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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비판적일상 Oct 25. 2018

퇴사를 반복하는 길 잃은 청춘

퇴사를 반복하면서도, 또 일하지 않는 내 모습을 꿈꾼다. 



대학 졸업 후, 나는 임용고시를 몇 년간 준비하다 인생 최초로 국내의 한 스타트업 회사에 입사했고, 3개월 만에 퇴사했다. 


퇴사의 이유는 주말도, 퇴근 시간도, 휴가도 없기에 내 청춘이 갈려 나가는 느낌을 받아서.


그리고 두 번째로 입사한 작은 규모의 회사는 그나마도 주말 이틀과 공휴일을 다 쉬게 해 주고, 전보다 퇴근시간이 빠르다는 점에서는 나아졌지만 비슷한 이유로 나는 6개월 만에 퇴사하고야 말았다. 그리고 현재 1년이 넘게 재직 중인 지금의 회사에서도 나는 매일 일 하지 않는 나를 꿈꾸곤 한다. 





누군가는 이런 나를 보며 '참을성이 없다', '요즘 애들은 힘든 것을 하지 않으려 한다'고 얘기 할지도 모르겠다. 뭐, 일면 맞는 얘기일 수도 있겠다. 조금 더 참을성이 많은 사람이었더라면 같은 환경을 더 오랜 시간 견뎠을 수 있을 테니까. 


하지만 나는 참을성이 없었고, 결국 퇴사를 반복할 수밖에 없었다.


첫 회사에 대해서는 언급조차 않겠다. 정해진 퇴근시간도 없는 회사에, 야근이 당연시 되었던 곳이었으며, 주 6일에, 휴가도 없는 회사라는 것으로 모든 설명을 일갈한다.

 

두 번째 회사에서는 도무지 참을 수가 없었다. 


법적으로 정해진 출퇴근 시간이 계약서에 엄연히 명시되어 있음에도, 출근시간을 딱 맞추거나 10분 정도 일찍 출근하면 "미리미리 와서 주변 정리도 좀 하고, 일 할 준비를 해야지" 따위의 훈계를 상사에게 들어야 했다. 하지만 정해진 퇴근시간에 딱 맞춰 퇴근하는 것은 눈치를 보아야 하며, 심지어는 사장의 기분이 좋지 않은 날이다 싶으면 30분 넘어 퇴근하는 것도 할 수가 없는 부당한 현실을 나는 참기가 힘들었다.


한 사람을 뽑아 놓고 세 명분의 역할을 해 내기를 바라며, 요구를 해대지만 정작 월급은 한 사람 몫에 해당하는 금액마저도 지불하지 않는 부당한 현실도.




하지만 내가 정말 참을성이 없었던 게 맞을까. 깊이 생각해보면 또 그런 것도 아니었던 것 같다.




연차, 월차가 보장되어 있지 않아 여행은 꿈도 꿀 수가 없었던 내게, 사장의 와이프인 회계 담당자는 (내 업무도 아니었던)각종 잡무를 떠넘기고 2주 간의 휴가를 냈다. 그리곤 딸과 함께 유럽여행을 다녀와 이렇게 말했다. 


"여행은 젊을 때 많이 다녀야 돼. 나는 다 늙어서 여행하려니까 힘이 들더라. 그런 말이 있잖아. 여행은 다리가 아니라 가슴이 떨릴 때 가야 한다고. 알았지? 여행 젊을 때 빨리 많이 다녀, 응?"


가슴은 무슨, 주먹이 먼저 떨렸음에도 나는 "휴가가 있어야 여행을 가던가 하죠."라는 말 한마디도 하지 못했음은 물론이고


세금이며, 월세며 이것저것 빼고 나면 생활비까지 겨우 0원이 되어 저축조차 할 수 없는 채 200만 원도 되지 않는 나의 월급에도 "요즘 애들은 힘든 일은 안 하려고 하고, 진득하게 한 곳에서 뭘 좀 쌓으려는 노력을 안 한다"는 사장의 불평을 들으며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입술만 꾹 깨물었던 걸 보면.








물론 지금은 연차와 월차도 법적으로 보장되며, 출퇴근 시간도 제대로 보장받고 있다. 재정 상황도 전보다는 나아졌다. 여러모로 사정이 나아진 셈이므로 여태 일을 하고 있지만, 그럼에도 자꾸만 일을 하지 않는 내 모습을 꿈꾸곤 한다. 이번엔 '상사'로 인한 극심한 고충을 겪고 있기 때문이다. 


게으른 상사는 일처리를 똑바로 하지 않고 자신이 할 수 있는 작은 일마저 아래로 모두 내려보낸다. 그리고 자리에 없는 날이 태반이다. 


거의 일주일에 한두 번 꼴로 부서 단톡 방을 이용하여 아침마다 출근을 못 한다는 메시지 하나를 보내곤 한다. 하물며 퇴근은 또 정해진 퇴근 시간보다 1시간 이상씩 일찍한다. 업무 때문에 그를 찾을 때마다 자리에 있었던 적은 10분의 1쯤 될까 말까다.


윗사람이 게으르고 일을 안 하는 인간이라는 데에서 오는 스트레스가 여간 대단한 것이 아니라는 말은 들어왔는데, 실제로 체험을 하고 보니 정말이지 엄청난 양의 스트레스가 아닐 수 없다.


단군 이래 최대 스펙을 보유한 현재의 청춘들의 윗사람으로 군림하고 있는 이들 중, 이런 유형의 상사들이 태반이라는 사실은 주변으로부터 익히 들어 알고 있다. 이게 더욱 문제가 되는 이유는, 상대적 박탈감을 유발한다는 사실이다. '분명 저 인간이 지금 이 세대에 취업을 했더라면 분명 하지 못 했을 텐데..'라는 생각을 들게 하는 것은 물론, 더 높은 직급에, 더 많은 돈을 받고 있다는 사실을 아는데 일은 아래에서 더 많이 하고 있다는 사실은 업무적 무력감과, 박탈감을 주어 극악의 스트레스를 만들어내기 때문이다.





하여간 한국에서 청춘으로, 사회 초년생 직장인으로 살다가는 둘 중 하나의 비극이 일어날 것만 같다는 생각이 든다. 업무강도, 인간에 의한 스트레스로 병사하거나 혹은 타인을 죽이거나. 


정답은 없다는 것도, 사회생활이라는 게 여러모로 녹록지가 않다는 사실도 잘 안다. 그래서 매번 퇴사를 반복하면서 내 청춘이 아깝고 불쌍하다는 자기 연민에 빠지곤 하고, 될 수도 없는 '돈 많은 백수'를 매일 꿈꾸다 현실을 떠올리며 '사는 게 괴롭다'는 생각만 되풀이할 뿐이다.  


어릴 때는 대학만 가면 다 끝나는 줄 알았고, 학생이 된 후에는 학교만 졸업하면 어떻게든 하고 싶은 걸 하고 살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졸업을 하고 나서는 취직만 하면 다 해결이 될 줄 알았다. 


그런데 막상 생각해 온 방향의 최종 목적지에 서 있는 지금은, 정작 허무한 감정에서 헤어 나올 길이 없다. 덕분에 나는 오늘도 답답하고, 어제도 답답했고, 내일도 답답할 것이 분명하다.


그럼에도 나는 문제의 해결방법이 무엇인지는 도무지 알 수가 없다. 그리하여 나는 남은 나의 아까운 젊음을 모두 밤새 고민으로 뒤척이는 데 써야만 할 것 같다는 생각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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