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전은 물체의 동적인 변화 중에서 규모가 작은 편에 속하는 행동입니다. 위치가 변화하지 않고 그 자리에서 계속 돌기만 하니까요. 중심부를 축으로 삼을 수밖에 없는 구조인 것도 있지만, 회전으로 표현되는 다른 개념들도 커다란 동작과는 거리가 멉니다.
대신 반복성과 지속성의 측면에서 회전이 가지는 이미지는 독특하고 이색적인 것이 많습니다. 어떤 물건이든 돌기만 하면 회전의 단락에 끼워넣을 수 있기 때문이죠. 외적인 스케일은 작아도 이미지로 쓰일 땐 상당히 스펙트럼이 넓어지는 단어가 바로 회전이었습니다.
한 주동안 정말 많은 종류의 회전이 올라왔습니다. 빙글빙글 돌아가는 회전과 팽글팽글 돌아가는 회전, 빠른 회전과 느린 회전. 회전이 아닌 것 같다가도 다시 읽어보면 회전이 내포된 것들. 각자 다른 매력이 있어서 감상도 다채로웠습니다.
그럼 이번 주 베스트는 어떤 작품들이 선정되었는지 함께 살펴볼까요.
1. 끝없는갈증님의 '달'
https://m.fmkorea.com/4124518449 /////////////
그저 탐스러워 좋던 것이 사연을 들으니 사랑스럽다
지구와 발 맞추어 돌아 뒷모습은 안 보여준다는 것이
종종 걸음으로 따라오다 돌아보면 눈을 맞춰주던 이름모를 소녀를 닮아 예쁘다
돈다는 것은 축이 있다는것
맴돈다는 것 , 서성인다는 것
누구십니까 내 삶의 축이 되어 고고히 앉아있는 그 사람
어긋날라치면 잡아당겨 궤도에 올려두는 사람
맴돌다가 마음이 돌다가 애틋한 현기증을 주는 사람
아아 너도, 내 마음도 달이어라
돈다는 것은 사랑이어라
///////////// 시평: 회전한다는 사실은 생각하기에 따라서 꽤 따뜻한 일로 느껴질 수도 있을 것 같네요. 회전하는 대상을 사랑하고 있다면 더더욱.
회전은 한바퀴를 돌고 또 한바퀴 도는 것을 반복한다는 것. 그 말은 지나간 자리를 다시 지나러 온다는 것. 거기 계속 서 있다면 나중에 또 만날 수 있다는 것.
수줍음 때문인지 내숭 때문인지는 몰라도 아주 가까이 다가와주진 않는 달과 비슷한 소녀. 그 태도 때문에 서운함을 느낄 땐 있어도, 마음이 식는 길로 이어지진 않습니다. 정말 그녀가 화자를 싫어한다면 눈을 맞추지도, 주변을 맴돌지도, 곁에 앉지도 않을테니.
잘 읽었습니다.
2. 테사다르님의 '어지럼증'
https://m.fmkorea.com/4122698350 /////////////
춤추는 반고리관은 어지럼증을 일으키고
빙빙 도는 세상은 눈을 핑 돌게 한다 .
혹자는 말한다. 흔들리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있으랴?
그런데 도대체 나의 꽃은 언제쯤 흔들림을 멈출 수 있을까?
지겹게 회전하는 반고리관은 멈출 줄 모르고 여전히 고통만을 남겨둔다.
또 누군가는 말한다. 이 또한 지나가리
하지만 언제나 회전하고 있는 세상은 언제나 고통스럽고 끝날줄 모른다.
아 또 다시 불어오는 어지럼증의 폭풍은 나를 흔들고
상하 좌우 온 방향으로 돌고 돈다.
아 어지럼증.
//////////// 시평: 차멀미가 심한 사람도 자기가 운전대를 잡으면 멀미가 멈춥니다. 그만큼 사람의 몸은 자신이 의도하지 않은 움직임에 민감하게 반응합니다.
하물며 회전은 그 정도가 더 심한 편입니다. 자기 발로 몸을 휭휭 돌려도 멈추고 나면 머리가 어질어질한데, 세상이 돈다면 충격이 얼마나 크겠습니까. 제발로 시작한 회전은 발을 바닥에 고정시키면 그걸로 끝이 나지만 세상은 멈출 방법이 없습니다. 그러니 끝이 언제인지도 모르죠.
꽃을 피우려면 흔들림 없는 멀쩡한 세상이 되어야 할텐데. 계속 이렇게 돌면 햇빛을 쬐는 일도 물을 주는 일도 제대로 되지 않을 겁니다. 매정한 세상은 아니나 다를까 종언 대신 어지럼증을 주네요.
잘 읽었습니다.
3. P.Dybala님의 '회전'
https://m.fmkorea.com/4124981356 ////////////
회전
빙빙돌면 어지러워 죽겠다고하지만,
원래 회전하는 것들은 돌아야 한다.
팽이는 회전을 멈추면 패배하고,
드릴은 회전을 멈추면 의미가 퇴색된다.
회전하는 것들은 살기위해 회전한다.
회전을 하며 의미를 재확인한다.
지금의 내 모습이 나를 증명하듯,
끊임없이 회전하며 존재를 증명한다.
//////////// 시평: 회전이 필수적인 요소이자 존재의 이유, 사명인 사물에는 어떤 것들이 있을까요. 전 팽이나 각종 공구들을 빼면 당장 떠오르는 게 없네요. 그러니 저도 화자처럼 회전의 의미를 재확인해보겠습니다.
돌고 도는 존재. 원 모양을 탈피해서 반복되는 모든 것들. 시간을 되돌리지 않는 선에서 일어나는 영원함. 그러나 멈추는 이유가 언제라도 생길 수 있는 개념. '영원함'이 '영원했던'으로 바뀌어도 이상할 게 없는 움직임.
의미의 확장은 곧 포함되는 만물의 범위도 넓어짐을 뜻합니다. 그리고 지금 제 머릿속에 떠오르는 궁극적인 회전은 다름아닌 '사람'입니다.
하루 24시, 월화수목금토일, 1월1일부터 12월 31일, 미시적으로 다양하고 거시적으로 동일한 궤도의 시간적 회전. 비슷비슷한 직장 일과 대동소이한 취미생활을 근거로 한, 일정 행동반경을 벗어나지 않는 생활의 회전.
회전을 못하면 존재가 사라지는 것이 아닌, 회전의 중심축인 삶에서 벗어나 죽음을 맞이하면 끝나는 회전. 결국 그 말이 그 말입니다.
돌기 위해서 사는가, 살기 위해서 도는가. 무엇이 더 가치있는 태도인가. 우스운 일이지만 그 답을 알려면 우린 더 빠르게 돌아야 합니다.
잘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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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주 베스트는 재밌게 읽으셨나요. 전 이번 한 주가 머릿속 정신세계를 다시금 파헤쳐보는 시간이었습니다. 주제로 정했을 땐 그리 깊이 생각하지 않았는데... 여러 각도로 보면 볼수록 쓸 구석이 많아지는 주제였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