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필
동생 프사가 바뀌었다. 환자복을 입은 아빠가 약간 찌푸린 얼굴이다. 아직 고통을 가지고 계신 아빠는 카메라 앞이라고 굳이 웃지 않으셨다.
멀 둥 키만 큰 채, 싱겁다고 엄마에게 타박을 받았지만 아빠는 다정하셨다. 새 학기마다 모아둔 달력 뒷면으로 우리 교과서를 일일이 싸주셨다. 하얗고 반들반들한 표지에 ‘국어’라고, ‘산수’라고도 써주셨다. 아빠의 필체는 곧고 바르기 때문에 친구들 앞에서 좀 폼이 났다. 그런가 하면 필통 가져와라, 하신 뒤 연필도 늘 깎아주셨다. 아빠의 손가락은 길고 가늘다. 왼손으로 연필을 쥐고 오른손에 연필깎이 칼을 쥐었다. 검은 칼집을 가진 칼이었다. 연필 위에 칼을 올린 뒤 왼손 엄지로 칼등을 미는가 싶으면 까만 연필심이 나온다. 놀랍고 신기해서 뚫어져라 바라보았다. 연필을 돌리며 미끈미끈 나무를 깎은 뒤 검은 연필심을 곱게 갈아서 필통에 가지런히 넣어주셨다.
나도 아빠처럼 따라 해 봤다. 나무는 짤막짤막 잘리고 못생긴 채 연필심만 길쭉했다. 그 심을 갈면 당연하다는 듯 부러지고 다시 또 깎았고 그러다가 짤막해진 연필이 되곤 했다. 대체 아빠처럼 할 수 없었다. 새 연필은 금세 몽당연필이 되었다.
‘아빠 보고 싶어요’ 동생의 프사 메시지다. 동생도 아빠가 보고 싶은가 보다. 작년 햇살 좋은 날 아빠는 하늘 끝까지 가버리셨다.
아직도 연필을 즐겨 쓴다. 지금은 아빠처럼 나도 연필을 꽤 예쁘게 깎는다. (2025.01.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