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르헨티나의 푸른 국경을 넘어 브라질로 들어섰다. 강 하나를 사이에 둔 땅, 풍경은 복사한 듯 그대로 건 만 그 풍경 속을 채우는 사람들의 얼굴은 사뭇 달라져 있다. 아르헨티나가 정통 유럽의 색채를 고집스럽게 간직하고 있다면, 브라질의 얼굴에는 왠지 모를 동양적 친숙함이 서려 있다. 그 차이는 마치 아르헨티나의 영웅 메시의 날카로운 선과 브라질의 전설 펠레의 둥글고 넉넉한 인상의 거리만큼이나 멀고도 뚜렷하다.
대륙의 뿌리는 스페인과 포르투갈이라는 비슷한 줄기에서 시작되었을 텐데, 페루와 볼리비아, 칠레를 거쳐 아르헨티나와 브라질에 이르기까지 내가 만난 얼굴들은 저마다의 국경선만큼이나 선명하게 달랐다. 인류의 긴 역사에 비하면 찰나에 불과한 몇백 년이라는 시간. 그 짧은 세월 동안 대지의 기운이, 혹은 삶의 궤적이 사람의 형상마저 이토록 다르게 빚어냈다는 사실이 경이롭기까지 하다.
다음 날 일찍, 또 다른 얼굴의 이구아수를 만나러 길을 나섰다. 아르헨티나 쪽이 폭포의 거친 숨결 속으로 뛰어드는 체험이라면, 브라질의 이구아수는 멀찍이 물러나 거대한 숲의 전경을 조망하는 관조의 길이다. 하지만 그 '멀리서 보는 풍경'은 오히려 비현실의 극치였다. 남미를 여행하며 수많은 비현실적 풍경에 넋을 잃어왔지만, 수십 개의 폭포가 단 한 줄기 시야에 담기는 이 광경은 가히 압도적이었다. 강변을 따라 걷는 내내 시시각각 변하는 폭포의 파노라마에서 눈을 뗄 수 없었다. '저 폭포 줄기 중 딱 하나만 한국에 가져가도 구름 떼 같은 관광객이 몰려들 텐데' 하는 실없는 상상을 하며 걷다 보니, 길의 끝자락에서 폭포수 아래로 뻗은 데크길을 만났다.
폭포가 뿜어내는 물보라는 바람을 타고 소나기처럼 흩날렸다. 우의를 여미고 전망대에 서 있는데, 수학여행을 온 듯한 학생 수십 명이 재잘거리며 사진을 찍고 있었다. 그때 학생 두 명이 수줍게 다가와 내게 함께 사진을 찍을 수 있냐고 물었다. 흔쾌히 응하자 내 양옆에 서서 환하게 웃는다. 그런데 이를 본 다른 아이들이 우르르 몰려오더니, 순식간에 삼사십 명의 학생이 나를 전설 속의 주인공마저 된 듯 에워싸고 셔터를 눌러대기 시작했다.
문득 의아했다. '이 아이들은 왜 낯선 이방인에게 이토록 열광하는 걸까?' 해답은 아이들의 손가락 끝에 있었다. 내 턱에 덥수룩하게 자란 하얀 수염을 가리키며 아이들이 해맑게 웃고 있었기 때문이다. 50일간 면도기를 멀리한 채 대륙을 누빈 흔적이 내 얼굴에 고스란히 내려앉아 있었다.
과거 스페인의 정복자 피사로가 잉카 제국에 나타났을 때, 하얀 얼굴에 수염을 기른 모습이 전설 속 신의 강림으로 오해받아 성문이 열렸다는 이야기가 떠올랐다. 거대한 폭포 앞에 나타난 하얀 수염의 동양인 노신사. 아이들에게 나는 아마도 행운을 가져다주는 낯선 세계의 신령이나 산신령쯤으로 보였던 모양이다. 폭포의 웅장함보다 더 환했던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이구아수의 굉음 사이를 기분 좋게 파고들었다.
