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루다 Mar 16. 2023

익숙할 수 없는 이별

가장 사랑하는  사람의 이별은  익숙할 수가 없다

"우리가 이별 뒤에 알게 되는 것들

난 오늘도 실수를 반복하면서 하루를 보낸다   "     



2015년 12월 마지막 주 어느 날.

난 그날을 잊을 수 없다.

매년  아빠랑 건강검진을 갔었다

난 회사에서 하는 의무 검진으로 아빠는 나랑 매년 함께 하는 데이트 검진으로^^

항상 연초에 하는 건강검진인데 그해는 업무적으로 너무 바빴고 건강검진도 사치 일  정도로 정신이 없던 한 해였다

해년마다 하는 건강검진에 큰 이상이 없었고 오전에 건강검진이 끝나면 으레 당연하게 아빠랑 나는 맛있는 음식을 먹고 수다를 떨고 집으로 가는 게 정해진 일정이었다

그런데 그날은... 달랐다.

나는  평상시처럼 금방 끝난 건강검진이 아빠에게는 자꾸 재검이 떨어졌다.

불안했다.

그즈음은... 평생 쉬지 않고 성실하게 살아오신  아빠가 퇴직을 하시고 쉬신 지 한 달이나 되셨을까?

우리 애들을 봐주시던 엄마가 시어머니기 안 계시는

여동생의 출산으로 세종으로 가고  퇴직 후 아빠가 엄마를 대신해서 우리 애들의 유치원 등 하원을 해주고 있을 때였다

3개월 전부터 아빠가 그랬다

소화가 안 되는 거 같다고 소화제를 먹어도 속이 더부룩하다고

 그때 내가 지나가는 말로 그랬더랬다

" 아빠  나 몰래 맛있는 거 먹고 다니는 거 아니냐고... 나 조금만 한가해지면 같이 건강검진 가보자고!"

그날

오후 늦게까지 재검에 재검을 하고 마지막 단계인 위내시경을 하는데

의사가 보호자가 누구냐고 검사실로 들어오란다

내가 보호자라 그러니 다시 되묻는다

딸이냐?  며느리냐?

딸인데요...

그랬더니 의사가 내일도 쉬신다면 다른 보호자와 함께 다시 병원에 방문해 주란다

난 다음날도 연가를 냈다.

다른 보호자라.... 엄마랑 같이 오라는 말인데 차마 엄마에게 말을 할 수가 없었다

더불어 몸조리 중인 여동생에게는 더더욱 말을 할 수가 없었다.

위내시경을 끝내고 잠들어 계시는 아빠에게도 아직은 이사실을 말씀드릴 수 없었다

작년에도 아빠와 나의  건강검진을 담당했었던 의사였다

의사한테 물었다 1년 만에 암세포가 이렇게 자라서 말기가 될 수 있느냐고....

작년에 발견 못한 거 아니냐... 작년에 오진을 했던 거 아니냐 따지고 싶었지만

그 말은 지금 중요하지 않았다  그 외침은  마음속으로 삼켜지고


" 치료를 할 수 있느냐? 수술이 가능하냐?" 제발 살려 달라는 말만 의사를 붙잡고 하고 있었다.

어떤 것이든 해볼 테니 치료를 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 부탁을 하고 대기실로 나왔다.

의사는 조직 검사를 해봐야 알 수 있다고 했다.

사실 그때 난 알고 있었다.

내가 의학적인 지식이  하나도 없는  사람이지만 내 눈으로 위내시경실에  들어가서 본 암덩어리를 본 순간,  힘들겠구나 싶었다.

아빠는 그날 이후로 조직 검사를 하고 암 전문병원으로 입원을 하고 치료를 시작했다.


아빠에게 물었다

병간호를 엄마에게 받고 싶냐고 불편하기 않는다면 내가 해주고 싶다고

난 당연히 엄마한테 간호를 받고 싶다고 하실 줄 알았다 그런데 아빠는 엄마가 아닌 나에게 병간호를 받으신다 하셨다

"아빠 ~ 왜 엄마 한태 안 받고 나한테 병간호를 받고 싶다고 했어?

아빠가 돌아가시기 전 물어보았다

"너희 엄마는 허리가 안 좋아서 병원에서 못 자!!!"

넌 아무 데서나 잘 자잖아..


태어나서 처음으로  아빠의 발을 씻겨 드리고

태어나서 처음으로  등목을 시켜드리고

태어나서 처음으로 아빠의 틀니를 닦아 드렸다.


아빠가 입원 후 식사를 못하시자 나도 밥이 넘어가지 않았다

옆에서 간호하는 다른 가족분들이 나에게 환자를 생각해서라도 먹어야 한단다


" 아빠에게 물었다

"아빠 뭐가 먹고 싶어?

뭐든지 다 먹고 싶으시단다...

그런데 아빠는 입원한 지 2주 동안 죽 한 그릇 물 한 잔을  넘기지 못하시고 링거만  맞았다



공교롭게도 내가 휴직 신청을 한 날은 내가 본청으로 발령이 난 날이었다

마음속으로는 눈물을 흘리며 사령장을 받았고 사령장을 받는 날 나는 휴직을  신청했다

청에서는 바쁘니까 내가  6개월만 휴직을 하면 좋겠단다

다행히 아시는 분이 인사 담당이라 1년을 내고 치료가 잘 되면 그래서 아빠 건강이 좋아지면 바로 복직을  한다는 조건하에 1년 휴직을 했다.


아빠가 돌아가신 지 5년이 지났다

그해  아빠가 돌아가시고 3개월 후 외할머니가 돌아가셨다.

외할머니는 90세가 넘도록 건강하게 지내시다 편안히 주무시다  돌아가셔서

내가 기억하는 외할머니의 이별은 아빠와의 이별과는  사뭇 달랐다,


 아빠가 돌아가신 지 얼마 되지 않아 외할머니도 돌아가시고 나니 엄마가 병원에 입원을 하셨다

몸도 마음도  많이 힘드셨나 보다

나도 이렇게 힘든데 엄마는 나보다 더 힘드시겠지...

아직도 난 아빠를 생각하면 눈물이 나고 마음이 저리다.

마지막까지 우리 아이들을 사랑해 주셨던 아빠의 모습이 기억나기 때문이다.


아빠의 마지막 소원은 우리 큰딸의 초등학교 입학식을 보는 거였다

한 달만 더 있다 가셨으면 그렇게 이뻐하던 우리 집 큰 공주의  입학식을 보고 가셨을 텐데

우리 아빠의 마지막  소원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작가의 이전글 즐겁게 살아가는 방법 찾기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