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자 보수

by Haley



이사 정리는 한 달이 넘게 이어졌다. 사회성 좋은 남편은 퇴근 후의 삶이 여전히 바빴고 나는 나름의 노하우를 살려 한번에 무리하지 말자 싶었다. 퇴근 후 일정 시간을 정해 매일 같이 조금씩 정리해 나갔다.


아무래도 가장 힘들었던 건 옷 정리였던 것 같다. 이사 온 집에 제법 그럴듯한 드레스룸을 갖게 된 나는 갑자기 정리벽이 도져 옷걸이 교체를 하기에 이르렀다. 드레스룸 정리엔 역시 통일된 옷걸이지.


참고로 드레스룸엔 에어컨이 없었다. 한 여름 더위에 선풍기 하나에 의지해 밤마다 옷더미 속에 파묻혀 있는 한 아줌마..


몇 백개의 옷걸이를 교체하며 허리 디스크가 다시 도졌지만 깔끔하게 정리된 드레스룸을 보면 짜릿하기까지 했다.


시집올 때 혼수로 장만했던, 이제는 촌스러워진 그릇들도 일부 정리하고 요즘 유행하는 트렌디한 식기들을 주문했다.


곳곳의 선반 등을 장식할 크고 작은 오브제들도 빠뜨릴 수 없지. 비로소 나의 미적 감각을 뽐낼 순간인 것이다.

순식간에 쇼핑몰 회원 등급이 VIP로 올랐다.


어느 정도 정리가 되고 나니 본격적으로 하자가 보이기 시작했다.

하자 체크는 신축 분양에 이어 이번이 두 번째인데 그때는 웬만해선 적당히 살자가 되더라니, 어쩐지 이번엔 작은 것 하나에도 아쉬움이 남았다. 한 땀 한 땀 나의 노고가 들어가서일까?

주방 아일랜드 상판에 매립한 예쁜 바흐만 콘센트가 갑자기 똑 떨어진다던지, 서랍장 레일이 어쩐지 부자연스러웠고 타일 메지의 얼룩이 거슬렸으며 겨울을 지나는 동안 필름이 터지기도 했다.

어느 날은 갑자기 욕실 거울에 달린 LED 조명에서 탁- 탁- 탁- 일정한 소리가 나기 시작했다.



아침, 저녁으로 욕실등을 켜면 어김없이 들려오는 그 소리.
아, 부숴 버리고 싶다..

그 후로도 몇 가지 크고 작은 하자들이 있었고 A/S가 바로 된 것도 안 된 것도 있었다.

그리고 그중 최고는 애증의 욕조.
1200각의 예쁜 나의 욕조는 사이즈에 맞춰 기성 제품을 넣었는데 정사각 디자인에 하수구가 정중앙에 있다 보니 배수가 잘 안 되는 문제가 있었다. 욕실은 구배가 생명인데!



정사각형 네 변의 가장자리마다 고여있는 물은 스스로 빠져나갈 생각이 없었다. 욕조를 쓰고 나면 열심히 스퀴지를 하는 날들이 이어졌다.

애당초 그렇게 만들어진 제품이었고 그러다 보니 시공자도, 설계자도, 고객(?)도 잘잘못을 가리기가 어려웠다. 그렇게 쌍방 간에 한 치의 양보 없는 지리한 시간이 흘렀다.


하지만 다행히도 나는 턴키라는 점. 결국 인테리어 업체에서 하수구가 한쪽에 있는 다른 욕조로 변경해 주기로 했다.


하자 보수를 진행하며 턴키 업체에 대한 신뢰도가 높아졌다. 만약 내가 셀인이었다면 이 모든 하자 보수를 일일이 작업자와 컨택하며 한번 더 홀쭉해졌을 지도..


나처럼 복잡한 일을 귀찮아하는 분이라면 차라리 비용을 더 지불하더라도 턴키를 추천한다.


그렇지만 잔금이 완료된 하자 수리란, 그들이 시간 날 때나 해주는 것이어서 반년이 지난 지금까지 몇 가지 하자는 끌어안은 채 오늘도 욕조 스퀴지를 하고 있다.

하자 보수를 생각하신다면 잔금은 천천히 지불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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