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울
"거울아, 거울아, 이 세상에서 누가 제~일 예쁘니?"
“당연히 네가 제일 예쁘지~"라는 답변을 기다린다면, 그렇게 물어볼 수 있는 자신감이 더 부럽다.
'어우, 우리 못난이' 나는 못난이였다. 집집마다 tv 위엔 더벅머리에 주근깨 얼굴을 하고 울거나 심통 난 듯한 못난이 삼형제가 있었다. 자꾸 나더러 그 못난이라고 했다. 유년 시절 도시에 살던 엄마는 나를 할머니에게 맡겼다. 교련복에 비스듬히 눌러쓴 베레모, 한 손은 주머니에 넣은 채, 내 할머니집에 왔던 삼촌 친구는 유난스레 놀렸다. 이름도 기억한다. 사람들은 그를 '원이'라고 불렀다. 그래서인지 나는 거울을 보지 않았다. 늘 못난이라는 말이 생각났고 고개를 들 수 없었다.
'엄마는 아이의 거울'이라는 심리학적 개념이 있다. 도널드 위니컷((Donald Winnicott)의 이론이다. 엄마의 웃음은 아이의 웃음이고 엄마가 우울하게 아이를 바라보면 아이도 곧 우울해지듯, 아이는 엄마의 정서적 표현과 반응을 통해 자신을 인식한다는 개념이다. 위니컷은 엄마의 거울 반응을 통해 아이는 자기 존재를 일깨운다고 보았던 것이다. 시골에 맡겨진 나는 엄마가 없어서 슬펐을 것인데, 주양육자였던 할머니까지 밤이면 서글픈 노랫가락을 읊으셨다. 해 질 녁이면 벌써부터 가슴이 아렸으니 거울 속의 나는 슬펐다.
거울은 못난 나를 확인시키는 것 같은 도구였다. 그래서 못 본 척 무심히 지나쳤다. 곁눈질로 슬쩍 보다가도 이내 시선을 돌렸다. 거울 속엔 엄마 없는 설움을 꾹 참는 어린 못난이가 있었다.
거울은 반사의 법칙에 따른다. 거울을 만들자면 가시광선에서의 반사율이 높은 물질을 필요로 하는데 대개 금속이다. 이때 금속표면에 반사된 사물이나 사람의 빛이 그대로 튕겨져 나오는 것이 아니라 금속의 자유전자는 에너지를 흡수되고 이것이 다시 방출되는 사이 새롭게 만들어지는 과정이 있다고 한다. 문과적 사고로 정리를 하자면, 거울도 한번 흡수되었다가 일단 멈춰 금속의 전자들과 상호작용을 통해 새롭게 만들어져 나오는 원리를 가졌다는 것이다.
즉, 거울은 사람이나 사물을 새롭게 이해하고 표현하는 도구와 같다. 물리적 또는 심리적 상호작용을 통해 세상을 ‘다시 그려내는’ 과학적인 과정인 것이다.
내 거울이 달라진 것은 부모님과 다시 살면서, 그리고 남편과 결혼하면서다. 부모님과 남편은 유년시절의 거울에서 나오기까지 나의 비논리적인 억지와 퇴행의 과정을 잘 견뎌주었다. 그래서 지금은 건강하고 신뢰할 수 있는 거울을 가지게 되었다.
우리의 시선은 거울과 같다. 아이의 자아가 엄마라는 거울을 통해 형성되듯, 우리의 생각과 마음가짐 그리고 경험에 따라 세상을 비추고 반사하는 모습도 달라진다.
지금 우리 현실은 혼란스럽고 어지럽다. 이 나라와 세계뿐 아니라 갱년기에 들어선 나도 그렇다. 핑계 삼아 짜증도 잦다. 나의 거울에 얼룩짐은 없는지 들여다보고 닦아줄 필요가 있겠다. 그리고 다른 사람의 거울에 비친 그 세상도 그대로 봐줄 줄 아는 너그러움 역시 가질 수 있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