이구아수의 굉음을 뒤로하고 55일 여정의 마지막 마침표를 찍을 곳, 리우데자네이루로 향했다. 리우는 내게 아주 특별한 이름이다. 환갑을 훌쩍 넘긴 나이에도 초등학교 시절 달달 외웠던 '세계 3대 미항'이라는 타이틀이 어제 일처럼 선명하기 때문이다.
이번 남미 여행 중에는 이처럼 60년 전 교과서에서 튀어나온 장소가 셋 있었다. 세계에서 가장 높은 곳에 있다는 티티카카 호수, 아르헨티나의 끝없는 지평선 팜파스, 그리고 미항 리우. 정작 이번 여행에서 나를 더 압도했던 피츠로이나 파타고니아, 마추픽추, 우유니는 그 시절 시험문제에 나온 기억이 없다. 문득 의문이 든다. 왜 우리는 그 어린 날에 이 세 곳을 그토록 절박하게 외워야 했을까?
이유야 어찌 되었든, 머릿속 관념으로만 존재하던 '리오'라는 단어가 비행기 창밖으로 실체를 드러낼 때, 나는 60년 전의 펜팔 소녀를 만나러 가는 소년처럼 가슴이 설레었다. 60년 전의 암기 사항이 지공거사에게 이토록 감개무량한 감동을 줄 줄이야.
물론 설렘은 잠시였다. 호텔 정문 앞에서 위협적인 눈빛으로 돈을 요구하는 흑인 노숙자와 마주하는 순간, '미항'이라는 낭만은 순식간에 현실 속으로 흩어졌다. 하지만 나는 산전수전 다 겪은 도시 관광의 베테랑이다.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그랬듯, AI의 추천을 받고 구글 지도로 좌표를 찍은 뒤 버스와 지하철 티켓을 끊었다. 펜팔 소녀의 집을 찾아가듯, 나는 그렇게 리우라는 거대하고도 거친 도시의 속살로 성큼 걸어 들어갔다.
날씨가 허락한 어느 화창한 날, 리우의 상징인 구세주 그리스도상으로 향했다. 그 거대한 팔 아래 서서 내려다본 풍경은 왜 리우가 '세계 3대 미항'이라는 왕관을 쓰고 있는지 단박에 증명해 주었다. 투명한 쪽빛 하늘과 짙푸른 바다, 그리고 붓칠을 한 듯한 하얀 구름. 그 캔버스 위에 인왕산을 닮은 몽글몽글한 바위섬들이 바다 위에 보석처럼 박혀 있었다. 육지 쪽 역시 울퉁불퉁한 근육질의 산들이 짙은 숲을 두른 채 도시를 감싸고 있었다.
산자락 사이사이를 메운 하얀 건물들과 해안선을 따라 길게 뻗은 하얀 포말은 마치 자연의 경이로움을 돋보이게 하려고 인간이 도시를 정성껏 덧대어 지은 듯했다. 도시 어디서나 올려다보이는 이 거대한 예수상은 리우의 미학적 완성도를 넘어, 이곳에 신성함이라는 공기 한 층을 더 얹어놓고 있었다.
예수상 위에서 찜해둔 풍경들을 찾아 발걸음을 옮겼다. 가장 먼저 닿은 곳은 골프장만큼이나 광활한 식물원이었다. 아열대의 태양 아래서 한국의 온실 속에서나 귀하게 대접받던 식물들이 노천에서 거대한 숲을 이루며 자라고 있었다. 3만 보의 강행군으로 지친 다리를 그 이국적인 거목 아래 뉘이고, 시간의 흐름조차 잊은 채 리우의 공기를 마셨다.
이어지는 며칠 동안은 미련 없이 리우를 걸었다. 인수봉을 빼닮은 팡산(Pão de Açúcar)을 걸어서 오가고, 끝없이 이어진 아름다운 해변들을 발바닥이 부르트도록 누볐다. 하지만 화려한 해안선을 벗어나 지하철 종점까지 가본 교외의 풍경은 전혀 다른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도심의 정갈함은 이내 동남아시아의 어느 뒷골목처럼 변하더니, 종점에 다다를수록 가파른 빈민촌의 초라함으로 변모했다.
