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 남자가 저럴 수는 없다. 전 국민이 다 보는 TV 짝 찾기 프로그램에 나와서 순정남 행세를 하다니.
29세 여자 3호는 채용면접 인터뷰를 마치고, 버스에 올라탔다. 돼도 그만 안돼도 그만인 회사라 마음 편하게 면접을 봤는데, 긴장을 하지 않으니 오히려 얘기가 잘 나와서 다행이었다. 합격할 것 같다. 이번 달까지는 실업급여가 나오니까, 다음 달부터 출연한다고 해야겠지?
한시름 놓은 마음으로 472번 버스 안에서 핸드폰으로 이어폰을 끼고 <러브? 러브?! 러브!> 본방송을 보던 중, 톰이 마카롱을 가져다주는 장면에서 분노를 치밀었다. 경리단길 마카롱 가게에서 1시간 기다려서 마카롱을 포장해 와서 집 앞 놀이터에서 기다리는 건 나한테 자주 써먹던 수법인데. 마치 생전 처음 여자에게 마카롱을 사다 줬다는 것 같은 신들린 연기는 무엇이란 말인가. 내가 지금껏 가지고 있던 소중한 추억인데. 그걸 그대로 그렇게 다른 여자한테 써먹다니. 내가 뻔히 볼 걸 알면서. 내 친구들은 저걸 보면서 뭐라고 하겠어.
비밀을 들킨 듯이 얼굴이 화끈 달아올라, 고개를 들어 주변 승객들 얼굴을 둘러보았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버스 안 승객들은 톰의 만행을 눈치채지 못한 것 같다. 하지만 내 친구들의 카톡 메시지들이 빗발치는 걸 보니, 알 사람은 다 알게 된 모양이다. 일단 답을 하지 말자. 뭐라고 말해야 할지 정리도 안되니까.
밀려드는 카톡 메시지의 방해를 받으면서 다시 <러브? 러브?! 러브!> 방송을 보기 시작한다. 저렇게 착한 얼굴을 하고, 순정남 행세를 하고, 어눌한 척 얘기하고, 저 여자를 사랑하기 위해 세상에 태어난 것 같은 김동률 노래 같은 느낌을 풍겨대는 저 남자에게 어떻게 복수를 할 수 있을까. 카톡에 답이 없자, 이제는 애들한테서 전화가 오기 시작하고, 더 이상 방송은 볼 수가 없다.
안 되겠다. 내가 최종 선택 퀴즈를 맞혀서 다음 시즌 출연자로 나가야겠다. 나가서 똑같이 전 남자 친구 스토리를 적나라하게 폭로해서 네 실체를 만천하에 알려주리라. 넷플릭스에서 전회차를 정주행 하고 반드시 퀴즈를 맞혀야지. 아, 오늘 면접 인터뷰를 잘 봐서 얼마나 다행이야. 직업 없으면 저런 프로그램 나가지도 못하는 건데.
여자 3호의 귀갓길, 테헤란로 교통체증만큼이나 마음속이 복잡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