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삶의 질의 수직 하강을 경험하는 반복되는 일상
1. 출근길, 나는 삶의 질이 수직으로 하강하는 것을 느끼며 일터로 향한다.
여의도행 9호선, 오로지 인간으로 앞 뒤로 꽉꽉 둘러 막힌 지하철을 타고 회사로 향하며, 매일 아침 벌써 출근길부터 모든 에너지를 소모한 기분을 겪곤 한다. 그렇게 힘겹게 인간들 틈을 헤집고 나와 지상으로 올라오면 흐린 날씨도 아니건만 뿌옇게 수 놓인 하늘을 바라보며 일회용 마스크를 꺼내 얼굴을 꽁꽁 둘러싼다.
사람들 틈바구니에서 앞뒤로 꽁꽁 압박당한 채로 숨 쉴 틈도 갖지 못하다가, 겨우 해방되어도 내겐 온전히 숨 쉴 자유는 주어지지 않는 것이다.
아침의 청명한 하늘이라도 바라보며, 하루의 시작을 상쾌하게 독려하는 '소확행'을 누리고 싶은 욕망은 이제는 너무 큰 욕심이 되었는지도 모른다.
2. 그리고 일터에서, 다시 한번 삶의 질의 수직 하강을 경험한다.
상사는 제멋대로 느지막이 출근하여, 아주 일찍 퇴근하거나 이마저도 아프다거나, 아이에게 문제가 생겼다거나 등등 제멋대로 나오지 않는 경우가 무수하다. 그럼 많은 일들은 오롯이 아랫사람들에게로 돌아간다. 그리고 나는 애석하게도 아랫사람에 해당한다.
그리고 오늘은 또 안타까운 소식을 들어야만 했다. 직장인이 한 줄기 희망으로 안고 버틸 수 있는 희망인 '주말', 그 소중한 시간에 회사의 행사를 개최한다는 소식. 흐린 눈으로 피해보려 하지만, 공지사항에 버젓이 적혀있는 '전원 필참'이란 글자를 지나칠 수가 없다.
퇴근 시간이 가까워지니 갑자기 처리해야 할 업무가 마구 쏟아져 들어와 자동으로 업무시간이 연장되며 퇴근 후 하려고 했던 소소한 계획을 머릿속에서 자동으로 지워낸다. 여유롭게 커피를 내려 책 한 권 읽으려 했던 작은 사치는 청소, 식사, 빨래, 샤워 따위의 반드시 해야만 하는 일들에 밀려나 오늘도 쓸쓸히 퇴장하고 만다.
3. 퇴근 후에도 이는 반복된다.
아침과 마찬가지로 퇴근길의 지옥철 역시 이름 그대로 '헬'이다.
도저히 탈 수가 없어 지하철을 한 번 보낸 후, 다음 열차에 오른다. 분명 더는 공간이 없는 것 같아 보이 건만 이미 꽉 들어찬 사람 사이로 내 몸을 밀어 넣으면, 내 뒤로 줄지어 있던 수많은 사람들의 행렬이 우르르 물 밀듯이 밀려와 내 몸은 여러 번의 압축을 반복한다. 여행 갈 때 사용하는 압축팩이 된 거 같은 '전지적 압축팩'의 감정을 느끼며 열차는 출발한다.
겨우겨우 목적지에 내리고 나면 벌써 모든 피로를 직격탄으로 다 맞은 거 같다. 집에 들어와 손발을 씻고 옷을 갈아입은 후, 대충 있는 것들을 꺼내 늦은 저녁 식사와 뒷정리를 대충 하고 나니 벌써 느지막한 시간이다. 하필 마실 물도 떨어지고, 휴지도 다 떨어져 어쩔 수 없이 길 건너에 있는 슈퍼에 갔다 돌아오니 직장인의 저질 몸뚱이는 고단함으로 축 늘어져 무기력증이 인다.
잠깐만 쉬어야지.
잠시 아무것도 안 한 채 누워 휴대폰을 몇 번 만지작거리다 정신을 차려보니 벌써 한 시간이 순식간에 사라졌다. 잠들어야 할 시간까지 할 수 있는 일들을 열심히 계산해보니 도저히 무리일 거 같아 청소와 빨래는 내일로 미룬다.
씻는 것 까진 미룰 수가 없어 어쩔 수 없이 몸을 일으킨다. 욕실을 향해 무거운 발걸음을 한 발 한 발 내딛으며 '머리를 감겨주는 기계가 있었으면.' 하는 유치하고 어이없는 생각을 한다.
씻고, 머리를 말리고 돌아오면 몸은 너무나도 고단한데, 괜히 하루가 이렇게 가는 게 너무 아까워서 누운 채로 휴대폰을 통해 이것저것 괜히 들여다보다 또 자야 하는 시간을 지나친 채, 지금 자면 몇 시간을 잘 수 있는지 계산을 한 번 해본다. 그리고 문득 궁금해진다.
내 청춘만 이렇게 한심하고 아깝게 흘러가고 있는 건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