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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 HAN Aug 18. 2020

윤흥길- <장마> 분석문

분석문

<장마>는 윤흥길이 1973년에 발표한 소설이다. 윤흥길의 이름은 이 작품이 발표되고 나서부터 유명해졌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장마>는 윤흥길 본인에게나 한국 문학계에나 의미가 깊은 작품이다. 이 작품은 주인공 ‘동만’이 어렸을 적에 일어난 일을 회상하는 방식으로 전개된다.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친가 식구들과 같이 살고 있는 주인공 ‘김동만’의 집에 어느 날 외가 식구들이 남북전쟁 때문에 피난을 오게 된다. 외할머니와 친할머니는 아들들이 서로 적으로 싸우고 있는 상황인데도 얼마간은 큰 다툼 없이 잘 지낸다. 친삼촌과 외삼촌은 원래 친한 사이였다. 전란이 일어나도 그사이는 변하지 않았다. 외삼촌은 국군에 입대한 외삼촌을 북한군의 국군 사냥에서 숨겨준다. 그러나 북한군의 기세가 점점 험악해지자 결국 외삼촌을 고발하는데, 그때는 이미 외삼촌이 자취를 감춘 뒤였다. 결국 둘의 화목한 사이는 이념의 차이에 따라 찢어지고 만다. 


어느 날 전쟁터에 나간 아들이 전사하였다는 소식을 들은 외할머니는 빨치산을 욕한다. 그녀와 같은 집에서 한솥밥을 먹던 친할머니는 그 소리를 듣고 크게 화낸다. 외할머니의 저주는 곧 빨치산인 자기 아들을 저주하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그때부터 사돈 관계는 틀어지게 되었다. 그러던 어느날 빨치산에 있던 친삼촌이 몰래 집으로 돌아온다. 가족들은 그를 자수시키려고 하나, 갑자기 나타난 외할머니 때문에 그는 도망가고 만다. 밤중에 들린 외할머니의 발자국 소리를 친삼촌은 경찰인 줄로 알고 겁이 나서 도망친 것이었다. 이 일로 인해 친할머니는 외할머니를 전보다 더 미워하게 된다. 얼마 후 빨치산이 왔었다는 소문을 들은 경찰이 주인공을 초콜릿으로 매수해서 친삼촌이 집에 왔었다는 사실을 알아낸다. 이에 주인공의 아버지는 경찰서에 끌려가 큰 곤욕을 치른다. 사복 경찰이 아버지를 끌고 나올 때 주인공에게 윙크를 날리자 아버지는 일이 어찌 된 것인지 눈치챈다. 주인공은 그 뒤 가족들의 눈치를 보며 살게 된다. 친할머니가 주인공을 아예 없는 사람 취급하는 와중에 외할머니는 주인공을 챙겨주며 두 사람은 마음 고생을 하며 살게 된다.


시간이 흘러 빨치산이 한창 소탕되고 있을 때였다. 다들 친삼촌이 죽었다고 여기지만 오직 친할머니만은 점쟁이의 말을 믿으며 아들이 돌아오리라 믿는다. 그러나 점쟁이가말한 날에도 친삼촌은 돌아오지 않았다. 친할머니가 한없이 실망한 그 때 느닷없이 구렁이 한 마리가 아이들한테 쫓겨서 집안으로 들어오고, 그것을 본 친할머니는 기절한다. 한편 외할머니는 감나무 위에 있는 구렁이에게 말을 붙인다. 친할머니와 외할머니는 둘 다 환생을 믿었고, 집안을 찾아온 그 구렁이를 환생한 아들이라 믿은 것이다. 그러나 외할머니가 아무리 말해도 구렁이는 미동도 없었고, 외할머니는 집밖의 사람이 말한 대로 주인공에게 친할머니의 머리카락을 가져오라고 시킨다. 외할머니는 준비한 음식을 구렁이에게 보여준 뒤 머리카락을 불에 그을린다. 그러자 구렁이는 나무에서 내려와 사라졌다. 그 후 전후 사정을 들은 친할머니는 그제야 외할머니와 화해하고 주인공을 용서한다. 그리고 친할머니는 일주일 뒤 돌아가신다. '정말 지루한 장마였다'는 구절과 함께 장마가 걷히며 소설은 끝난다.


<장마>는 다른 소설보다 배경이나 인물에 대한 묘사가 많다. 무조건이라고 할 수는 없으나 대개 이런 작품들은 이야기 안에 소재로 쓰이는 사물이나 자연물에 많은 의미가 함축되어 있는 경우가 많다. 뱀, 장마, 초콜릿 등 전개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배경적 요소만 봐도 그렇다. 많은 평론가들이 <장마>를 분단의 상처와 민족적 가치를 ‘두 할머니의 다툼과 화해’와 엮어 의미를 둔다. 그러니 나는 초점을 다른 곳, 주인공에게 맞춰보려 한다. 


왜 윤흥길은 이 작품의 주인공을 소년으로 설정했을까? 이유는 작가 본인만이 알겠지만, 나는 이념의 대립을 잘 모르는 어린아이의 시선으로 남북 전쟁을 서술함으로써 그 잔혹함과 안타까움을 배가시켰다고 생각한다. 이 선택은 일견 비인간적으로 보일 수도 있다. 아무리 허구의 창작물이라곤 하나 잔혹함을 더 잘 드러내기 위해 아이의 눈을 가져다 쓴 꼴이 되니 말이다. 하지만 소년을 주인공으로 설정한 이유는 이게 다가 아니다. <장마>는 가족애를 소재로 한 분단 문학임과 동시에 주인공 ‘김동한’의 성장소설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주인공은 단순히 친할머니와 외할머니를 관찰하는 데 그치지 않고 사건을 직접 겪으며 정신적으로 성숙해진다. 초콜릿에 홀라당 넘어가 가족을 팔던 세상 물정 모르는 아이는 분단의 아픔을 극복한 두 할머니의 화해를 보고, 그 자신도 외할머니의 용서를 받으며 인간적인 성장을 이룩한다. 소설 끝의 장마가 끝났다는 구절은 ‘전쟁이라는 비극의 극복’을 의미한다. 또한, 어리숙하던 주인공의 유년기가 끝났음을 알려주는 장치이기도 하다. 이 정도면 훌륭한 성장소설의 결말이 아닌가.


이제 마무리하도록 하겠다. <장마>는 이데올로기의 대립이라는 주제를 한 가정의 갈등을 통해 녹여낸 구성이 인상 깊은 작품이었다. 그러는 한편 너무 민족주의적인 작품이 될 수도 있었던 구조에 ‘구렁이’에 얽힌 민간신앙을 넣어 이야기의 균형을 맞춘 것도  탁월한 선택이었다. 그리고 독자를 극에 몰입하게 만드는 흡입력도 대단했다. 결코 짧지 않은 문장이 계속 이어지는 소설이었는데도 전체 분량을 막힘없이 읽을 수 있었던 것은 순전히 윤흥길 특유의 필력이 살아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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