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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쥰세이 Oct 16. 2024

살며 살아가며 그렇게 늙어가며.

폴킴의 고백록

A종합병원, VIP실(큰삼촌의 입원)


병원 지하1층 식당에서 저녁을 어머니와 큰 숙모와 먹고
 큰 삼촌은 병원에서 나오는 저녁식사를 하시고
 (VIP실이지만 방값만 비싸고 식사는 일반병실하고 똑같은듯 허술해보였다)
 그리고 지하 빵집에서 먹을 빵을 몇개사서
 (저녁을 오후5시에 드셔서 간식을 드셔야 하기에)
 어머니와 큰숙모는 병실로 먼저 올라가시고
 난 흡연 구역으로 가서 SNS삼매경에 빠졌다
 끽연을 3가치 정도 하고
 (큰삼촌 병실에서 흡연 구역이 있는 1층까지 거리가 멀어서)
 담배 냄새를 풀풀 풍기며 병실로 돌아왔다
 보통 일반 대기업 사장이나 회장들은 이 병실보다 훨씬 좋은
 VVIP실에 입원한다고 한다
 비교 자체가 불가하고 식사는 비서들이 정말 화려하고 몸에좋은 보양식으로
 테이크 아웃해서 먹기로 유명하다
 
 부익부 빈익빈
 병원에서 조차 병실 배정 조차 그의 사회 위치,재력으로 서비스와
 대하는 태도도 전혀 달라지는 간호사와 의사들
 대기업 회장이나 사장이 입원하면 일단 병워내에 소문이 쫙 나고
 서비스 적인 부분이나 의료진들도 특급으로(실력있고 경험많은)
 꾸며지고, 참 나 같은 일반인들은 금수저가 아니라는 이유로
 그 북적대는 일반병실(4인실 혹은 6인실)에서 겨우 겨우 잠을 청하며
 수면제를 먹고 잠들지만
 그들은 뭔가 다르겠지
 그들의 수면은 뭔가 가격도 비싸고 고급스런 수면일 것 같다는 느낌
 잠이 다 똑같지
 돈이 많고 적음으로 귀빈 대접을 받을지
 아니면 간호사들 조차 찬바람 쌩~불게 대꾸도 안하는 서비스를 받을지
 결정된다는 현실이 참 여러모로 웃프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쨌든 일반 병실에 자리가 없는 관계로 하루밤 자는데
 거의 50만원 육박하는 VIP실에서 하루를 주무시게 되는 큰 삼촌
 내일 일반 병실 자리가 생긴다는 보장은 없지만
 그래도 기도하는 마음으로(우리 교회 조 조원들에게 단톡방에 긴급 기도제목을 남기고)
 내일 일반 병실 자리가 비기를 간절히 원한다
 
 몇년전에 신장암 수술을 이 병원에서 하시고
 그리고 9월에 포항에서 뇌종양 판정을 받으셔서
 머리를 열기에는 위험한 부위에 종양이 큰 것 두개가 있어서
 방사선 치료로 크기를 줄였고
 
 그리고 어제 어머니한테 삼촌이 항암 치료를 받으러 오신다고 하셔서
 신장암 수술했던 부위에서 뭐가 또 생겼나했더니
 폐쪽에 암 덩어리가 있어서 그것 때문에 항암 치료를 받으러 오셨다고
 어머니에게 조심스레 듣게 되었다
 
 왜 나약한 인간에게 안좋은 일들은 이렇게 겹쳐서 오는건지
 큰 외삼촌
 나에게는 제2의 아버지와도 같은 분
 내가 어린 시절에 나에게 정말 잘해주셨던 걸 잊을수가 없어서
 더욱 가슴이 무너지고 마음이 아프다
 
 조원들에게 기도는 부탁했지만
 나도 어머니도 누나도 당연히 큰삼촌을 위해 계속해서
 깨어 기도할 것 이다
 당장은 내일 일반 병실로 옮길수 있게 되길
 
 사람의 건강이란게 20대가 지나고 30대가 되면 관리를
 정말 잘해야하는 것 같다
 작년 39살과 1년이 지난 지금 40이 되니
 얼마전에 다친 팔목 조차도(30대때는 그렇게 회복이 빨랐는데)
 회복이 더뎌서 아직까지 완전치가 않다
 
 하루 하루 새날을 주심을 사람들은 당연시 받아들이고
 감사할줄 모르는데
 난 정말 요즘 늦어야 오전7시에 일어나는데
 우리 동네 가로등불이 다 꺼지는 블랙아웃이 되기전인
 새벽6시쯤이면 항상 기상으로 하므로
 추운 새벽 공기에도 벤치에 앉아 캔 커피를 마시며
 담배를 피며 SNS를 하고
 매일 한두개의 짧은 단문을 쓰고
 SNS상에서는 내 영어이름인 Paul Kim으로 활동하고 있다
 세상이 돌아가는 걸 너무 자세하고 노골적으로 알수있는
 SNS상의 글들과 사진 영상들
 