아름다운 미항의 신성함 바로 뒷면에는 숨길 수 없는 빈부격차의 민낯이 있었다. 그제야 왜 이 눈부신 도심 한가운데 무서운 눈빛의 노숙자들이 그토록 많았는지 이해가 되었다. 리우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축복과 가장 지독한 현실의 결핍이 예수상의 두 팔 아래 공존하는, 말 그대로 '경이로운' 모순의 도시였다.
55일간의 긴 여정, 그 대단원의 막을 내리는 마지막 밤은 코파카바나 해변의 활기찬 레스토랑에서 맞이했다. 마침 옆 테이블에는 나이든 현지 남자 셋이 흥겹게 술잔을 기울이고 있었다. 오가는 눈길에 가벼운 미소를 건넸더니, 그들이 내 덥수룩한 하얀 수염을 가리키며 호기심 어린 말을 걸어온다. 그러더니 이내 자기들이 마시던 위스키 한 잔을 불쑥 건네는 게 아닌가.
사실 몇 년 전 위암 시술을 받은 뒤로 독주는 줄곧 자제해 왔다. 하지만 먼 이국땅에서 낯선 이가 건네는 이 뜨거운 호의를 어찌 마다할 수 있을까. 이미 맥주 한 잔에 기분 좋은 취기가 올라있던 차에, 문득 여행자의 객기가 발동했다. 제법 묵직한 위스키 잔을 단숨에 비워버리고는, 비어버린 잔을 머리 위로 털어 얹어 보였다.
"오오!" 순간 그들이 눈을 동그랗게 뜨더니 이내 떠나갈 듯한 웃음을 터뜨렸다. "멋지다!"며 엄지를 치켜세우는 그들의 눈빛에는 동양에서 온 나이 든 여행자에 대한 경의가 담겨 있었다. 그들은 나를 자기들 테이블로 옮기게 했고, 우리는 단숨에 국경과 언어를 초월한 친구가 되었다. 얘기하다 보니 옆 테이블의 두 사내는 은퇴 후 브라질에 정착한 60대 후반의 스위스인들이었다. 그들은 브라질 친구 한 명과 어울려 매일같이 이 해변에서 인생의 황혼을 흥겹게 보내고 있었다. 술기운이 오르자 그들은 춤과 음악이 있는 곳으로 2차를 가자며 팔을 끌었지만, 내일 출국을 앞둔 여행자는 아쉬운 미소로 그들의 호의를 거절하고 호텔로 돌아왔다.
문득 치앙마이에서 만난 캐나다 은퇴자들, 그리고 라오스와 베트남에서 보았던 수많은 한국의 노병들이 떠올랐다. 춥거나 더운 계절을 피해 따뜻하고 물가 저렴한 곳을 찾아 유랑하는 '기후 난민' 같은 은퇴자들. 국적은 달라도 노후의 고독과 안락 사이를 유영하는 그들의 삶이 남의 일 같지 않게 다가왔다.
귀국 당일 아침, 거울 앞에 서서 면도기를 들었다. 남미의 거친 풍광 속에서는 자연스러웠던 이 하얀 수염도, 정돈된 한국 사회의 눈초리 앞에서는 그저 관리 안 된 노인의 고집으로 비춰질 터였다. 55일간 애지중지 길러온, 내 여행의 훈장 같던 수염이 잘려 나갈 때는 마치 군 입대 날 머리카락이 잘려 나가던 그 시절의 서글픈 아쉬움이 밀려왔다. 하지만 면도날이 지나간 자리에 마법이 일어났다. 수염 아래 숨어있던 얼굴이 드러날 때마다 시곗바늘이 거꾸로 돌아가더니, 면도를 마친 거울 속 사내는 족히 10년은 젊어 보였다. 여행은 수염을 기르게 했고, 복귀는 다시 나를 청년으로 돌려놓았다.
아마존 밀림의 깊은 속살을 보지 못한 아쉬움은 훗날을 기약하는 핑계로 남겨두었다. 55일간의 뜨거웠던 남미, 그 경이로운 대륙의 기억을 배낭 가득 채운 채 나는 비로소 인천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