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구체적인 세계를 사랑하나보다.
250821 2025 아시아프 1부
작년에 처음 아시아프를 가봤으니 올해로 두 번째다. 이런 식으로 시간감을 느끼는 방법도 괜찮은 것 같다.
이번엔 서울역이다. 작년에는 백성희장민호극장이었는데. 서울역 역시 유서 깊은 공간이지. 다음은 어디일까? 이전 회차들 같은 경우에는 대학 건물을 빌리기도 했던데, 이런 식으로 헤리티지가 있는 공간에서 열린다는 것에 힌트를 얻어보면, 문화비축기지에서도 열릴만 하지 않을까? 석유 탱크니까, 인류세적 맥락에, 유기물과 무기물이 뒤섞여있었고, 다양한 이야기가 뒤섞인채로 저장된 공간…이라는 점에서 서사를 부여하기 괜찮아 보인다는 생각이 들었다.
확실히, 작년에 동남아 작가들 작품을 보게 된게 내 편견을 깨준 계기가 된 것 같다. 가만 보면, 현대미술의 영역에서 주로 우리(나와 같은 미술 문외한의 경우)는 한국 작가를 제외한 외국 작품이라고 한다면 유럽이나 영미권, 즉 서구권 작가들의 작품만 보게 되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 해봐야 일본? 간혹 중국. 그마저도 아시아계 작가거나 주로 활동하는 곳은 서구인 경우가 다수라는 편견이 있다. 내 미감과 취향, 감식안들도 다 서양미술사의 학습의 결과물 아닌가. 샌프란시스코, 뉴욕, 파리, 바르셀로나, 니스. 이런 도시들에 있는 그림들의 경우 Western Canon에 지위에 있는 것들이 다수 아닌가. 나는 그런 작품들을 찾아다녔지 않았는가. 내가 그런 작품들을 찾아다닌데에는 내가 가진 미술의 세계가 이게 전부라는 생각이 내재되어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그렇기에, 아시아프같은 경우가 아니고서야 나는 동남아 작가들의 그림을 볼 일이 거의 없을 것이다. 맥락을 모르기에, 거친 인상비평밖에 남길 수 없겠지만 다 개성이 충만하고 특히 색 사용에 있어서 원색적인 독특함이 눈에 띄였다. 고갱의 타히티 시절 색감이 독특한 것과 관련지어 생각해도 괜찮을까(보라, 벌써 여기서부터 내 미감과 상상의 방향이 서구 정전주의 아닌가)?
젊은 작가들이다보니, 확실히 “젊다”. 생각나는 키워드를 써보자. 인류세, 정체성, 현실, 일상, 노동. 아니 무엇보다 재미있다. 더러는 사무치게 아프다. 특히 제목들이. 예를 들어, 문서정 작가의 「心鏡 28」이라던가, 남지은 작가의 「바라며 36」같은 연작 작품들. 심경을 들여다보기를 아무리 못해도 스물 여덟번은 더 했을 것이고, 이루어지고 용인될리 없기에 묻어야만 하는 바람 혹은 욕망을 괴로이 내어놓기를 못해도 서른 여섯번이나 했을 것이라는게… 너무 아프다. 이들이 나와 동년배, 혹은 조금은 선배된다는 사실이 고마우면서도 저리게 아프다.
우리는 각자 좋아하는 그림에서 조금 더 머무르다가 집으로 왔다.
무엇이 더 좋았는지는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나는 현대를, 너는 고전을 좋아했다.
나는 구체적인 형태를 버린 것을 좋아했고, 너는 구체적인 세계를 좋아했다.
그래서 우리는 집으로 오는 길에 서로 사랑하는 것에 관해 이야기하지 않았다.
이야기하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 이소호, 「완벽한 실패를 찾아서」, 『불온하고 불완전한 편지』 中
이번 1부에서 제일 마음에 든 그림을 꼽으라면, 오승옥 작가의 「블루페인터」라고 단언할 수 있다. 그림 절반 가량을 채운 거친 질감의 푸른색. 그 보색인 노란색 헬멧을 쓴 노동자 셋. 그런데 가만 보면 가장 오른쪽 사람과 나머지 두 사람의 신발이 다른 것만 같다. 그냥 운동화를 신었나… 그렇게 보다 보니, 오른쪽 사람의 작업량이 터무니 없이 적어 보인다. 서투르다. 그림 속 세 사람의 시선을 따라가면, 가운데와 왼쪽의 사람은 손과 시선이 일치하는 듯 보이는데 오른쪽의 사람은 아래를 보고 있다. 두렵다. 망설인다. 준비되지 않은 채로 뛰어든 이는 당연히 서툴다.
그런 내용이 담긴 그림을 그린 사람은 얼마나 아팠을까.
그러고 보면, 이소호의 글에서 ‘너’에 해당하는 사람은 아무래도 나다. 아무래도 그런가보다. 나는 구체적인 세계를 사랑하나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