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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 HAN Dec 27. 2020

꽃을 주제로 한 시들

꽃으로도 때리지 마라. 피어나는 향기를 네가 감당할 수 있겠느냐.

안녕하십니까, J.HAN입니다. 꽃을 주제로 한 이주의 베스트 시간이 돌아왔습니다.

이번 주제는 향기로운 단어였죠. 꽃은 참 많은 이미지를 가졌습니다. 아름다움, 색깔, 향기, 자연, 꽃밭, 만개... 이중에서 가장 많이 비중을 차지하는 것은 단연 색깔일겁니다. 꽃이 어떤 색이냐에 따라 글에서 지니는 의미와 가치가 달라지기 때문입니다. 물론 꽃의 종류가 특정되면 색에도 제약이 생기지만요

또 꽃은 다양한 이미지에 걸맞게 여러 상관물에 대입되고 비유의 대상으로 치환됩니다. 미녀, 수명, 희망, 순수성, 사랑 등 물질과 추상적인 경계를 가리지 않고 드나들지요. 여러분이 빗댄 꽃들도 강렬한 인상으로 제 머릿속에 남아 있답니다.

그럼 이번주 베스트에 오른 텍스트 위의 꽃들을 살펴봅시다.


1. 센스온더비치님의 '그대라는 폭력'

https://m.fmkorea.com/32623890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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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

내게 단 한순간도

상처 아닌 까닭은



꽃이라는 건

휘두르면 폭력이 아니라

표현이 되기에 그렇다.

//////

시평: '꽃으로도 때리지 말라'는 말이 있지요. 이 시는 그 꽃으로 때리면 생기는 결과를 풀어냈습니다.

한번 현실적으로 생각해볼까요. 손으로 꺾은 한 송이 꽃을 휘둘러 사람을 때린다고 가정합시다. 그럼 어떻게 될까요? 아마 아프진 않을겁니다. 가시 돋은 장미로 때리면 모를까. 아픔 대신 꽃이 휘둘러진 궤적에 향기가 남겠지요. 그렇기에 꽃으로는 폭력을 행할 수 없고, 향기를 흩뿌린다는 감각적인 표현이 됩니다.

그리고 화자는 로맨틱하게도 그것이 당신이 내게 상처를 입힐 수 없는 이유라 말했습니다. 상대가 손톱으로 화자를 할퀴든 주먹으로 때리든, 이미 화자 안에서 꽃이 된 그 사람이 폭력을 휘두를 수는 없어졌으니 말입니다.

잘 읽었습니다.



2. 곤재님의 '꽃과 꽃병'

https://m.fmkorea.com/3264109177

///////

그대는 꽃

나는 꽃병



아름다운 그대는

내 속에서부터

환히 피어나고



나는 그대로부터

새 이름을

부여받는다



나는 그대를 품고

그대는 나를 만든다

내가 소유하는 나의 신(神)이여......



한결같은 나의

애욕과 경배를 받으소서.


그대는 꽃

나는 꽃병

우리는 서로를 떠날 수 없다.

/////////

시평: 꽃병은 꽃을 품고 있어야 꽃병이 되고, 꽃은 병 안에 담겨야 피어있는 꽃으로 남을 수 있습니다.

사랑보다 더 끈덕진 관계는 무엇이 있을까요? 바로 서로 삶의 이유가 되어주는 관계입니다. 공생, 상보, 필요충분조건 등 이들을 비슷하게나마 수식하는 단어는 여럿 있지만, 완전하게 그 뜻을 대변하는 단어는 없어 보입니다. 그러니 이렇게 풀어 쓸 수밖에요.

A가 있어야 B가 있고, A의 존재가 B의 의미를 부여하고, 한쪽이 일방적으로 끌어들이는 것 같으면서도 실은 답싹 안긴 쪽이 주도권을 가지기도 하는. 더 좋아하는 쪽은 있을지라도 평등한 조건은 변치 않는 관계가 이들입니다. 어쩌면 좋고 싫음의 경계를 초월했는지도 모르지요. 사랑이라는 고귀한 감정도 이들에겐 하찮은 장난질입니다.

호오와 선악을 떠나 존재의 유지를 위해 함께 섞여 살아야 하는 꽃과 꽃병, 탁자 위에 무심히 놓인 두 존재는 한쪽이 사라질 때까지 꽃인 동시에 꽃병일겁니다.

잘 읽었습니다.


3. 형이상학님의 '꽃'

https://m.fmkorea.com/32721532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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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나 지지 않을 꽃이며 봄이었나

기억을 남기는 사람과

그리움을 남기는 계절

나는 때때로 영원을 꿈꾸며 잠을 잔다

당신의 꽃말은 무엇이었으며

어떤 계절이었나

곰곰한 생각을 하며

햇빛을 쬐며 울 사람아

그대의 사인은 외로움이었다

////////

시평: 꽃은 남기는 것이 두 개가 있습니다. 하나는 향기, 또 하나는 꽃말입니다. 사람이 죽어서 이름을 남기는 것처럼, 꽃은 시들어도 그 꽃말을 통해 우리의 기억 속에 남습니다.

이 시는 꽃을 사람에 빗대어 시상을 전개합니다. 계절이 지나가면 시드는 꽃, 명대로 살다가 숨을 거두는 사람. 다른 것 같으면서도 비슷한 둘은 작은 차이점이 존재합니다. 사람은 때때로 자신의 유한성을 부정하고 싶어합니다. 자신의 의미와 꽃말이 영원히 유지되도록, 계속 살아갈 수 있기를 기도하죠. 그럴 수 없다는 걸 알면서도요.

차이점은 또 있습니다. 바로 꽃말을 자신이 설정할 수 있는 것입니다. 꽃의 꽃말은 사람이 부여하지만 사람의 꽃말은 본인이 정합니다. 그리고 그 꽃말대로 삶을 보내며 기억을 남기죠.

결국 사람은 자기가 때때로 바란 소망이 불가능함을 깨닫고 시들어 갑니다. 꽃과 달리 몇십번의 계절이 지나가고 또 돌아왔습니다. 꽃말에 부끄럽지 않은 생애도 보냈습니다. 그런 것들을 생각하다가 어느 순간 알아차립니다.

내가 사라져도 의미와 꽃말은 기억되겠구나. 그렇담 나는 기억을 남기는 사람으로 기록되겠구나.

하지만 이 깨달음도 외로움이 가져온 죽음을 걷어내진 못했습니다. 외로움 때문에 죽은 어느 한 송이 꽃은, 사람들의 기억 속에 그렇게 남았습니다.

잘 읽었습니다.

//////////

이번주 베스트는 어떠셨나요? 모쪼록 즐거운 시간이 되었기를 바랍니다.

그러고보니 새삼 느끼는건데, 요즘 꽃을 본 적이 통 없는 것 같습니다. 지나가다 몇번 봤다면 봤는데... 정작 유심히 살핀 기억은 없다고나 할까요. 기회가 되면 근처 꽃집에나 한번 가봐야겠습니다.

그럼 다음주 베스트 시간에 다시 찾아뵙겠습니다.

모두 좋은 하루 보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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