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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 HAN Nov 15. 2021

이 주의 시들-달력

넘기고 또 넘긴다. 식사와 달리 달력은 싫어도 넘어가진다.


안녕하십니까, 제이한입니다. '달력'을 주제로 한 이주의 베스트 시간이네요.


달력은 해당년도의 365일이 모두 적혀있는 물건입니다. 누렇게 뜬 종이달력이 11번 찢기면 1년이 넘어가던 시기를 사셨던 분들은 보통 달력이라고 하면 그때가 먼저 떠오르시겠죠. 저 또한 그렇습니다.


시간의 축적과 경과, 그리고 세월의 흔적이 고스란히 담겨 있는 물건인 달력은 이러한 특징 때문에 글의 주제로 쓰일 때 분위기가 우수 어린 종류로 기울어지는 경향이 있습니다. 사람이 지나간 달을 보면서 하는 생각이 대체로 무엇일지 떠올려보면 이해하기가 쉬우실 겁니다. 이른바 향수를 느끼게 만드는 단어인 것이죠. 실속보단 감정, 생활의 고단함보다 마음의 휴식에 더 어울리는.


요즘은 휴대폰 캘린더로 날짜랑 일정만 확인하면 시스템이 알아서 달만 지나가도 휙 넘겨버립니다. 여유를 느낄 새도 없고 '저번 달엔 이런 일이 있었지' 하고 과거를 돌아볼 틈도 없습니다. 그런 역할은 이미 갤러리가 대신하고 있어요. 시간이 지날수록 의미 자체가 퇴색되어가는 슬픈 단어예요, 달력은. 앞으로는 더 심해질테고요.


감성적 의미가 옅어지는 단어에 새로이 의미를 부여하는 것이 다른 때보다 더 각별했던 한 주, 달력이었습니다. 이번 주에는 어떤 글들이 베스트에 올랐을까요. 함께 보러가시죠.





1. Epicure님의 '달력'



https://m.fmkorea.com/40439582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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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장씩 뜯어 당신에 다가서다


이제는 한장씩 뜯어 당신과 멀어지네


기억처럼 추억처럼 남아버린 달력이


가을바람에 실려  


멀어진 당신 소식이 되어주면 좋겠네


//////////

시평: 노랫말같은 느낌이 나는 시였네요. 시간이 지나는 과정을 달력에 빗대어 표현한 서정시는 언제 봐도 세련된 감상에 젖게 합니다.


자신의 시간 속에서 만난 인연을 달력이라는 소재를 이용해서 그리워하고 있을 뿐이지만, 다가올 시간이 주는 희망을 기대하는 모습이 애틋하게 느껴지네요.


잘 읽었습니다.




2. 힙합님의 '달력'


https://m.fmkorea.com/40522289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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넘긴다는 것.


나이를 한살 한살 먹어가며


넘긴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우리는 알고있다.


저항이 불가하다는걸 알면서도


우리는 미간을 찡그리며 잔주름 하나를 추가한다.


그렇게 힘겹게


떡국이라는 나이를 목에서 넘긴다.



천진난만하다는 소리를 들을 나이였나,


아직 우리의 가슴은 청춘인데


가슴을 담은 심장은 어느새 들어버렸다 한다.


물이 든 건지, 보내기 싫은 헌 나이를 지게에 들어버린 건지 모르겠지만


아무튼 뭔가가 들어버렸다 한다.


우리는 그것을 '나이'라 부르기로 했다.



칸칸이 쌓인 숫자들이


차례대로 지워져 순번을 넘기다 보니


어느새 30이라는 숫자까지 와버린 나의 달력.


이제는 다음달 이라는 말도 없어진 나의 나이.


다음 장을 넘기는 힘듬에 맞서


더 큰 숫자가 나오진 않나 하는 설렘으로


우리는 오늘도 넘어간다.


다음 장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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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평: 지나간다는 사실이 무덤덤해지는 때가 언젠가는 오겠지요. 이 시에선 30이라는 숫자가 그때를 상징하고 있네요.


이 작품은 덤덤한 분위기를 띠고 있지만 사실 갖가지 감정들이 곳곳에서 묻어나옵니다. '옛날'이 되고 만 세월에 대한 후회와 회한, 그러는 한편으로 조금씩만큼은 남아있는 기대감과 설렘. 애초에 조금이라도 남기는커녕 아예 없었더라면 후회나 회한이 있지도 않았을 겁니다. 그저 덤덤하게 달력을 넘기고 걷기만 하겠죠.


30을 넘어 40이 되었을 땐 화자의 내면 속 감정의 지분이 정반대이길 바랍니다.


잘 읽었습니다.





3. 끝없는갈증님의 '찢어지는 네 앞에서'


https://m.fmkorea.com/40549892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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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널 볼 때는 대부분 조급함

이럴 때면 가라가라 속삭이고


네가 보여질 때는 대부분 아쉬움

그럴 때면 가지말라 질척이고


하루하루 찢어지는 네 앞에서

나는 이렇게 변덕맞으니


어느 순간 훅 사라지는 너를

매정하다 못 하겠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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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평: 1년 365일은 모두 똑같은 하루하루지만 그걸 체감하는 사람은 똑같다고 느끼지 않습니다. 어떤 때는 시간이 빠르게 갔으면 좋겠고, 또 어떤 때는 느리게 갔으면 좋겠고. 그리고 시간은 보통 그 바람을 들어주지 않죠.


달력은 찢어지기만 할 뿐이라 지나가는 시간의 대변인으로서 자신의 역할을 수행합니다. 매정하게 느껴질만도 하지만 화자는 그걸 입밖으로 내진 않았습니다. 모든 원인이 자기 변덕에 있다는 걸 알기에.


잘 읽었습니다.


/////////////


후...어제 올리고 잔줄 알았는데 아니었네요. 왜 이번 주는 댓글알림이 안오나 했습니다...간밤에 너무 많이 마셔서 정신이 오락가락했네요.


아무튼...이번 주 베스트는 어떠셨나요. 물건이 주제라서 접근하기가 다소 쉬웠을 것 같은 주제였는데 말이죠. 여러분 모두 자기가 쓴 작품에 만족하셨기를.


여기서 관리자 활동을 시작한지도 어느덧 3년이 돼가네요. 달력으로 치면 한 30장도 더 넘긴 셈이죠. 이런거 보면 시간이 참 빨라요. 앞으로도 잘하겠습니다.


다음 주에도 좋은 작품들과 함께 찾아뵙겠습니다. 모두 행복한 한 주 보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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