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접란이 만개할 때, 엄마는 나비가 되어 떠났다

삶과 죽음, 그리고 새 생명의 신호를 전해준 베란다 정원일기

by 해림

호접란이 피울 때 떠나고, 다시 피울 때 돌아오다

“여보, 여기 좀 봐요. 어머니 집에서 가져온 호접란에 다시 꽃봉오리가 맺혔네요.”


작년, 어머니가 요양병원으로 가신 뒤 나는 평생의 흔적이 담긴 어머니의 집을 정리했다. 대부분의 물건은 버려졌지만, 어머니가 아끼시던 호접란 화분만큼은 차마 버리지 못하고 우리 집 베란다로 데려왔다. 생전의 어머니는 외출길에 아파트 상가 꽃집을 그냥 지나치지 못하고 호접란을 사 모으셨다. 정갈하게 돌보는 법은 없으셨어도, 그 꽃들을 당신의 손 닿는 테이블 위에 두고 곁을 지키게 하셨다.


어머니가 처음 중환자실로 실려 가셨을 때, 주인 없는 빈집의 호접란은 진보라색 꽃을 만개시켰다. “주인도 없는데 염치없이 피었네”라고 투덜거렸지만, 나는 그 꽃을 보며 직감했다. 어머니가 아직은 이승의 끈을 놓지 않으시리라는 것을. 신기하게도 호접란은 어머니가 중환자실을 네 번이나 오가는 긴 시간 동안 시들지 않고 버텨주었다.


그렇게 우리 집으로 옮겨온 호접란이, 잎은 쭈글쭈글 시들어가면서도 기어이 다시 새로운 꽃대를 올렸다. 나는 그것을 하나의 ‘징조’로 읽었다. 실제로 꽃봉오리가 맺히던 날, 위독하시던 어머니는 다시 또렷한 의식을 회복하셨다. 호접란으로 점을 치는 나를 보며 남편은 핀잔을 줬지만, 꽃이 나비처럼 날개를 펼칠 때 우리 집에는 또 다른 기적이 찾아왔다.


난임으로 마음고생 하던 둘째 딸이 선물했던 호접란에서 꽃이 피어난 것이다. 나는 딸에게 묻지도 않고 ‘아, 드디어 아이가 찾아왔구나’라며 혼자 점괘를 쳤다. 말하지 않아도 느껴지는 생명의 기운. 얼마 뒤, 안정기에 접어든 딸은 수줍게 임신 소식을 전해왔다.


나의 작은 베란다 정원에서 호접란은 그렇게 삶과 죽음, 그리고 새로운 생명의 신호를 보내고 있었다. 나는 꽃이 피어나는 속도를 보며 어머니가 당분간은 곁에 머물러 주실 거라 믿었다. 하지만 호접란이 가장 화려하게 만개하여 나비처럼 춤을 추던 어느 날, 어머니는 그 꽃잎을 뒤로하고 멀리, 아주 멀리 떠나셨다.


꽃이 필 때 병원에 입원하셨고, 꽃이 다시 활짝 피어날 때 생을 마감하신 어머니. 어쩌면 그 꽃들은 어머니가 세상을 떠나기 전 자식들에게 남긴 마지막 인사였을지도 모른다. “나 이제 예쁜 꽃 따라가니 너무 슬퍼하지 마라”는 무언의 위로 말이다.


이제 나의 작은 정원에는 어머니의 호접란과 딸의 호접란이 나란히 놓여 있다. 떠난 생명이 남긴 향기와 새로 찾아올 생명이 품은 희망이 한 공간에서 숨을 쉰다. 나는 매일 아침 분무기로 물을 뿌리며 화초들에게 인사를 건넨다.


“나의 정원에서 행복하게 살아야 해. 우리 엄마처럼, 그리고 곧 태어날 내 손주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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