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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 HAN Aug 23. 2020

폭우를 주제로 한 시들

8월의 세번째 베스트

https://youtu.be/c1gPf16NjsY


안녕하십니까, FCB9입니다.
올해는 유독 장마기간이 긴 여름이었던 것 같습니다. 평소에 나지도 않던 홍수도 수차례 나고, 적잖은 피해가 발생한 탓에 그렇게 느껴지네요.


폭우, 이번 주제였죠. 거칠고 부정적인 감정이 먼저 드는 단어인데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셨나요? 물론 여기서 말하는 폭우는 단순히 비를 의미하진 않습니다. 폭우는 거칠게 쏟아지는 것, 그 형상이나 의미 자체에 뜻을 둔다면 시어는 자연물에 그치지 않고 다양하게 변화할 수 있습니다. 내리는 게 무조건 물방울이고 맞는 게 무조건 땅바닥이란 법은 없다는 말입니다. 흘러내린 눈물이 옷자락에 떨어질 수도 있고 충격이 가슴 속에 철렁, 하고 낙하할 수도 있는 거죠.

'폭우'라는 시어가 가지는 요점은 쉽게 말하자면 이겁니다. '원치 않게 위에서 떨어져 내리는 것', 떨어지는 것이 부정적인 요소든 긍정적인 요소든 당사자는 그것을 무조건적으로 받아들여야 합니다. 주도권이나 결정권 없이 폭우를 맞아야 하는 상태라 할 수 있겠죠. 여기서 사람이 취해야 할 선택지는 두 개가 있습니다. 폭우를 단념하고 맞거나, 아니면 피할 곳을 찾아 도망치거나.

물론 이건 시어에 관한 정신적 관념을 예를 들어 설명한 것입니다. 자연물 그대로의 폭우를 다룬 시도 몇개 있었으니까요. 단지 폭우가 갖는 성질을 제 나름대로 탐구해봤을 뿐입니다. 사물에 각자가 생각하는 의미를 담는 것은 문학가의 어쩔 수 없는 직업병이니... 귀엽게 봐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그럼 이제부터 베스트에 오른 글을 살펴보겠습니다.




1. 기계공학못해요님의 '쏟아지는 비를 맞으면서'

https://m.fmkorea.com/30309830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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쏟아지는 비를 맞으면서

나는 쏟아지는 것의 출처를 감히 상상해본다.


흐르는 순환에 따라


내 우산을 시끄럽게 때리는 이것들은


변기속에 쓸려간 모두의 감추고싶은 처리물 일수도

휴지더미에 사그라든 사춘기 끓어오르는 정열이 었을수도

뒷골목 양아치의 담뱃기 가득석힌 타액이었을수도


여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스멀스멀 새어드는 비가 퍽 불쾌해졌다.


조금이라도 묻는것이 무서워 급히 발걸음을 옮기다

물웅덩이가 발걸음을 잡아채 넘어뜨린다.


폭우속에 뒹굴면서 쏟아지는 처리물과 열정과 타액을 맞으며


나의 바보같음을 비웃는 비와 함께 간다.

////////

시평: 익숙한 자연물의 근원을 따져보는 것은 그렇게 신기한 일이 아닙니다. 시험 공부를 하다 잠깐 딴 생각을 할 때나 멍을 때리다가 문득 그런 생각이 들 때도 있죠. 우리는 어디에서 와 어디로 가는가, 비는 무엇이 모여서 내리고 내린 비는 또 어디로 모이는가. 하지만 비는 결국 물이고 수분은 우리가 살면서 보는 거의 모든 사물 안에 다 들어 있는 것들이죠. 화자는 그중에서 자기가 떠올릴 수 있는 온갖 더러운 물을 모아 내리는 폭우에 더합니다.

불쾌해져서 이내 발을 옮기지만 뭐 의미가 있나요. 이미 비는 맞을대로 맞아버렸고 이 모든 것들은 다 순환의 일부라는 것을 깨달았는데. 거기까지 깨우치자 화자는 자신을 멍청하게 여기는 비를 더이상 피하지 않습니다. 어차피 자기 자신도 순환의 일부임을 인정하면서요.


원론적인 얘기를 하는 글은 자칫하면 심심하고 따분해지기 마련인데 이 시는 그런 느낌이 전혀 없었습니다.

잘 읽었어요.



2. 생각팔이님의 '범람'

https://m.fmkorea.com/30387596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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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하나 얕기만 한 생은 없다


우리가 비록 조그마한

지류에 지나지 않아도


가끔 한 번쯤은 폭발하듯

게워내는 때가 있다


하늘도 무너진 양 쏟아내는데

가끔은 그렇게 넘쳐흘러도 좋다


그래야 더 멀리까지 싹을 틔우는 법이다

////////

시평: 아무리 과유불급이 사람 사는 데에 미덕이라지만 가끔은 만사가 폭발하듯이 터져야 좋을 때도 있습니다. 이 시는 폭우를 피하는 것도, 맞는 것도 아닌 이용하는 방식을 택했네요.

오랫동안 비가 안 와서 쩍쩍 갈라진 땅에는 폭우만큼 좋은 해결책도 없죠. 내리는 비의 양이 많으면 많을수록 특징없이 건조하기만 했던 토양은 더 많은 생명을 영글 힘을 비축합니다. 싹이 터서 땅이 푸르른 색으로 가득해지면, 전에 내렸던 폭우는 맡은 소임을 다했다는 사실에 미소짓겠죠.

우리네 삶도 마찬가지입니다. 여기서 위험을 짊어지면 후폭풍이 무서워질 때, 시도하는 것 자체가 망설여질 때, 하지만 한편으로 심심한 나날을 바꿀 수도 있을 것 같은 확신이 들 때. 시든 싹을 살리는 건 다름 아닌 그런 폭우같은 도전입니다.

잘 읽었습니다.


3. 축알못효수님의 '폭우'

https://m.fmkorea.com/30323651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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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이 되버린 점들 사이

땅에서 솟았던가 하늘에서 떨어졌던가

젖은 마당에는 중요치않다


씻겨나가는가하면 역류해 더럽히고

나도 이미 그들과 섞였으니 

깨끗하고 말고는 중요치않다


이 폭우는 또 언제 시작해서 언제 끝나는가

사라질 폭우는 모를것이다


어디서와 어디로가는지

///////

시평: 이 시도 위에서 본 시처럼 순환에 대해 말하고 있습니다. 다만 여기선 순환이 무엇인지 명확한 답을 내놓고 있진 않네요. 중요한 것은 자신이 이미 폭우와 섞여 다 젖고 말았다는 사실이지요. 어디에서 와 어디로 가는지 조차 화자는 신경쓰지 않습니다.

흔히들 말합니다. 대자연을 맞닥뜨리거나 경험하게 되면 인간이 초라하게 보인다고. 장엄함에 압도당한 사람이 느끼는 허무주의의 일종입니다. 이 시와 맥락이 조금 유사하다고도 할 수 있겠네요. 자연물을 주관적으로 보느냐, 일체화하느냐가 다를 뿐.

자연에 관해 사람이 자주 가지는 생각을 잘 보여주는 한 수였습니다.

잘 읽었습니다.

/////////

이번주 베스트는 어떠셨나요.
올여름 장마 때문에 꽤 우울하셨을 여러분들이 이번 주제를 통해 조금이나마 기운을 차리셨다면 기쁘겠습니다.

그럼 다음주 베스트 시간에 다시 찾아뵙겠습니다.
모두 좋은 하루 보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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