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이 될 요양병원으로 어머니를 옮기며
어머니가 지난 몇 달 사이 중환자실에 네 번이나 들어가셨다. 인공호흡기를 달고 수면 치료를 받은 것도 벌써 세 번이다. 최근 네 번째로 중환자실에 가실 때는 결국 참지 못하고 말해버렸다. 이제 인공호흡기는 절대 달지 말아 달라고.
매번 마지막을 준비하라는 주치의 막냇동생의 카톡 문자를 받으며, 마음을 단단히 먹기를 수차례. 어머니는 중환자실의 온갖 기계에 접착된 채 겨우 생명을 유지해 오셨다. 하지만 모든 치료에도 불구하고 회생 가능성이 보이지 않아, 오늘 투석 요양병원으로 어머니를 이송했다.
어머니의 상태도 절망적이었지만, 무엇보다 주치의였던 막냇동생의 정신적 한계가 눈에 보였다. 지난 몇 달간 어머니를 직접 치료하며 동생의 멘털은 무너져 내리고 있었다. 어머니도 가엾지만, 나에게는 그래도 젊은 막냇동생의 건강이 더 중요했기에 제발 어머니를 요양병원으로 옮기자고 강권했다.
이미 겪어본 터라 요양병원에 대한 기대는 없다. 의사소통조차 제대로 되지 않는 어머니를 그곳에서 얼마나 세심히 케어해 줄지 의심부터 앞선다. 그 걱정 때문인지 어젯밤은 거의 잠을 이루지 못했다. 얕은 잠 속에서 악몽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어머니가 "똥 쌌다!"라고 소리쳐도 어눌한 말투 때문에 아무도 알아듣지 못하고 방치되는 장면, 의식이 오락가락한다는 이유로 어머니를 사람 취급도 하지 않는 불성실한 간병인들의 모습이 끊임없이 반복되었다.
어제저녁, 결국 간호사실에 전화를 걸었다. 어머니 손은 되도록 묶지 말아 달라고 간곡히 부탁했다. 콧줄을 스스로 뺀 적은 없으시니, 손으로 가려운 곳이라도 긁을 수 있게 제발 풀어달라고, 정 안 되면 한 시간만이라도 풀어달라고 애원하듯 말했다.
가려운 곳에 바를 로션은 동생이 해외 직구까지 해서 준비했으니 꼭 좀 발라달라고, 콧줄 식사는 되도록 빨리 끝내고 직접 죽이라도 드실 수 있게 연습시켜 달라고 덧붙였다. 하지만 알고 있다. 나의 이 간청들이 결국 내 마음 편하자고 늘어놓는 소리일 뿐이라는 것을. 그곳은 어머니에게 마지막 머무름이 될 요양병원이고, 그 침대 위에서 결국 임종을 맞이하시게 될 터였다.
“엄마, 여기는 중환자실이 아니라서 참 좋네요. 햇볕도 잘 들고 간호사 선생님이랑 간병인 분들이 잘해 주시는 병원이래요.”
일부러 주변 사람들도 다 들으라고 크게 말했다.
“아무 걱정 마세요. 여기 계시면 금방 좋아질 거예요. 지금 영양제 들어가고 있으니까, 빨리 콧줄 빼고 맛있는 죽이라도 드시려면 힘내셔야 해요.”
나의 이 ‘희망 고문’에 중환자실에 세 번째 계실 때까지만 해도 어머니는 고개를 끄덕이셨다. 하지만 이제는 어머니도 알아버리신 모양이다. 어머니는 고개를 좌우로 절레절레 흔드신다.
'이제는 소용없다. 다 소용없다.'
고개의 흔들림이 그렇게 말하는 것만 같았다. 충분히 다 살고 이제 돌아가실 때가 된 어머니. 그 마지막 길을 조금이라도 더 품위 있게 인도할 방법은 정말 없는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