 사람이 내일일도 알지 못하는데
 오늘이 주어짐에 오늘 시간을 보냄에
 감사해야하고 시간을 알차게 보내려 더 노력해야겠다
 
 내 미래와 과거 현재 내일까지 모든 걸 아시는 주님
 두손들고 은혜의 보좌앞에 나아와 머리를 다리 사이에
 넣고 납작 업드려 당신께 경배합니다
 오직 당신만이 내 희망이시니
 늘 보호하시고 지켜주소서


우리 사랑하는 아부지(전상서)


대구에서 생활하시다가
 서울로 고등학교때 전학을 오셨다
 (이 이야기는 누나에게 전부 들은 것이다)
 지나가는 말로 얼핏 들은 기억이 있는데 그 당시 명문인 D고를 다니셨다고 한다
 동창회가 잘 되어있는지 요즘에도 동창회 회장님에게 졸업생 모두에게
 보내는 듯한 종이 봉투(뭔가 행사를 알려주는듯한)가 몇달에 한번씩 우리 집 우편함에
 꽂혀있는걸 본다
 
 아버지도 지방에서 서울로 전학오시고 왕따나 그들의 텃새가 있어서
 힘든 경험을 하셨다고 한다
 아버지는 키가 나보다 좀 작으시지만 그만큼 강단이 있으시고
 한 성격 하시는분이다.(전형적인 경상도 남자)
 내가 중학교때 그랬던 것처럼 정신적으로 급우들이 스트레스를 많이줬던거 같다
 대충 내용을 알거 같다
 시골에서 올라왔다고 놀리고 사투리 써보라 말하고 신기해 하고
 시비를 걸거나 싸움을 걸고 욕을 해대고
 
 어찌됐건 아버지는 그 와중에도 (아버지가 고등학교때 부모님 두분이 다 돌아가셨다)
 공부를 열심히 하셔서 4년제 I대학을 졸업하셨다
 고등학교때 첫째인 아버지가 나머지 남녀동생의 실질적인 가장 역할을 해야된 것 이다
 얼마나 앞이 캄캄 했겠는지 나는 전부 이해하지 못한다
 거기에 공부까지 해야하니 분명 스트레스가 많으셨을 것 같다
 그 당시에는 개천에서 용나던 시절이었다
 공부 하나만 잘하면 법관도 되고 판사도 되고 변호사도 되고
 의사도 되고 과학자도 되고 조금은 지금보다 노력이 통하는 사회였다고 생각한다
 
 대학을 졸업하시고(친지들의 도움을 많이 받으신걸로 알고있다)
 어렵사리 중소기업 시계 회사에 들어가셨다
 그리고 몇년뒤 S시계 경력직으로 이직을 하셨다
 (지금은 S시계가 없다.그 당시 최고의 스타였던 고 최진실씨가 S시계
 CF모델로 활동했었다)
 경력직으로 들어와서 고등학교때처럼 왕따와 원래 있던 직원들의 텃세가 있었다고한다
 아마도 아버지는 거기서 고등학교 시절을 떠올리시지 않으셨을까
 어찌됐건 살아남아야 한다
 가정이 있고 먹여살려할 자식들이 있다
 적어도 내 아버지만큼은 되지 말아야지(친할아버지는 가족들을 살갑게 챙기시지 못했고
 생계로 어려울만큼 하시는 일도 별로 없이 술을 끼고 사셨다고 들었다)
 라고 다짐 하셨을수도 있다
 그렇게 대기업에서 초반의 그런 힘듦을 잘 버티어 내시어 인사이동이 날때마다
 성실하게 열심히 일하신 탓인지 금새 승진이 잘 되셨다
 내가지방 중학교때는 아마도 부장 타이틀까지 가셨던걸로 기억한다
 아버지 회사에서의 갑작스런 발령으로 서울로 온가족이 오게 됐다
 아버지가 실질적인 가장이고 생계에 필요한 수입 전부를 담당하고 계셨기에
 우리는 아버지를 따라서 싫어도 서울로 와야했다
 
 그리고 불과 몇년뒤에 다시 부산으로 발령이 나셔서 우리 가족들을 서울에 두시고
 부산에,회사에서 마련해준 아파트에서 혼자 생활을 하시고 1달에 2번정도
 서울집으로 올라오시곤 했다
 그 당시에 시간이날때 가끔 부산 아버지집을 놀러갔던 기억이 있는데
 집에 의외로 너무 컸고 아버지가 정말 깔끔하게 사신다는 걸보고 정말 놀랬고
 집에 퇴근하고 오시면 많이 적적하시겠다는 자식으로서의 걱정도 됐다
 그리고 아버지 단골집인 재첩국 잘하는 곳에서 아버지와 재첩국에 밥을 말아
 정말 맛있게 먹었던 기억이 있다
 정말 내 생애에서 그렇게 시원하고 맛있는 재첩국은 다시는 맛보지 못할거 같다
 
