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관에서 예언한 '늦둥이 아들'을 사위로 만났다

기브 앤 테이크보다 깊은, 사위가 차린 생일 밥상

by 해림

"우와! 대파랑 파스타, 등심이 한 접시에 담겼네. 너무 예쁘다!"


나의 생일은 평일이었다. 굳이 식구들 모여 고생하지 말자며 조용히 지나가려는데, 금요일 오후 큰딸에게 연락이 왔다. 장을 봐두었으니 저녁 식사를 하러 오라는 전갈이었다.


사실 사위의 밥상을 받는 것이 편치만은 않았다. 매일 아내와 딸아이의 밥을 챙기고 아기 이유식까지 직접 만들어 먹이는 살뜰한 사위인 줄은 알지만, 장모인 내가 그 수고로움을 더하고 싶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정중히 거절해 보았으나 "이미 고기를 사두었으니 무조건 오셔야 한다"는 카톡이 왔다. 결국 출장에서 돌아온 남편과 함께 조금은 미안하고 불편한 마음을 안고 큰딸 집으로 향했다.


식탁 위에는 잘 익은 알등심과 파스타, 구운 대파가 정갈하게 어우러진 산뜻한 요리가 놓여 있었다. 세상에, 어느 사위가 장모 생일이라고 팔을 걷어붙여 직접 요리를 대접해 줄까.


문득, 만약 나에게 아들이 있었다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스쳤다. 내 아들이라면 내 생일에 직접 요리를 해서 내 입에 따뜻한 밥을 넣어주었을까? 기억을 아무리 더듬어봐도 돌아가신 친정어머니가 당신의 세 아들에게 이런 살뜰한 대접을 받았던 장면은 떠오르지 않는다. 언제나 어머니의 끼니를 걱정하고 챙기는 건 딸인 나의 몫이었다.


장모로서 나 역시 큰 딸네에 적지 않은 보살핌을 주며 산다. 주말마다 불러 한 끼 든든히 먹여 보내고, 김장 김치는 일 년 내내 우리 집 김치냉장고에서 퍼다 나르게 한다. 손녀를 위한 장조림이나 멸치볶음도 정성껏 만들어 채워주고, 제철 과일 잼이나 된장, 간장도 늘 따로 담아 챙겨준다.


세상사가 기브 앤 테이크라지만, 자식 곁에 사는 부모라면 누구나 하는 소소한 보살핌일 뿐이다. 몇십 억 아파트를 덜컥 증여하는 능력 있는 부모들에 비하면 '새발의 피'일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사위는 우리의 소소한 도움을 당연하게 여기지 않는다. 도리어 우리 부부를 초대해 정성 담긴 요리를 맛보게 해 주니, 주는 데만 익숙하고 받는 데는 서툰 나로서는 고마움을 넘어 과분한 부담마저 느껴진다.


사위가 차려준 이 밥상 앞에서 나는 잊고 지냈던 오랜 예언 하나를 떠올렸다. 2대 독자인 남편 집안에 아들을 낳지 못해 대를 끊었다는 자책감으로 살던 시절이 있었다. 아들 못 낳은 며느리는 좋은 소리 듣기 힘들던 분위기 탓에 스트레스가 심했다. 답답한 마음에 찾았던 철학관에서 노학자는 나에게 이런 말을 남겼다.


"늦게 아들이 생길 수도 있겠네."

그저 의뢰인을 위로하려는 빈말이라 여겼고, 실제로 나에게 아들은 생기지 않았다. 하지만 요즘 같은 날들이라면, 이 큰사위가 바로 그 예언 속 '늦둥이 아들'의 대행이 아닌가 싶다.


물론 사위 입장에서는 장인, 장모가 아들처럼 여기겠다고 다가오는 것이 부담스러울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무언가를 바라는 것이 아니다. 그저 마음 한구석 슬쩍 기대어 의지할 곳이 생겼다는 사실만으로도 든든할 뿐이다. '아들은 며느리의 남자'라고 여기며 거리를 두어야 섭섭함이 없다는데, 나는 남의 집 아들을 달랑 받아 내 아들인 듯 마음을 기대고 있다.


두 딸을 연이어 출산한 뒤, 이렇게 의젓하고 똑똑하고 착한 막내아들을 뒤늦게 선물로 받은 기분이다. 문득 이 귀한 아들을 정성껏 키워 보내주시고 이미 세상을 떠나신 안사돈에게 깊은 감사를 전하고 싶어진다.


"안사돈, 이렇게 좋은 아들을 제게 보내주셔서 참 고맙습니다."


사위가 구워준 등심 한 점이 유난히 달고 따뜻한 저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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