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번째 이사

by Haley


이사는 아침 일찍부터 시작되었다.

미리 처분할 수 없었던 가전이며 가구들의 당근 거래도 시작되었는데 각각의 구매자와 시간 약속을 잡고 시간에 맞춰 물건을 내려 전달하고, 버리는 것들의 스티커를 붙이는 등 정신없는 시간들이었다.

그사이 집을 꽉 채우고 있던 짐들이 순식간에 빠져나갔다. 다 빼고 나니 새삼 살던 집이 넓어 보였다.

썰렁해진 광경을 보니 과거 이 아파트 입주 준비를 하며 오가던 시절이 떠올랐다. 10여 년 간의 결혼생활과 내 아이의 유년기를 함께 한 집이었다.

하지만 오래 감상에 젖을 시간도 없다. 오전에 짐을 싣고 난 후 부동산에 가서 살던 집을 매도했다.

우리 집을 산 사람은 어느 신혼부부였는데 집 구경부터 계약까지 모두 시어머니라는 분이 했다. 그녀는 같은 동네 옆 단지에 사는 사람이었다.

계약 후 아들 내외와 함께 집 구경을 한 번 온 적 있었는데 거실 베란다 창을 통해 옆 단지를 보며 예비 며느리에게 이런 말을 했더랬다.

"어머 여기서 저기 우리 집이 보인다, 얘"

어쩐지 그 집 예비 며느리가 조금 걱정되기까지 했지만 내 알 바 아니지.
잔금을 치르던 날도 시어머니는 아들과 함께 부동산에 왔고 오자마자 먼저 집을 보고 오겠다고 하더니 트집을 잡았다. 이삿짐 업체에 다시 얘기해서 청소를 새로 깨끗하게 하고 가라며..

제대로 된 이사를 처음 해 본 나로선 어느 정도 수준의 청소가 일반적인지 가늠이 힘들었고 괜스레 열심히 일해준 이사 업체 직원들에게 꺼내기가 어려웠더랬다.


그래서 업체 사무실로 전화를 해서 물어봤는데 이야기가 어떻게 전달되었는지 주방 이모님이 화가 많이 나셔서 아주 맨발로 청소를 해 주겠노라며 달려가셨고... 졸지에 냉장고 정리는 내 몫이 된 슬픈 추억이 추가되었다.

이사 업체는 더운 날씨에도 열심히 정리를 했다. 새로 이사 온 집은 사다리차가 불가능한 위치여서 업체 분들은 일일이 엘리베이터로 짐을 날라야 했는데 그만큼 시간이 더 걸렸지만 친절하면서도 묵묵히 작업하셨다. 최소한 리빙 박스가 통째로 옷장에 들어가 있는 일도 없었다.

이사는 저녁때가 다 되어 끝났고 종일 한 끼도 못 먹은 나는 녹초가 되었으며 당연하게 입맛도 없었다. 그렇게 또 한 번 뜻하지 않은 다이어트에 성공하고 있었다.

새로 이사 온 집에는 1200각 크기의 대형 욕조가 있다. 과거 우리의 첫 이삿날 혼자서 뽀송하게 반신욕을 하고 나오던 남편이 떠올랐다.

"오빠, 반신욕 안 해?"

그는 대답 대신 조용히 눈을 흘겼다.

그래 오빠. 눈치 챙겨.

이사는 끝났지만 정리는 시작이다. 정리 정돈이란 내 마음속에만 있는 것이어서 남이 열심히 해줘도 결국에는 내 손으로 다 뒤집어엎어야 속이 풀리는 것이랄까.

신기하게도 정리를 위해서는 정리를 위한 정리 상자가 또 필요했는데 덕분에 하루에도 몇 번씩 쿠팡 배송이 오곤 했다. 이날부터 우리 집 현관 앞에는 매일같이 택배 상자가 쏟아졌고 남편은 포장 상자들을 내다 버리는 것이 주 업무가 되었다.

파워 J의 장점을 살려 열심히 이사 준비를 한다고 했음에도 내가 놓친 게 한 가지 있었는데
그것은 바로, 커튼.

특별히 급하지 않다고 생각해서 미뤘던 것이 폐단이었다. 한여름에 이사를 했더니 아침마다 내리쬐는 뙤약볕을 견디기 힘들었고 무엇보다 드레스룸의 창문을 통해 쏟아지는 직사광선은.. 말잇못..


아. 안돼애.. 내 옷..


한밤중에 커튼 한 장 없는 창은 어쩐지 발가벗은 느낌마저 들게 했다. 부랴부랴 커튼 업체에 연락했더니 이놈의 커튼도 2주는 걸린다고 하더라.


게다가 유난히 창이 큰 편이라 썩 마음에 들었던 이 집의 장점은 커튼 가격 앞에서 눈물이 날 지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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