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뚝 선 나무를 올려 다 본다. 수천 개 나뭇잎들은 수천 개 귀 같다. 저마다 무슨 이야기가 저리도 많을까. 바람에 잔잔히 흔들리는 나뭇잎들은 서로 속삭이는 것 같다. 수런수런 끝없이 이야기해도 쉼 없이 들어주는 귀가 있어 나무는 이렇듯 맑고 투명한 빛을 가질 수 있는가. 나는 오랫동안 수천 개 나무의 귀들을 올려다보고 있다.
결국 일이 나고야 말았다. 그날은 여느 때와 다르게 더 소란스러웠기에 현관문을 열고 나가보았다. 할머니는 분한 나머지 앞집을 향해 입에 담지 못할 욕설을 퍼붓고 있었다. 팔순에 가까운 할머니의 눈에선 살기가 돋아 섬뜩하기까지 했다. 앞집 새댁이 아래층 할머니를 고소하였다는 것이다. 나는 어찌 해 볼 엄두도 못 내고 슬그머니 집안으로 들어와 버리고 말았다. 한참 지났을까. 조용해진 걸 보니 할머니께서 조금 진정이 되셨던지 힘이 부치셨던지 내려가신 모양이었다. 나는 그제야 안정이 되었지만 할머니의 그 눈빛만은 내내 잊히질 않았다.
평소 할머니는 자주 앞집을 방문하곤 했다. 귀가 밝은 건지 작은 소리에도 민감한 할머니였다. 손님을 치른 뒤거나 아이가 조금 뛰거나 하면 어김없이 올라오곤 했다. 날이 갈수록 할머니의 증세는 더 심해져 갔다. 아주 미세한 소리에도 할머니는 시끄러워 못 살겠다며 밤도 낮도 없이 꽝꽝 문을 두드려대기 일쑤였다. 새댁은 때로는 싸우기도 했다가 심지어는 이사를 갈 궁리를 하는듯하더니 급기야는 그 지경을 택한 것 같았다. 새댁도 오죽 괴로웠으면 늙은 어르신에게 그렇게까지 할 생각을 했을까마는 왠지 쓸쓸해지는 건 사실이었다.
내가 할머니를 조금 알게 된 건 몇 해 전 봄 무렵이었다. 길모퉁이 조팝꽃 아래 보따리를 내려놓고 힘없이 할머니는 앉아 있었다. 엘리베이터에서 간혹 마주치면 인사정도는 하였기에 단번에 알아볼 수가 있었다. 연로하신 친정어머니가 생각나기도 해서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며 함께 기다렸다가 짐을 들어 주었다. 고마웠던 할머니는 기어코 집에 들어오라고 하셨다. 썩 내키지는 않았지만 더 이상 사양하는 것도 예의가 아니다 싶어 들어가게 되었다.
집안은 눈에 띄게 정갈했다. 늘 곱게 차리고 다니시던 할머니였으니 그리 낯선 풍경도 아니었다. 이리저리 무언가를 찾으시던 할머니는 요구르트 하나를 미안한 듯 내미셨다. 이야기 한 마디 건넬 상대도 없이 혼자 어떻게 살아가실까. 할머니는 요구르트 하나를 사이에 두고 주저리주저리 옛이야기들을 쏟아놓기 시작하셨다. 한 때 잘 나가던 시절의 이야기뿐만 아니라 남편과 대학 교수가 된 아들에게조차 버림받은 한 서린 이야기까지 하셨다. 따뜻한 마음 한 자락 잠시 내 주었을 뿐이었는데 할머니는 꺼내기 쉽지 않은 이야기를 다 풀어 놓으셨다. 자리에서 일어서는 내게 기어이 요구르트를 손에 쥐어 주셨다.
할머니 귀는 왜 그렇게 위층을 향해 점점 자라야 했을까. 아주 작은 소리까지 들어야 할 만큼 커질 수밖에 없었는지. 한 때 빛나던 시절의 주인공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가장 사랑하는 이들로부터 버림받았으니 그 상처가 깊고도 깊었으리라. 지독한 외로움이 할머니를 그토록 고약한 늙은이로 만든 셈인가. 누구 한 사람 따뜻하게 다가가 할머니 이야기에 귀 기울려 주기만 했어도 저토록 고약해지진 않았을 것이란 생각이 든다.
할머니는 길에서 마주 치기라도 하면 반갑게 맞아 주시며 놀러 오라고 하셨다. 그러나 나는 연세 많으신 할머니의 끝도 없는 이야기를 들어 주기란 쉬운 일이 아니어서 은근히 피한 게 사실이었다. 또 그 만한 시간적 여유도 없었다.
할머니 처지에 대해 알 리 없는 새댁 또한 얼마나 힘겨운 나날이었겠는가. 한 인간의 외로움에 숨어 있는 영혼의 울부짖음을 들을 수 있는 귀 하나쯤 있었다면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았을지도 모르겠다.
수많은 귀를 가지고 여유 있게 흔들리고 있는 나무를 본다. 나는 누군가를 향해 귀 하나쯤 가진 적이 있었던가. 수천 개는 아니더라도 마음의 귀를 열면 나무처럼 온갖 소리들을 감싸 안을 수 있지 않을까. 들리지 않는 영혼의 울부짖음까지도 들을 수 있지 않을까. 그러고 보니 아래층 할머니 소식 들은 지도 오래다. 늘 허둥허둥 바빴으니 누구의 이야긴들 들을 수 있었겠는가. 할머니는 당신을 버린 아들임에도 불구하고 아들에게 해가 될까봐 끝내 아들 이름과 그가 다니는 학교를 밝히지 않으셨다. 잘 계시리라. 이제부터라도 할머니 귀가 아름다운 소리를 향해서만 한없이 커지길 바랄뿐이다. 점점 뜨거워지는 여름, 나무는 여전히 우뚝 서서 이 도시의 소리들을 향해 수천 개 귀를 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