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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엄마는요

오늘 저녁메뉴는 죽음입니

 어제는 하루 종일 친정 엄마의 마지막을 생각했다. 김현아 박사가 쓴 <죽음을 배우는 시간>이라는 책을 읽으며 나도 모르게 중간중간 눈물이 나고 감정이입이 된다.


 죽음학 공부를 하고 강의를 하면서 이미 알고 있는 내용이다. 연명치료와 완화치료. 머리로는 안다고 생각했는데 너무 현장감 있는 글을 읽으면서 과연 마지막 순간에 어떤 결정을 내릴 수 있을지 걱정이 되기도 한다. 열이 나고 숨이 가빠지는 부모를 보고 병원에 가지 않고 지켜보기란 말처럼 쉽지 않다. 미리 교육이 필요하다. 노환으로 돌아가실 때가 되면 이미 의식이 흐려지고 그리 고통을 느끼지 않는다고 하니 그 말을 믿고 싶다. 

  90세가 넘어서도 병원에 가면 인공호흡기를 끼고 심지어 심폐소생술을 하기도 한다. 심폐소생술, 흔히 CPR이로 부르는. 우리는 의학드라마에서 자주 보는 장면이다. 실제로 CPR을 하다가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본 적이 없다. 노인들은 가슴 압박으로 갈비뼈가 부러지고 장기 손상을 입기도 한단다. 

     

  내가 내린 결론은 집에서 가족들과 함께 지내고 마지막을 맞이하는 것이 좋겠다는 것이다. 친정 오빠와도 미리 이야기하고 합의했다 엄마의 깔끔한 성격대로, 평소 뜻에 따라서 연명치료는 절대 하지 않기로. 이미 90이 훌쩍 넘으셨고, 치매와 당뇨, 관절염, 고혈압 등 평생 관리해온 병과 노환까지 여러 가지 문제를 안고 있다. 

  가끔 열이 나거나 하면 119로 응급실을 다녀오기도 몇 번 했다. 연명치료 의향서에 미리 사인해 놓은 것은 없다, 몇 년 전까지도 연명치료에 대해서 잘 모르고, 그런 준비를 하기 전에 문득 치매를 발견했다. 

 그래도 그나마 위안이 되는 것은 요양원에 가지 않고 집에서 편히 계신다는 것이다. 1989년까지만 해도 77%가 집에서 임종을 맞이하고 병원에서 사망하는 경우가 12%에 불과했는데 2000년대 들어서면서 그 숫자는 역전이 되었다. 요즘은 80% 이상이 병원에서 생을 마감한다.      


  마지막으로 엄마에게 해드리고 싶은 일은 마지막까지 집에서 따뜻하게 지내다가 가시는 것이다. 노환은 완치가 되는 것도 아니고 죽음은 치료해야 할 병이 아니건만 현대 의술이 너무 발달한 나머지 우리는 마지막까지 병원에서 최선을 다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연명치료를 하면 며칠이라도 더 버틸 수 있고 그러다 깨어날 수도 있지 않을까 헛된 희망을 품기 때문이다. 그래야 ‘효’를 다하는 것이라고 착각하기도 한다. 장남들은 친척들에게 부모에게 소홀했다는 원망을 들을까 무서워서 연명치료를 포기하지 못한다고 한다. 그래서 ”먼 친척 증후군“이란 말도 생겼다. 평소에 잘 찾지 않는 자식일수록 마지막에 고집을 피운다고 하는데 나는 그런 실수는 하지 말아야지.


  절대로 자상한 딸이 아니지만, 내가 딸로서 할 수 있는 마지막 일은 집에서 편하게 떠나시도록 지켜 드리는 것이 아닐까 싶다. 엄마는 다른 세상에 가도 기다리는 남편과 먼저 떠난 아들 만나서 잘 사실 거라고 믿는다. 그래 그렇게 믿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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