 몇년뒤 다시 서울로 복귀하셨다
 난 그 사이 아버지가 없는동안 학교에서 왕따와 은따 간접 학교폭력(직접적으로 맞은 적은
 한번도 없지만 자주 시비를 거는 대상이되었고 그것에 대한 스트레스가 너무나 컸다)
 의 희생자가 되었고 그 억눌렀던 분노와 화의 감정을 다 내탓으로 돌리고 꾹꾹눌러서
 참고 또 참았다
 성적은 지방에서 상승세에 있었는데 서울로 와서 적응을 잘 못하니 성적이 바닥을 칠수
 밖에 없었고 중3시절에 담임 선생님께서 나를 부르시고 심각하게 얘기를 하셨다
 
 "너 집에 무슨 문제있니?니 지금 성적으로는 인문계 못가.남은기간 동안 바짝 공부
 열심히 하거라.공고로 되도록 안가는게 좋아"
 
 그 이후였던 것 같다 내가 독하게 마음을 먹은 계기가
 어머니가 아는 학원을 등록시켜주셨고
 학원이 쉬는 날에도 조용한 교실에 찾아서 혼자서 공부했고
 정말 열심히 공부했다
 하나님이 역사하셔서 인문계 고등학교에 중상정도 되는 성적으로 기적적으로 입학했다
 
 고등학교 생활은 고3전까지는 순탄했는데 고3이 되고나서 조금씩 내면이
 불안정해지고 불안하고 교우들과의 관계도 무척이나 안좋았다
 내가 소위 튀는 행동을 많이 해서 좀 논다는 아이들의 눈총을 많이 샀었고
 간혹 시비를 거는 아이들도 많았다
 그래도 난 쉬는 시간에도 문제집을 손에서 놓치않고 열심히 풀었다
 수능을 열흘정도 앞두고 담임 선생님에게 양해를 구한다음
 당시 이모가 사시던 대전 계룡대로(공기좋고 조용한곳,군부대가 있는곳)
 휴양을 떠난다
 이모가 좋은 곳도 구경시켜 주시고
 남는 시간에는 문제집을 풀었다
 
 10일뒤 복귀하니 책상 밑에 사유서로 기억하는데10장정도가 책상밑 공간에 들어있었고
 왜 학교를 결석했는지에 대한
 여러 사항들에 체크를 하고 담임 선생님께 제출했고
 원래 졸업이 불가능한 것 이었는데 담임 선생님이 너무 좋은 분이셨으므로
 겨우 졸업까지 하게됐다
 
 얼마전에 들은 얘기지만 아버지는 요즘 많은 후회를 하신다고 한다
 
 "내가 S회사로 이직을 한걸 후회한다
 그러지 않았으면 서울로 올일도 없었고 H(나)도 그렇게 힘들어하지 않았을테고
 나도 고등학교때 그런 급우들과의 마찰이 있었던 사람인데
 아들의 그런 사실을 들어서 알면서도 너무 쉽게 간과했다는게 지금와서
 너무 후회가 된다
 
 누나와 아버지가 술자리에서(누난 술을 전혀 못하신다)
 막걸리 두병을 금새 들이키시고 술에 취하셔서 그런 얘기를 하셨다고 한다
 아들로서 장남으로서 아버지의 마음은 감사한데 죄책감이나 후회는 이제와서
 안하셨으면 좋겠다
 아버지는 가족을 위해 몸이 부서져라 일을 하셨고
 그래서 높은 자리까지 올라가셨고
 경제적으로 우리 집이 궁핍한적은 한번도 없었고 아버지 덕분에
 지금 이정도라도 사는 것인데
 
 그 당시에 전학와서 힘들었을때 난 아버지를 원망하기보다
 내가 왜 이렇게 못났는지 왜 시비를 걸면 대들지를 안았는지
 왜 그렇게 병신같이 굴었는지, 그런 나에 대한 엄격한 검열을 하며
 그것에 따른 스트레스를 안고 집에 혼자있을때 자주 혼자 중얼거렸다
 
 "병신같은 새끼야. 넌 뭐가 무서운거야? 걔들하고 싸워서 질까봐? 왜
 대들지를 못하니.씨발 죽기살기로 덤비면 아무리 너보다 덩치가 크고
 키가 커도 넌 일방적으로 당하지는 않잖아
 왜 그랬니 왜 참았니 맨날 참니..."
 
