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꿀 수 없는 일은 받아들이고, 바꿀 수 있는 기분은 바꾸는 용기
"여보, 오늘은 차 두고요. 지하철 타고 다녀옵시다."
주말이면 정해진 일과처럼 요양병원으로 향한다. 공교롭게도 친정어머니와 시어머니의 병원은 지하철 한 구간 정도의 거리에 이웃해 있다. 갑자기 기온이 떨어진다는 예보에 남편과 나는 내의를 챙겨 입고 두툼한 패딩을 걸친 채 지하철에 몸을 실었다.
결박된 손목과 희미해진 기억 사이로
먼저 들른 친정어머니의 병실. 어머니는 대답도 못 하신 채 양손이 결박된 상태로 누워 계셨다. 항생제 내성균 때문에 보호복과 장갑, 마스크로 중무장한 채 면회를 시작했다. 내가 해드릴 수 있는 건 겨우 느슨해진 결박을 풀어드리고, 뼈만 남은 팔다리를 살살 주무르는 일뿐. 피부가 몹시 거칠어져 비닐장갑 위로 보습제를 듬뿍 발라드렸다. "엄마, 또 올게요." 떨어지지 않는 발길을 돌려 시어머니 댁, 아니 시어머니의 병원으로 향했다.
시어머니는 치매가 조금 더 깊어지신 듯했다. 눈빛은 흐릿했고 자식들이 면회도, 간식도 가져오지 않는다며 서러워하셨다. "집에 가면 혼자서도 잘 살 수 있다"라고 큰소리를 치시는데, 가고 싶다는 그 '집'은 최근의 집이 아니라 당신이 어릴 적 살던 고향 집이었다. 머위 잎을 따서 쌈을 싸 먹고 쑥국을 끓여 먹겠다며 아이처럼 웃으신다.
뇌에 새겨진 최근의 기억들은 낙엽처럼 모두 날아가 버리고, 아주 오래전 말랑말랑했던 시절의 기억만이 짙게 남은 모양이다. 나는 "연습하셔야 집에 간다"며 단호하게 말했고, 남편은 그저 듣고만 있으라며 내게 눈치를 주었다.
부서진 우산 아래서 마주한 뜻밖의 행복
병원을 나서자 비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입구에서 누군가 버리고 간 부서진 비닐우산을 주워 머리만 간신히 가린 채 지하철역으로 뛰었다. 마음이 착잡해야 마땅한 상황인데, 빗속을 걷는 기분이 묘했다. 어쩐지 즐거웠던 옛날 생각이 났기 때문이다.
굵어지는 빗줄기를 피해 들어간 카페. 요즘 유행하는 서비스인지 라테 크림 위에 우리 부부의 사진을 인쇄해 주는 커피가 나왔다. 데이트하는 젊은 커플들 사이에서 사진 속 우리 얼굴을 바라보며 한참을 웃었다. 창밖의 빗소리를 듣고 있자니 찻집을 전전하던 대학 시절의 낭만이 문득 떠올랐다.
불과 몇 분 전 요양병원에서 보았던 두 노인의 고통을 잠시 깡그리 잊어버린 채, 나는 나의 빛나던 추억 속에 젖어 있었다. 이기적인 것일까, 아니면 이것이 삶의 본능적인 방어기제일까.
모든 것을 견뎌낼 수 있게 하는 지혜
어머니들이 여러 번 사선을 넘나들며 '살아계신 듯 아닌 듯' 곁에 머무시는 세월을 지나오며, 나는 세상사의 힘든 일들에 제법 무디어졌다. 아니, 초연해졌다는 표현이 더 정확할 것 같다. 이제는 어떤 폭풍이 와도 견뎌낼 수 있을 것만 같다. 이미 수많은 슬픔을 견뎌왔기 때문이리라.
비 오는 날의 요양병원 투어는 착잡함으로 시작해 낡은 추억의 행복으로 끝이 났다. 문득 어느 기도문의 구절을 나지막이 읊조려 본다.
"주여, 저를 평온하게 하셔서 바꿀 수 없는 일은 받아들이게 하시고, 바꿀 수 있는 일은 바꾸는 용기를 주시고, 이 둘을 구별할 수 있는 지혜를 주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