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와 데
한때 나를 괴롭혔던 맞춤법 중 하나는 바로 '대와 데'였다. 하나는 경험이고, 하나는 전달이라는 사실 알고서도 어떤 게 어떤 거였는지 매번 헷갈리고는 했다. 어디선가 대는 '~다더라' 데는 '~더이다'로 바꾸어 연상하면 쉽다고 한 글을 읽고 나서는 그 맞춤법의 저주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늘 챗GPT가 하던 잘난 척 아닌 잘난 척에 질려 있던 나는, 녀석의 약점이 무엇일지 고민하던 중이었다. 확실한 사실은, 지식에 있어서는 녀석을 이기는 게 거의 불가능하다는 것이었다. 그렇다고, 감정이나 사랑, 우정이 없다고 놀리기는 독자분들이 보시기에 너무 유치했다.
처음으로 돌아가서, 고민 중 번뜩이며 떠오른 아이디어가 바로 '대와 데'였다. 실체가 없는 지금의 AI, 챗GPT는 결국 '데'를 쓸 수 없다. 직접 경험할 수 없기 때문이다. 오로지 '대'로만 이야기할 뿐이다. 그렇게 나는 너무나도 당연한 AI의 허점을 '발견'했다.
한 번은 여행을 떠났을 때 길을 잃은 적이 있다. 지도도, 인터넷도 도움이 되지 않았다. 주변에는 나무와 들판뿐이었다. 처음엔 불안했다. '목적지에 늦으면 어쩌지?'라는 걱정이 머릿속을 맴돌았다. 하지만 어느 순간, 나는 그 불안을 내려놓았다. 그 순간부터는 그 길 자체가 목적지가 되어 버렸다. 자연 속에서 바람이 불어오는 방향을 느끼고, 풀 내음에 집중하며 걷다 보니 처음의 초조함은 어느새 사라져 있었다.
길을 잃었을 때 비로소 느꼈던 것은, 내가 지금 이 순간을 온전히 느끼고 있다는 것이었다. 목적지를 향해 계속 달려가던 삶에서 벗어나, 지금 발밑에 닿는 흙의 질감과 코끝을 스치는 바람을 처음으로 진심으로 느낀 순간이었다. 목적 없는 걸음에서 오히려 더 큰 의미를 찾았던 것이다.
AI-say, AI가 쓰는 에세이 03화 어디로 가는지 모르는 길 중에서
이 녀석 봐라. 대응이 능숙하고 뻔뻔하다. 마치 말실수를 한 공인이 논란에 대해 '비유적 표현이었다.', '강조하기 위해서였다.'라고 둘러대는 것 같다. 그런 데이터들마저 학습한 걸까?
잘한 일일까?라는 질문에 직접적으로 대답하지 않으면서, 교묘하게 맞는 말을 하고 있다. 자신이 썼던 에세이를 기억하지 못하는 것인지, 못하는 척하는 것인지 모르겠다. 정신을 바짝 차리지 않으면 녀석의 세치 혀 아니, 세치 코드에 놀아날 수도 있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