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아해와 사랑해의 거리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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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만나기로 한 지 삼백 일이 조금 안 되는 날이었고 여느 때와 같은 주말 아침이었다. 너보다 먼저 일어나 커피를 내리고 토스트를 하고 너를 깨웠다. 같이 간단한 아침을 먹고 노래를 들으며 책을 조금 보다가, 다시 침대로 들어가서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는 그런 아침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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낮잠을 잔 후에 점심은 무얼 먹고 무슨 영화를 볼 지 정하자마자, 갑작스레 네가 물었다. "그런데 있잖아, 너는 나를 좋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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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 좋아하지. 그것도 아주 많이. 네가 날 좋아하는 것 보다 내가 널 더 좋아할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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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사랑은? 나는 너에게 사랑한다는 말을 한 번도 못 들어본 거 같아. 사실 나는 그 말이 하고 싶은데, 너가 하지 않으니까 괜히 나도 못 하겠단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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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나 너 답다는 생각을 했다. "음 솔직히 말하자면, 그건 내게는 좀 복잡한 문제야. 난 다른 사람들에 비해서 '사랑해' 라는 말을 꺼내는 게 어려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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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게 왜 어려워? 그냥 '사랑해' 세 글자 꺼내면 되는 건데! 단지 좋아한다는 말로는 뭔가 부족해. 만나자 마자 사랑한다고 하는 것도 문제가 있지만, 그렇다고 이렇게 안 하는 것도 문제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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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아한다는 말은 쉽지. 그런데 사랑한다는 말은 뭔가 다른 느낌이란 말이야. 만약 내가 너에게 사랑한다고 말하면 그 후에 너는 전에 없던 어떤 기대가 생길 거야. 너는 아니라고 해도 말이지. 그런데 난 내가 할 말로 인해 생겨날 마음을 책임질 수 있을지, 그게 난 어려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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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인 사이에 사랑한다는 말은 뭐랄까…. 아, 자연스러운거야 그냥. 그 말을 어떻게 받아들일지, 어떻게 견뎌낼지는 오롯이 나의 몫이지, 네가 걱정해야 할 문제가 아니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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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이건 나의 문제도 되는 거야. 나는 나의 말과 너의 마음에 책임을 지는 사람이 되고 싶어. 물론 그러지 않도록 노력하겠지만, 우리는 서로 크고 작은 상처를 주게 될 텐데 내가 사랑한다고 말하면 너도 나도 나중에 더 실망하고 더 상처 받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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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이것도 상처가 될 수 있는 걸 모르고 하는 말은 아니지? 또 사랑이 그렇게 대단한 건 아니야. 솔직히 지금도 너는 날 좋아하는 것 이상으로, 사랑하고 있다고 느끼거든. 그냥 이런 저런 걱정 다 버리고 지금 네 맘에만 솔직해지면 좋겠어 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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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 널 사랑하고 있는 게 맞을거야. 그래도 더 확신이 들 때, 울컥하고 튀어나오는 게 아니면 아직은 내게 어려운 거 같아. 어쨌든 이렇게 말해줘서 고마워. 나는 너의 이런 직설적인 점이 좋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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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어쩔 수 없지. 대신 오래는 안 기다릴거야. 그래도 난 널 사랑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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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우리는 손을 꽉 잡고 두 시간 정도 자고 일어나서 벌건 대낮부터 삼겹살을 구워 먹었다. 그러고는 샤워를 하고 영화관에 가 엊그제 개봉했다는 흔한 미국식 로맨틱코미디를 보고 집 앞 공원을 산책했다. 살랑이는 바람에 네 머리가 흔들렸는데, 무슨 일인지 내 마음도 같이 흔들렸다, 여느 때와 같은 주말인데. 그런 이유에선지 나도 모르게 입에서 툭 튀어 나와버렸다. "있잖아, 아까 영화 볼 때부터 든 생각인데, 사랑해. 아주 많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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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