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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 HAN Apr 11. 2021

역린을 주제로 한 시들

건들지 마. 제발. ...기어이 하는구나.



안녕하십니까, 제이한입니다. 일주일동안 잘 지내셨나요? 이주의 주제 '역린'의 베스트 시간입니다.

역린은 용의 몸에 나 있는 81개의 비늘들 중에서 유일하게 거꾸로 난 비늘을 뜻합니다. 이 역린을 건들면 용이 분노하여 건든 자를 반드시 죽일 정도로 위험한 급소라는군요. 이러한 특징 때문에 일상생활에선 사람의 약점이나 심리적인 급소를 역린이라 칭하기도 합니다.

따라서 역린은 단어 안에 분노와 공격성이 내포해 있습니다.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 곳쯤은 역린같은 구석이 존재할테니까요. 그걸 실수로 건드렸든 고의로 찔렀든 격정적인 감정을 불러일으킨다는 점은 동일합니다.

그렇다면 역린이 만들어지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일단 역린은 드러나지만 않으면 화낼 일이 없습니다. 숨기고 싶은 사실이기 때문이죠. 자신이 부끄럽다고 여기는 치부니까, 그걸 공격성과 비밀로 꽁꽁 싸매서 방어기제로 삼는 겁니다. 즉, 자기 자신에게 당당하지 못한 사람은 이 역린이 다른 사람보다 많다는 소립니다.

역린을 들킨 사람은 정신적으로 발가벗겨지는 기분이 들겠지요. 들키기 전에는 기피성과 무관심. 들킨 후에는 분노와 수치심. 참으로 오묘한 단어가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럼 이번주 베스트에 오른 작품들을 소개하겠습니다.



1. 신현빈님의 '시퍼런 역린'

https://m.fmkorea.com/34989371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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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주일이 지나도 오지 않던 아이가

오늘에서야 모습을 보여주었다

날이 풀려 따뜻한 4월의 첫 날

어색한 긴 팔, 긴 바지를 입은 채로,


그렇게나 어색한 차림으로

자연스럽게 웃어보이는 아이

입가엔 서글픈 반가움을 띄고

눈가엔 슬픈 친근함을 지닌 채로,


우두커니 서 있는 아이의 팔뚝을

무심코 잡았을 때 보인 그 표정,

소매를 걷었을 때 보인 그 자리,

시퍼런만큼 슬픈 그 아이의 역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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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평: 자신의 역린을 들키고 싶지 않은 상대. 물론 역린은 누구에게도 안 들키고 싶겠지만, 특히 더 그런 사람이 있을 겁니다. 이 시에 등장하는 아이의 상대는 과연 누구였을까요.

하루 중 몸을 성히 보전할 수 있는 몇 안되는 곳인 학교. 그 학교가 이 아이에겐 마음이 놓이는 장소였을거라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 장소에서 함께 지내는 친구들은 잠깐이나마 힘든 현재의 상황을 잊게 해주는 존재였을테고요.

화자에게 팔뚝을 잡혀서 자신의 시퍼런 비늘과도 같은 역린을 들켰을 때, 그 아이는 하나뿐인 안식처가 사라졌다고 느끼지 않았을까요.

잘 읽었습니다.


2. 기계공학못해요님의 '비늘'

https://m.fmkorea.com/3494714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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툭 툭 건드리지마


나도 용 처럼 화내고 싶지만


팔딱거리는게 전부인 물고기인걸


그러니 그냥 지나가줬으면


내 비늘의 번쩍거림이 너의 눈길을 끌지않았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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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평: 역린을 만지지 말고 지나가주었으면 하는 마음. 건드리면 어떻게 화를 내야할지도 몰라 그저 피하고 싶은 물고기.

상대방이 악의를 가지고 건드려도 보복하지 못하는 상황. 화를 내도 두려워하지 않으니 미칠 노릇입니다. 무엇보다 나의 중요한 치부가 그들에겐 단순한 흥밋거리밖에 되지 못하는 게 슬픕니다. 분노나 수치보다 앞서는 무력감이 시 전반에 깔려 있군요.

잘 읽었습니다.


3. 밤이찾아오면님의 '결국'

https://m.fmkorea.com/34912329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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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은 드러내고 말았구나

네가

나의 역린을


더 이상은 숨길것도

감출것도 없어


오히려 홀가분해

아이러니하게 들릴지 모르겠지만

고맙다


불안에 떠는  

그 지긋지긋한

그 겁쟁이는 이제 없을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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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평: 화를 낸 뒤에 찾아오는 홀가분한 평화. 오히려 역린을 건드려준 사람에게 드는 감사한 마음. 이제 화자에게 약점은 없습니다.

시의 제목인 '결국'은 명사로써의 의미를 그대로 담은 것 같군요. 마침내 일의 국면이나 상황이 닥침. 화자의 상태에 제일 잘 어울리는 말입니다.

잘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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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주 베스트는 어떠셨나요. 역린은 다소 특이하고 신비한 단어였습니다. 시상을 구축하고 새로 펴내는 것이 꽤 어려웠지 않나 생각되네요.

다음주에도 좋은 베스트로 찾아뵙겠습니다. 모두 좋은 하루 보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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