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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Bye Newyork 12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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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llie J Apr 02. 2021

1년 반의 어학연수를 마치고 2

그리고 이렇게 끝이 나고 있다.

짐을 쌓다. 뭐하나 빠지지 않게 꼼꼼하게. 이것저것 불필요한 것들을 버리고 나니 들고 갈 건, 큰 캐리어 3개와 기내용 하나. 무거운 생활용품 같은 것들은 친구를 주거나, 룸메에게 줬다. 하나 둘 버리기 시작하는데 ‘아 내가 여기 정착하려고 모아놓은 물건은 거의 없구나.’ 생각이 들더라. 언제든 버려도 이상하지 않은 당장의 쓰임만 하면 되는 그런 값싼 물건들만 가득했다. 새삼, 내가 여기 그래도 1년 반을 머물렀는데, 내 흔적이 남는 물건이 없다는 생각에, 애착 가는 가구를 하나도 들이지 않았다는 생각에 생각에 마음이 허전했다. 여기에 언제든 없어도 되는 사람 같이 느껴졌다. 누군가에 의해서가 아니라 나 스스로 그렇게 만들어왔다.


마지막 짐을 쌓다. 문득, 이대로 내 모험은 끝인 건가. 이렇게 급히 허무하게. 다시 못 돌아올지도 모르는 곳을 떠나는 게 맞는 건가. 이제 막 정을 붙이기 시작했는데, 내 짝사랑은 표현도 한번 못해봤는데, 이렇게 끝인 건가. 억울했다. 한국에서 기다리고 있는 내 삶이 분명 가치가 있을 텐데 나한테 가장 필요한 것들을 줄텐데, 뉴욕에서의 삶은 뿌리 하나 박혀있지 않은 낙엽과도 같아서 모든 풍파에 흔들리는 비루한 삶은데, 뭐가 아쉬운 거지. 알 수 없었지만, 눈물이 났다. 내 청춘이 내 모험이 내 도전이 다 끝나는 기분이 들었다. 그것도 아무것도 일구어 내지 못한 상태로. 그동안 불안해하지 않으려 꾹꾹 눌러 담았단 감정들이 터져 나왔다. 내 선택이 옳은 걸까. 너무 미래만 바라보며 한 결정은 아녔을까. 당장의 현실을 외면한 건 아닐까. 끝없는 의구심과 불안함이 다시 나를 덮쳤다. 나는 아직 여기에 있고 싶은가 보다.


잠시 돌아갔다가. 이 상황만 진정되면 다시 돌아올 수 도 있다. 물론 가능하다. 하지만, 5개월 후의 내가 과연 그 선택을 할까. 한국이라는 친구들이라는 안정된 직장이라는 그 편안함 속에 내 몸을 뉘울 거라는 것쯤 모를 수 없다. 나는 섣불리 그 선택을 하지 않을 거다. 맞다. 나는 돌아가는 선택을 한 거다. 최소 2년은. 훗날 후회하게 될지도 모르는 이 순간이 두렵다. 나 스스로를 패배자라고 여길까 봐. 현실에 졌다고. 나의 마음은 고작 그 정도였던 거라고. 나는 갈망했지만 실패했다고.


날 이곳에 붙잡아 둘 수 있는 강력한 이유가 있었으면 했다. 내가 그곳에 돌아가지 않아도 될 이유. 그래서 나는 사랑을 갈구했다. 내가 여기에 남을 최소한의 명분을 가지기 위해서. 근데, 잘못된 욕심으로 시작되는 갈구는 금방 티가 나나 보다. 마음처럼 안 되는 것을 보니. 과거에도 현실에서 벗어나기 위해 결혼을 답안지로 선택하려고 했던 때가 있었다. 그러면 나를 해외로 보내 줄 수 있을 거 같았다. 근데 꿈 많았던 그는 나를 선택하기 위해 한국에 남았다. 아이러니했다. 우리는 결국 이뤄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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