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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영 Jan 24. 2022

가만히 웃거나 울면서

시인 최현우

  누구는 사라지기 위해, 누구는 사라지지 않기 위해 쓴다고 했다. 아름답자고, 추악해지자고, 자유와 자유의 실패 속에서 자란다고도, 죽는다고도, 아무것도 아니라고도, 인간의 안쪽으로, 바깥쪽으로, 한 손에는 모래 한줌, 한 손에는 온 우주를 쥐고 똑바로 걸어가는 거라고도 했다.


  꽃을 샀다가 서둘러 탄 막차 속에서 망가져버렸다. 차마 버리지 못했다. 등뒤로 감추고 돌아왔는데 이런 예쁜 꽃다발을 어디서 가져왔냐고 환하게 웃는 사람이 있었다. 그 얼굴을 보면서 아주 오래도록, 가만히 있고 싶었다. 그러지 못했다. 


  어떤 균형으로만 위태롭게 서서 만나게 되는 무언가. 찰나에 마주서서 가만히 웃거나 우는, 어쩌면 그게 내가 하는 전부와 하고 싶은 전부가 아닐까, 절반은 알고 절반은 모른다. 다만 아주 가끔씩만, 나는 희망도 절망도 아닐 수 있었다. 그때서야 간신히 숨을 쉴 수 있었다. 





필사4일 2022.0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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