 시원한 맥주 한잔이 먹고 싶어 졌다. 지하철역에서 내려 집으로 걸어가는 길. 저울로 재어보진 않았지만 그때의 내 몸은 천근, 발걸음은 만근, 마음은 십 만근 정도 됐을 것이다.
총 십일만 천근의 몸과 맘을 이끌고 걸었다. 이 길을 따라 걸어가면 집이 아닌 낯선 어딘가로 가닿길 바랐다. 잘 해낼 수 있을 것 같았던 첫 직장 생활이었다. 하지만 사원 앞에 애교와 싹싹함과 막내가 붙은 직함, 전혀 나에게 맞지 않고 수동적이었던 업무, 보수적 아니 그냥 보수 그 자체인 상사, 그럼에도 불구하고 월급이 필요했던 생활형편까지. 모든 것이 혼란스러웠다. 그때의 나는 고립되고 싶었다.
어느덧 일자로 걷고 있지 않았다. 갈지자로 걸었다. 중학생 때부터 걸었던 골목인데, 갈지자로 걸으니 초등학생이 되어 걷는 것 같았다. 내 몸뚱이 만한 가방을 메고 실내화 주머니를 발로 툭툭 차며 걷는 기분이 들었다.
고개를 들어보니 한 가게 앞이었는데, 하얀 종이 위에 빨간 글씨로 ‘생맥주 2000원’이라 써진 술집 앞이었다. 때려치움을 고민하는 직장인의 퇴근길 시선은 보통 땅 아니면 하늘인 경우가 많다. 차마 내 눈앞의 현실을 똑바로 응시할 수 없다. 한 번씩 반대로 내려다보거나 올려봐 줘야 한다. 생각이 많고 자꾸만 한숨이 나니까.
올려봐 간판을 보니 ‘광명 꽃집’이라고 써져있었다. 그런데 분명 ‘프리지아 2000원’이 아니었다. ‘생맥주 2000원’이었다. 꽃집이 술집이었고, 술집 이름이 꽃집이었다. (굉장히 헷갈린다) 그 꽃집 아니지 술집, 이름이 꽃집이니까 꽃집도 맞지. 여하튼 그 술집에 들어가 생맥주 한잔과 쏘야를 시켰는데, 나는 과연 꽃집도 술집도 아닌 것 같은 이 허름한 가게의 정체가 궁금하기도 하고, 과연 손님이 있을까? 있다면 대체 어떤 사람들일까? 궁금해서 입구 바로 앞 테이블에 앉아 맥주 한 모금에 응시 한 번을 반복하며 가게 문만 자꾸자꾸 쳐다보았다.
손님이 은근히 있었다. 자리가 꽉 차진 않았지만 대충 찼다. 무엇보다 그 꽃집을 진짜 꽃집인 줄 알고 꽃을 사러 오는 손님은 아무도 없어 보였다. 다들 어찌 알고 그 꽃집에 알아서 술을 마시러 왔다. 알고 보니 맛집인가? 쏘야에 대한 기대감은 높아졌다. 나는 꽃집 술집에서 술을 마시니 왠지 술에서 향기가 나는 것 같아 꼴딱꼴딱 맥주가 잘도 넘어갔고, 왠지 그 술집에 아니 꽃집에. 둘 다 맞지. 아무튼 꽃집 술집에 아가씨는 예쁠 것만 같았지만 쏘야를 들고 나온 것은 후덕한 아주머니였다. ‘엄마!’라고 부를 뻔했다. 얼굴이 조금이라도 후덕한 아주머니들은 왜 다 우리 엄마 같지? 심지어 파마머리, 화려한 꽃무늬 티셔츠, 편안한 인상, 왜 이렇게 다 똑같지? 엄마줌마! 놀랬잖아요!
하지만 쏘야를 한입 먹어보니 엄마줌마는 그냥 아주머니가 되었다. 맛이 없었다. 쏘야가 맛이 없을 수가 있나. 케찹만 넣고 볶아도 맛있을 것 같은데... 인상 때문에 부풀려진 나의 기대는 그저 기대였다. 기다린다고 다 이루어지는 것은 아닌 기대. 사장님? 이 소시지 야채볶음 맛이 너무 예의가 없어요!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아주머니의 인상이 너무 좋아 나는 웃으며 물었다.
사장님! 술집 이름이 왜 꽃집이에요?
응. 꽃집하다 망해서 술집 차렸는데 다 바꿨는데 간판을 안 바꿨어.
꽃 사러 왔던 손님들이 졸지에 술꾼 됐지 뭐.
내 잘못은 아니야!
아하하. 그러게요. 아주머니 잘못은 아니죠.
꽃향기든 술 냄새든 취하고 싶은 사람들의 잘못이죠 뭐.
밑도 끝도 없는 사장님과의 대화. 내 대답을 들은 사장님의 좋은 인상이 조금 안 좋아 보였다. 어쨌거나 안주로 시킨 쏘야는 맛도 없을뿐더러 소시지는 몇 개 없고 야채만 엄청 많아서 ‘야쏘’라고 이름 바꿔 불러야 할 것 같았다.
퇴사를 고민하던 퇴근길에 만난 (인생) 술집. 맥주는 시원했지만, 너무나 맛이 없었던 소시지 야채볶음 때문에 그날 나는 사표를 써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아니 이렇게 맛없는 안주를 내어주는 사장님도 꽃집 때려치우고 술집을 차렸는데 나라고 왜 회사를 못 때려치울까. 말도 안 되는 논리로 나를 다그쳤던 날이었다. 그때의 나는 꼬투리가 필요했다.
어쩌면 그 꽃집 술집의 쏘야가 아주 맛있어서 내가 그날 시원한 맥주에 쏘야를 남김없이 싹싹 먹고 집으로 돌아왔다면 나는 조금의 기운을 얻어 다시 출근을 했을지도 모른다. 맛있는 음식에는 위로가, 맛없는 안주에는 화가 나니까. 그날의 나는 참고 싶지 않았다. 극강의 고민과 혼란이 치밀어 오를 때. 그 감정을 삭이거나 수그러뜨리는 것보다 때로는 터뜨려 보는 것도 방법이 될 수 있다. 똑바로 걷지 말고 갈지자로 내 발로 길 위를 휘갈겨 걸어보며 나를 더더 카오스의 구렁텅이로 내던져 보는 것이다. 소용돌이치고 떠밀리고 휘휘 돌아보며 마구마구 흔들리다 보면 오히려 어지럽고 복잡했던 마음들이 정리될 수도 있다는 것을 그날 나는 느꼈다.
다만 한가지, 결국 ‘중심’을 잡아야 한다는 것도 잊지 않았다. 쏘야를 핑계 삼아 퇴사를 결심했지만, 집으로 돌아오는 길. 나는 내 마음을 다잡고 앞으로 어떻게 살 것인가를, 내 결정에 책임을 잘 질 것을 무겁게 다잡았으니까. 결심 후엔 중심. 두 마음 모두 중요하고 소중하다.
꽃집 술집. 지금은 없어져 버린 꽃집 술집. 그 사장님은 술집을 또 때려치우고 뭘 차리셨을까? 꽃집에서 술집으로, 술집에서 그냥 나처럼 집으로 가셨을까? 문득 궁금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