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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두근 Oct 25. 2020

일상의 행복을 찾아서

매일 소확행


알람 소리에 눈을 뜬다. 세수를 하고, 면도를 하면 그제야 정신이 든다. 바나나 하나를 챙기고 가방을 들고 나온다. 시간을 보니 약간 서둘러야 한다. 차에 시동을 걸고 주차장을 빠져나온다. 얼마 지나지 않아 벚꽃이 피기 시작한 도로를 지난다. 노란 개나리도 줄지어 피어있다. 봄꽃을 보고 있으면 마음이 설렌다. 아침마다 듣는 CBS FM 팝송 음악의 볼륨도 높인다. 신나는 음악이라도 나오면 흥얼거리며 몸도 흔든다.     


어느새 목적지에 도착한다. 요즘 출퇴근하는 곳은 대학교 캠퍼스다. 사무실이 대학교 캠퍼스 안에 있다. 북한산 근처라 시내보다 기온이 몇 도는 낮다. 그래서인지 캠퍼스에 있는 벚꽃 나무는 몽우리만 맺혔고 꽃은 아직인 모양이다. 며칠 있으면 피겠다는 생각을 하며 사무실로 들어갔다. PC를 켜고 아메리카노 한잔과 함께 일을 시작한다. 시간은 금방 지나간다.     


금방 점심시간이다. 먹는 시간은 즐겁다. 오늘은 무슨 메뉴일까? 어떤 사람들은 식당 메뉴를 제일 먼저 확인한다고 하지만 나는 그 정도는 아니다. 먹는 것을 좋아하지만, 무엇을 먹을까 선택하기 위해 고민하는 것은 좋아하지 않는다. 그래서 나는 구내 카페테리아 식당에 불만이 없다. 요즈음은 혼자서 일을 한다. 그래서 밥도 혼밥이다. 혼밥이 즐겁지는 않지만 그래도 요즘은 휴대폰이 있어 좋다. 밥을 먹으면서 좋아하는 인터넷 글을 읽는다. 백인백색. 다양한 사람들의 다양한 이야기가 지루하지 않다.     


점심을 먹고 나면 내가 하루 중에 가장 좋아하는 산책 시간이다. 아쉽지만 요즘은 혼자이기 때문에 산책도 혼자다. 얼마 전부터 새로운 산책코스를 개발했다. 캠퍼스를 나와 근처 북한산 자락으로 가면 여러 코스의 길이 있다. 그중에서 가장 인적이 없고 좁은 길을 택해서 산책을 한다. 요즘은 여기저기 진달래가 활짝 피고 있다. 진달래가 많이 피어 있는 곳에 가면 딴 세상에라도 온 듯 황홀한 기분이 든다. 


북한산에는 곳곳에 조그만 절이 많기도 하다. 등산객 들을 위한 운동 시설도 있다. 조금 산길을 걷다 보면 나무 탁자가 있다. 탁자 위로 햇빛이 쏟아진다. 탁자에 잠시 앉아 졸졸 거리는 계곡 물소리를 듣는다. 가끔 산새들도 노래를 한다.     


산책을 마치고 사무실에 돌아가다가 깜짝 놀랄 일이 생겼다. 오늘 아침만 하더라도 꽃을 볼 수 없던 벚꽃 나무들에 꽃들이 꽤 피어있다. 몇 시간 사이에 따뜻한 햇살이 꽃을 피운 것이다. 정말 놀랍다. 그 순간 이런 생각이 든다. 이렇게 꽃들이 하루가 다르게 필 때는 꼼짝도 않고 몇 시간 동안 꽃나무만 쳐다보고 싶다. 오늘만 하더라도 몇 시간만 계속 쳐다보고 있었다면 몽우리만 있던 나무에서 이렇게 꽃이 피는 것을 볼 수 있지 않겠는가. 직장인이라 근무시간이야 일을 해야 하니 이런 생각은 너무 욕심 이리라.      


얼마 전 벌거벗은 겨울나무에 노란 산수유가 제일 먼저 피었다. 동네 공원 싸리 담벼락처럼 죽은 나무 같았던 황매화가 빛나는 초록으로 바뀌었다. 선홍빛 진달래가 산을 물들이고 벚꽃이 피기 시작했다. 나는 이 시간들을 붙잡고 싶다. 며칠 휴가를 내고 산수유 필 때부터 벚꽃이 활짝 필 때까지 꽃구경만 해보고 싶다. 산수유를 처음 본 것이 대략 3주 정도인가 길어도 한 달.. 언젠가 꽃피는 계절 한 달간 휴가를 내고, 한 달 내내 꽃만 쳐다보고 지내리라. 그러고 싶다.      


유독 꽃피는 계절의 흥분감과 황홀감을 느낀 것은 나이가 조금 들어서 최근인 것 같다. 젊었을 때도 꽃피는 계절이 좋기야 했지만 지금처럼 아쉽고 안타까운 감정은 없었을 테지. 겨우 오십 중반인 나도 이런데 올해 88세 되신 어머니는 더하시겠지. 아마도 내년 봄꽃을 다시 볼 수 있을까 이런 생각도 하시리라 짐작이 된다. 오십 줄인 나도 꽃구경을 하는 횟수가 그렇게 많지 않으리라. 이제라도 놓치지 않고 즐기고 싶다는 생각을 하니까.     


갑자기 아까 산에서 본 쑥도 생각이 난다. 지난 주말에 아내가 끓여준 냉잇국에서 봄 냄새가 그윽해서 좋았던 탓이다. 나는 망설이다가 아내한테 전화를 했다. 몇 마디 나누다가 혹시 쑥을 보았는데 쑥국 생각이 났다고 말했다. 아내가 다행히 핀잔은 하지 않는다. 퇴근하면서 마트에 들러 쑥이 있으면 쑥국을 끓여 주겠다고 한다. 이제부터 나도 요리를 좀 배워서 내가 먹고 싶은 게 생각나면 직접 해야 하겠다는 생각을 잠깐 하게 된다. 혹시나 저녁에 쑥국을 먹게 된다면 좋겠다.     


행복이란 무엇일까. 누군가의 말이 생각난다. 과거는 부도수표이고,  미래는 약속어음이다. 현재만이 현금이고 확실한 내 것이다. 과거의 영광과 젊음도 지난 일이요. 미래는 불확실하다. 오늘 내가 누릴 수 있는 일상의 행복을 누리는 사람이 행복한 사람이 아닐까. 나는 꽃피는 계절 꽃구경을 원 없이 즐기고 싶다. 내일은 하루 휴가를 내어서 꽃구경하러 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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