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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Bye Newyork 11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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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llie J Apr 02. 2021

1년 반의 어학연수를 마치고

미국이 나에게 준 것


나는 30년 동안 살아오면서 아이러니하게도 나에 대해 잘 몰랐다. 정확히는 ‘나’라는 자아가 독립적으로 존재한다는 것을 깨닫는데 오래 걸렸다. 어렸을 때부터 남의 감정을 잘 읽었던 거 같다. 읽으려고 읽은 게 아니고 너무나 자연스럽게 느껴졌다. 그 사람의 눈짓, 표정, 행동, 몸짓이 나한테 알려주었다. 내 감정을 느끼기도 전에! 어떤 상황이 주어졌고, 내 앞의 사람이 좋아하거나, 슬퍼하거나, 불편해하거나, 민망해하거나 싫어하면, 그 감정이 너무 내 감정인 듯 느껴져서, 그 상황을 해결하려고 그 사람에게 더 이상의 나쁜 감정을 주지 않기 위해서 더 많이 노력해왔다. 어렸을 때는 그게 내가 느끼는 감정인 줄 알았을지도. 눈치를 보려고 보는 게 아니고, 저절로 눈치껏 행동하게 되었던 것이다. 왜 그렇게 생각하냐면, 나는 근본적으로 남한테 관심이 없다. 남이 나를 좋아하는지 싫어하는지 관심이 없었다. 왜냐면 그걸 신경 쓸 필요가 없었다. 나를 싫어하는 사람이 거의 없었다. 나는 상대방을 불편하게 하는 사람이 아니니까.


이런 특징 때문에 편한 점도 많다. 어떤 까칠한, 예민한 사람과도 무난하게 잘 지낼 수 있다. 그룹 안에서 튀지 않을 수 있다. 한국사회에서는 특히 편하게 살아갈 수 있는 장점이다. 단점도 있다. ‘내’가 없다. 나의 취향, 선호, 개성이 없다. 나는 맞춰주는 사람이었으니까. 좋아하는 건 없고, 싫어하는 건 많았다. 그걸 판단하는 기준은 남들이 대체로 좋아하는 것과 남들이 대게들 싫어하는 것. 결론적으로 남들은 좋다는 것보다 싫다는 감정을 더 많이 강하게 자주 표현하기 때문에 나에게는 싫어하는 게, 하지 말아야 할 게 많았다. 그걸 처음으로 깨닫기 시작한 거는 대학 때.


나는 머리가 나쁘지 않다. 초기 습득력이 꽤나 좋은 편이다. 무언가를 보고 잘  분석하고, 파악하고, 이해한다. 습득력에 비해 끈기는 없는 편이다. 같은걸 오래 못한다. 기초는 너무나 빨리 떼이만 어느 정도 알았다고 느끼면 열정이 동시에 식는다. 한 가지를 오래 하지 못한 운명. 하지만 이 세상은 진득하니 몇 년을 해야 겨우겨우 이룰 수 있는 것들이 너무 많다. 나는 그나마 재미있어 보이는 미술을 선택했다. 공부는 잘하는 사람이 너무 많고, 체육은 몸을 움직여야 되니 싫고, 음악은 기본기 연습이 되야지만 제대로 된 걸 할 수 있는데, 미술은 아니다. 그림은 한 장을 그리면 끝나니까. 암튼 아이러니하게도 나는 미술을, 그중에서도 디자인과를 선택했다. 개성이 무엇보다도 중요한 곳에 들어가 버린 거다. 그 뒤는? 말해 뭐해. 얼마나 힘들었겠는가?


그래도 대학 땐 좀 괜찮았다. 튀지 못해 안달 난 애들도 있지만, 순수미술을 전공하거나, 성격이 내성적인 차분한 아이들도 많으니까. 회사를 갔다. 어느 정도 자신의 개성도 있고, 실력도 있고, 성격도 있는 몇몇의 사람들이 모여, 서로의 결과물을 비교하고 비교당하며 몇 년을 있다. 나는 주위 동료 디자이너들이 부러웠다. 멋졌다. 돈으로 멋 내는 게 아니고, 튀려고 노력하는 것도 아닌. 그냥 그들은 자신만의 취향을 점점 세련되게 드러내는 법을 배우고 있었다. 그들 사이에서 나는 점점 내가 미운 오리 새끼 같았다. 처음에는 어쭙잖은 좋은 머리로 나름 두각을 나타냈는데, 점점 나는 그 한계가 드러나는 느낌이었고, 나의 끝이 한계가 보이는 느낌이었다. 나는 처음으로 ‘내’ 것을 가져야 한다고 느꼈다. 나만의 다른 점. 나만의 개성. ‘나’라를 무기를.



처음에는 내가 너무나도 좋아하는 동료이자 라이벌이자 친구들과의 비교가, 나는 너무 가진 게 없고, 그들보다 빛나지 못하는 거 같다는 패배감이 나를 이곳으로 보냈다. 그들과 다른 삶을 살면, 좀 나은 거를 얻어갈 수 있지 않을까? 그들도 부러워할만한 자랑스러운 사람이 되지 않을까? 막연한 희망과 근거 없는 자신감이 있었다. 그 어떤 테스크도 별 어려움 없이 살아왔으니까. 이번에도 별로 어렵지 않겠지. 솔직히 이게 내 진짜 속마음이었다. 맞다. 부유하진 않아도 별 어려움 없이 나고 잘 자랐다. 현실 감각이 아예 없는 편은 아니었지만, 큰 실패 없이 편하게 자란 티가 팍팍 나지 않는가?


그리고 30살이라는 나이가 주는 용기도 있었다. 인생에서 해외에 살 기회가 몇 번이나 될까? 결혼하기 전에, 30이 되기 전에 해보고 싶으면 지금이 적기라고 생각했다. 사실 그렇게 말하는 게 명분 상 가장 그럴듯해 보였다는 게 더 맞는 표현일 거다. 내 마음속엔 이미 정해졌지만, 불필요한 입씨름은 여전히 싫다. 솔직히 이 핑계가 스스로에게도, 가족, 친구들, 친척들을 납득시키기에 가장 그럴듯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용기가 없는 누군가는 걱정을 앞세워 말한다. ‘그러다가 실패하면 어떡해’ ‘갔다 와서 취직 안되면 어쩌려고’  본인들은 감히 엄두도 못 낼 용기가 부러워하는 소리다. 그들과 같이 걱정의 늪으로 들어갈 필요는 없다.


나는 여전히 평소에 주장이 강하진 않다. 여전히 취향이 까다롭지도 않고, 쓸데없는 논쟁은 피하고 싶다. 밖에 있을 땐 에너지 소비가 큰데, 선천적으로 내향적인 사람이 맞다. 데 이제는 내성적이진 않다. 사람들과 어울려 노는 것도 심히 많이 좋아하고, 흥미롭고 재밌는 것을 위해선 리스크를 감수하는 것쯤이야 정신적 타격도 별로 없다. 생각보다 정신력이 매우 단단하다는 것. 남들이 내 외관상+풍기는 분위기를 보고, 나를 되게 소심하거나 착하거나 보호해줘야 될 거 같은 느낌을 받는 것은 어쩔 수 없지만, 여전히 열 받는 부분이다. 나는 별로 내 외모를 좋아하진 않는다.


4년 정도 일하며 나름 열심히 모은 돈을 다 털어 미국행을 떠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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