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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 HAN Dec 20. 2020

거울을 주제로 한 시들

나의 눈에 비치는 또 다른 나


안녕하십니까, J.HAN입니다. 이번 한주도 잘 보내셨나요? 거울을 주제로 한 이주의 베스트 시간이 돌아왔습니다.

거울은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빛의 반사로써 보여주는 사물입니다. 그래서 영화나 드라마에선 주인공이 자기 몸에 일어난 변화나 상황을 직시하는 장면에 거울을 꼭 삽입합니다. 상징적으로나 시각적으로나 명확하게 의도를 전달할 수 있거든요. 이별을 슬퍼하며 몇날 밤을 지샌 주인공한텐 다크서클이 짙게 내려온 눈가를 강조해서 보여주고, 특별한 능력이 생긴 주인공에겐 특수효과로 반짝이는 몸을 클로즈업해서 이변이 일어났음을 알려주죠.

또 거울은 이야기를 쓰는 작가 입장에서도 고마운 존재입니다. 거울이 주는 이미지는 누구에게나 보편적이기 때문입니다. 소설 속 인물이 거울을 보면, 거울을 본 인물이 보는 풍경과 독자가 상상하는 텍스트의 모습이 거의 일치하게 됩니다. 독자 입장에서 작품이 어떻게 읽히는지를 알아야 하는 작가한텐 더할 나위 없는 축복인 셈이죠. 기능적으로 매우 고마운 단어가 아닐 수 없습니다. 저도 학생 때 꽤 많은 도움을 받았고요.

시어로서의 거울도 무시 못할 위치에 있습니다. 화자를 객관화, 타자화하는 매개로써 거울은 시가 주는 메시지에도 기여하고, 시상을 전개하거나 반전시킬 때도 유용하게 쓰입니다. 평면적인 작품에 새로움을 주고 싶을 때도 자주 보이지요.

그럼 이번주 베스트로 뽑힌 작품에는 무엇이 있는지 함께 보러갑시다.


1. 시체님의 'happy birthday to me'

https://m.fmkorea.com/32550923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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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하해

내가 내게 말을 건네


아무렇지 않았던 괴로움이

외로움이 되는 건 한 끝 차이

사치라는 걸 알면서도

무심코 사온 생일케잌


내 어둠은 불이 붙는 곳

그들은 이것을 초라하네

헛된 바람에 다시 찾은 어둠은

날 여러 조각으로 나누고 삼키려해


앞에 놓인 거울엔

아까보다 흐려진 내가 있고

한 살을 더 먹어버린 내가 있고

볼품없이 잔해만 남은 나만 있네


축하해

나라도 내게 말을 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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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평: 거울은 자기 자신을 객관화하는 기능이 있습니다. 그런데 이 기능을 활용하면 이런 시를 쓸 수도 있었네요.

다른 사람들한테 축하받아야 마땅한 날인 생일에 화자는 혼자 조용하고 어두운 공간에서 스스로를 축하합니다. 여기서 화자는 자기 몸이 둘이 된 기분이 들었을 겁니다. 마치 거울에 비친 자기 몸이 실체화된 것처럼. 이 시에서 거울은 그런 의미를 가집니다.

혼자인 것을 인정하기가 싫어 또 다른 나를 만들었지만, 축하가 끝나고 나니 평소보다 더 침울해진 내가 서 있습니다. 최면은 풀렸고 앞엔 흐릿한 거울이 한살 더 먹은 자신을 바라보고 있죠.

다시 속일 수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화자는 이 말을 입에 담습니다. 그게 자기암시의 도화선이라도 되는 듯이.

축하해.

잘 읽었습니다.



2. meenoi님의 '거울'

https://m.fmkorea.com/32571950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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뼈를 주렁주렁 달고서

거울 앞에 섰다


그런데 왜

들고 간 뼈는 없고 더러운 살만 보일까

비친 모습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찰흙을 가지고 놀 때처럼

거울 전체에 덕지 덕지 붙였다


팔이 사라지고

발이 사라지고

눈이 사라졌을 때

그제서야 만족한 웃음으로 나올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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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평: 표면만을 비추는 거울의 난점일까요? 본 모습을 보고 싶어하는 화자에게 몸을 덮고 있는 자신의 살은 그저 더럽기만한 껍데기인가 봅니다.

사람은 누구나 외형 속에 숨겨진 내면을 알고 싶어합니다.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이죠. 그리고 내면을 볼 수 있는 방법은 오로지 자기가 깨우쳐야 합니다. 그런 상황에서 화자의 눈에 들어온 것이 거울이었죠.

하지만 거울에 비친 화자의 분신도 내면을 드러내 보이진 않았습니다. 보기 싫은 살이 멀쩡히 붙어 있다는 사실만 재확인하고 말았죠.

그리고 조금의 생략, 혹은 공백이 나옵니다. 어떤 성장, 깨달음을 얻은 화자의 뼈가 보이는군요. 무슨 마법을 부린건지는 몰라도 화자는 자신의 소망을 이뤘습니다. 마음의 눈으로 외형을 지운건지, 죽어서 살이 썩고 뼈가 자연히 드러난건지.

제가 말씀드릴 수 있는건 이 시가 내면에 대한 갈구를 짧은 내용 안에 훌륭히 담아냈다는 사실입니다.

잘 읽었습니다.

3. OneJ님의 '거울'

https://m.fmkorea.com/32526335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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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나간 가을에 마음을 준것도 아니고

다가올 봄에 마음을 기댄것도 아닌데

올 겨울은 왜이리 모질기만한지

나는 아직 이팔청춘인데

거울에 비친 내 현실은 술에 취해있기만 한지

오늘 거울은 왜이리 모질기만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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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평: 거울은 거짓말을 못합니다. 성질이 애초부터 그러니까요. 솔직함은 때때로 무서운 독이 됩니다.

사람이 자기가 힘든 시기를 보내고 있음을 체감하는 때는 다름 아닌 '그 사실을 깨달았을 때'입니다. 힘든 그 순간보단 힘들었다는 증거를 두 눈으로 확인하는 때가 심적으로 훨씬 지친다는 말입니다.

그러니 그 사실을 깨닫게 해주는 거울이 얼마나 원망스러울까요. 화자는 추운 겨울만이 아니라 죄 없는 거울에게도 한탄을 내뱉습니다. 모진 녀석. 꼭 그렇게 알려줘야 했냐. 거울하면 떠오르는 생각이 잘 나타난 시였습니다.

잘 읽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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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이번주 베스트 시간이 끝났습니다. 다른 때보다 글을 쓰기가 쉬운 한 주였던 것 같네요. 여러분의 글에서 막힘이 느껴지는 경우가 거의 없었습니다. 거울의 솔직함이 글의 솔직함으로 이어지기라도 한 걸까요? 실없는 소리 죄송합니다.

다음주에도 좋은 글로 찾아뵙겠습니다.

모두 좋은 하루 보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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