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대의 장래희망

by 까칠한 현자까

어릴 적 장래희망을 적는 시간은 늘 고민이었다.
생각해보면 단 한 번도 내가 진짜 원하는 것을 적어본 적은 없었던 것 같다.
어떤 직업이 좋은 건지, 내 나이 마흔에는 어떤 일을 하고 있을지.
코찔찔이던 그 시절의 내가 그런 걸 상상이나 할 수 있었을까.

쓰고 싶은 장래희망이 없었다.
선생님은 뭐라도 써서 내라고 했고,
나는 친구의 장래희망을 훔쳐보며 따라 적었다.

그날 친구가 써둔 직업은 ‘화가’였다.
아홉 살쯤이었을까.
화가가 뭔지도 몰랐던 나는 친구에게 물었다.
화가가 뭐냐고.

그렇게 처음으로 ‘장래희망’이라는 걸 써냈던 날,
나는 그저 친구의 꿈이 멋져 보여서
화가라는 직업을 내 이름 옆에 적어 제출했다.

그 이후로도 매년 장래희망을 써야 했다.
어느 해에는 친구의 꿈이 내 꿈이 되었고,
어느 순간부터는 엄마의 꿈이 내 장래희망이 되었다.
엄마의 장래희망은 교사였다.

가고 싶은 과도, 하고 싶은 것도 없던 나의 학창 시절은
그냥 그렇게 흘러갔다.
어디에서 튀지도 않고,
대단히 특출 난 것도 없는 아이.

잘하는 게 없어
“쟤는 뭐가 되겠다”라는 말 한 번 들어본 적 없는 아이.
지극히 평범하고, 그야말로 존재감 없던 아이였다.

그런 평범한 엄마에게서 태어난 내 아이는
이상하게도 나를 하나도 닮지 않았다.
자존감이 높고, 꿈이 많다.

수시로 바뀌는 수많은 장래희망과
믿을 수 없을 만큼 당당한 포부.
그 근거 없는 자신감이
대단하고, 솔직히 부럽기까지 하다.

나는 어린 시절 늘 부족하다고 느끼며
가방만 메고 학교를 오가던 아이였는데,
내 아이는 나와 전혀 다른 성향이라
가끔은 놀랍고, 신기하다.

그 아이의 수백 번 바뀌는 장래희망을 바라보며
마흔을 넘긴 나는 이제야
‘진짜 내가 하고 싶은 게 뭘까’를 고민한다.

초등학교 6학년밖에 안 된 아이도
저렇게 하고 싶은 게 많은데,
정말 나는…
내가 원하는 게 없었던 걸까.

마흔 중반에 들어서서
이제야 다시 ‘장래희망’을 생각해 본다.

장래희망이라기보다는
지금부터 이루고 싶은 버킷리스트를
늘어놓은 것에 더 가깝지만,
다이어리에 적어 내려간 나의 장래희망은
그 시절의 내가 상상조차 할 수 없던 것들로 가득했다.

의사나 변호사처럼
지금 와서는 도저히 이룰 수 없는 직업들을 빼고도,
내가 하고 싶은 게 이렇게 많았다는 사실이
조금 놀라웠다.

어쩌면 그때 나는
내 마음의 소리를
단 한 번도 제대로 들어본 적이 없었던 건 아닐까.

아들의 수많은 꿈과 근거 없는 자신감은
사실 알고 보면
나와 닮은 게 아닐까.

부끄러워서,
이룰 수 없을 것 같아서
스스로 선을 긋고 묻어두었던
그 시절의 내 꿈들.

조금만 더 자존감이 있었다면
지금과는 다른 삶을 살고 있지 않았을까
괜히 그런 생각도 해본다.

그래서 더 늦기 전에,
내 장래희망,
내 버킷리스트를
하나씩 꺼내보기로 했다.

남들이 보기엔 어이없을지도 모를
40대의 장래희망.
한번 들어보시겠는가.

첫 번째 장래희망은
베스트셀러 작가가 되어
북토크를 열고 강의를 하는 것.

와…
이걸 쓰면서 혼자 흐뭇해하는 내 표정이라니.

베스트셀러 작가라니.
글빨 없이도 첫 책을 출간하긴 했지만
꿈이 너무 큰 건 아닐까?

전국 서점에
형제도 없이 외롭게 한 권씩,
어떤 곳에는 아예 진열조차 되지 못한
나의 첫 번째 책이
살려달라고 외치고 있는 이 와중에
나는 태연하게
‘베스트셀러 작가’라는 말을 중얼거리고 있다.

미안하다.
상상은 자유니까.

아주 잠깐만,
여기저기 출판사에서 러브콜을 받고
해리포터의 조앤 롤링처럼
밤새 상상의 날개를 펼쳐본다.

아…
상상만으로도 기분이 꽤 좋다.

“아들아, 엄마 유명해지면 어쩌지?”
푸핫.

그럼 흥미진진한 글을 써야 할 텐데…
아.
나는 오늘도 아무 생각이 없다.

아들 친구 엄마에게 판매지수까지 밀린 주제에
잠 못 자는 소설이라니.

오늘 밤에는
소설을 쓰는 대신
잠 못 자게 만드는 소설책이나 읽어야겠다.

그럼 두 번째 장래희망은 무엇이냐면,
바로 대형 유튜버가 되는 것.

이제 겨우 구독자 천 명을 조금 넘긴
돈 몇 푼 못 버는
구글에서도 인정 안 해주는
자칭 ‘구글 직원’이지만,
내 꿈은 실버 버튼을 받는 것이다.

두 번째 채널은
아직 천 명까지도
백 명이 넘게 남았지만,
언젠가는 구독자 10만을 넘겨
집에 실버 버튼을 걸어두는 것이
40대의 장래희망이다.

요즘 초등학생들이 쓰는 장래희망, 유튜버.
그걸 마흔 넘은 내가 꿈꾼다니.
내가 생각해도 웃기다.

내 꿈을 들은 동생은 말했다.
“현실적으로 가능하다고 생각해?”

음… 그러게.
첫 번째 채널로 안 되면 두 번째 채널로?

좋아요도, 구독도 누르지 않고
보고 튀는 사람들만 가득한 현실에서
10만이라니.

그런데 말이다.
마흔 넘은 아줌마가
갑자기 “야구선수 할 거야”라고 말하는 것보다,
이게 더 가능성 있는 장래희망 아닌가?

내가 슈퍼모델을 하겠다는 것도 아니고,
오타니가 되겠다는 것도 아닌데.
왜 안 될까.

마흔의 장래희망이
두 개뿐이냐고?

그럴 리가.
세 번째 장래희망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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