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 작은 사람의 고충을
유치원 때부터 키 번호 1번은 무조건 나였다. 대충 봐도 또래보다 월등하게 작았다. 초등학교에 입학하자 출석번호가 생겼다. 난 홍 씨이기 때문에 출석번호 대로 서라고 하면 제일 뒤로 갔다가-> 키 번호대로 서라고 하면 다시 제일 앞으로 가는 수고로움을 6년간 감내했다.
중학교 2학년 사춘기를 겪으며 친구들이 두 뼘씩 자라날 때, 나는 여전히 그대로였다. 3살 터울의 여동생은 늘 키가 컸는데 기어이 내 키를 추월하고 말았다. 그 당시 가족끼리 뷔페에 갔는데 엄마는 내가 동생이랑 1살 차이라면서 나를 초딩으로 규정했다. 외식비 앞에 중2의 체면은 고려대상이 아니었다. 직원은 그럴 줄 알았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계산서에 어른 2명 초등학생 2명이라는 문구를 봤을 때 내 가슴에 대못이 박혔다.
그런데 예상치 못한 상황이 벌어졌다. 고등학교 입학 전, 겨울방학 내내 무릎이 갈릴 듯 아프더니 키가 15cm나 자라서 170cm가 된 것이다. 키가 크면 좋을 줄 알았지만 큰 오산이었다. 친구들은 나를 보고 징그럽다며 경악했다. 고무고무, 젓가락, 막대기, 소금쟁이 등등 괴상한 별명들이 업데이트됐다. 교복 치마 길이를 줄이지도 않았는데 아침마다 학생부장이 나를 의심하며 장구채로 때렸다. 그보다 더 황당했던 건 대청소 날이다. 나에게 바닥 쓸기 같은 평범한 업무는 주어지지 않았다. 반에서 키가 큰 3명은 무조건 창문 닦기, 선풍기 닦기, 커튼 빨기를 해야 했다. 특히나 커튼 빨기는 욕실 바닥에서 하는데 왜 큰 키가 필요한가. 키가 작았을 땐 몰랐던 색다른 형태의 억울함이었다.
남들보다 요란하게 성장통을 겪었다. 극단적인 성장 과정에서 유일하게 얻은 소득이 있다면 키가 작은 사람과 큰 사람 두 집단의 고충을 모두 이해할 수 있게 된 점이다. 상대방의 처지를 알면 새로운 시야가 트인다는 것을 알았다. 역지사지의 심정을 뼈 아프게 경험했음에도 최근 내 모습은 매우 부끄럽다. 일반화는 성급해지고 이해해보려는 노력은 게으르다. 하지만 내 고충만은 알아주길 아주 간절히 바라고 있다. 이제 얄팍한 싸가지는 접어두고 나와 다른 사람들의 입장을 먼저 물어봐야겠다. 그리고 답장해야겠다. ‘아 그럴 수도 있겠다’라고.
Side note:
가장 먼저 팀장님들의 고충을 들어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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