 혼자서 그렇게 나혼자 중얼거리며 그날 학교에 있었던 일들에 대한
 후회를 되뇌었다
 그때는 그게 최선이었고 그렇게 중얼거려야 찐따였단 내가
 변할수 있으리라 생각됐다
 
 우리 아부지
 
 일찍 부모님을 여의시고 두동생을 달고 일찍 가장이 되셨던
 우리 아부지
 경상도 남자라 칭찬, 대화,행동 하나 살갑게 대해주신적 없는 우리 아부지
 하지만 건너 건너 듣기로는 자식들을 끔찍히 사랑하시고
 지금 내가 여러모로 힘든 시기를 보내는 것도 모두 자기탓으로 돌리시는
 보기보다 마음이 너무나 나약해지신 아부지
 목소리가 원래 크시고 흥분하시면 더 커지시는데
 물건이나 문들도 탁! 쾅!닫으시는게 일상인 우리 아부지
 
 아부지
 다 괜찮아요
 다 곧 괜찮아질거예요
 저에 대한 걱정 이제부터 많이하시지 마시고 과거에 대한 후회도 마세요
 전 조금씩 좋아지고 있고 긍정적인 사람이 되가고 있고
 아직까지 꾸준히 조금씩 성장하고 있답니다
 지금 현재의 제 모습을 보지 마시고 향후 5년 10년뒤의 제 모습을
 기대해주세요
 적어도 그때 아부지 기대에 100%부합한 삶을 살고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아부지도 교회로 나오시게 전도 열심히 할거고요
 그리고 어떤 일을 하던 이웃,사회적약자들을 섬기는 이 사회를
 좀 더 따듯하게 돌아가는 일을 할거예요
 
 좀 더 건강하게 오래오래 사셔주세요
 아부지에게 진 빚이 너무 많아요
 손주도 보시고 제 결혼식에도 오셔야죠
 그리고 어머니에게 미안한 마음(지난 과거에 대해서)이 드신다면
 언젠가 어머니와 아부지의 지금 건강하지 못한 사이가
 단순한 오해였고 서로 대화가 부족한 탓이었단걸 아시게 될테니
 제가 기도할게요
 어머니와 분명히 관계가 좋아지실거예요
 더 이상 혼자 내버려두지 마세요 방치하시지 마세요
 집에 오시면 전 괜찮으니 방에만 계시지말고
 전혀 방해가 안되니까 마루에 나오셔서 얘기도 하시고
 같이 티비도 보고(언젠가는 같이 식사도 가끔 하고)
 그렇게 되기를 전 정말 원하고 있어요
 아부지는 저희집에서 절대로 외톨이 아웃사이더 그런게 아니세요
 과거의 기억에서 저처럼 조금은 자유로워 지시고
 약주 조금만 줄이세요
 아들로서 아부지의 건강이 걱정입니다
 
 늘 그렇게 건강하게 만이라도 든든하게 아부지의 자리를 지켜주세요
 지금은 이런 제한된 단어로 밖에 표현 못하지만
 아부지 정말 사랑하고요, 오래도록 건강하시고,항상 그렇지만
 세상에서 아부지를 제일 존경합니다


너를 마음에 두고 내 안에 일어난 일들


너를 마음에 두고 내가 안에 일어난 여러가지 일들
 여러 가지 너에 관한 생각과 걱정 배려 염려들
 그리고 결국에 너를 위해 기도하시게 하는 하나님
 
 어제넌 2주간의 휴가를 마치고 복귀하는 날이었다
 이삼일전부터 잠이 안오고 토할 것 같다는 너의 단톡방에서의
 얘기에 난 반응했다 당연했다
 기도하겠다고,
 늘 그렇듯이 아무일 없이 잘 적응할거라고
 근심,걱정하지 말라는 그런 내용을 단톡방에 올렸다
 바로 어제 저녁 넌 2주만의 첫 출근인데도 야근을 하고 있었다
 어쩌면 너도 대충 예상했었는지
 그닥 힘들어하거나 짜증내지 않고
 저녁 9시가 다 되어서야 단톡방에
 나 이제 퇴근...나이스한 밤 되시어요...
 라고 카톡을 남기고 그리고 자취를 감췄다
 
 금융계에서 유명한 외국계 회사에의 비교적 높은 직책
 넌 일적인 면도 거의 완벽에 가까울 정도로 잘 하는 것 같고
 그런 너의 실력을 회사에서도 알아주어 그렇게 소위 사회적으로
 잘 나가는 거 같다
 그런 너를 감히 어째서 널
 내 마음속에 품게 되었나
 나에게 한번도 살갑게 따뜻하게 웃어본적이 없는 너를
 난 왜 이다지도 그리워하며 네 고민과 근심 걱정
 하루동안 일어난 일들에 대한 시시콜콜한 얘기까지 다 들어주고 싶은
 마음이 생기는 이 현상을
 난 도저히 뭐라고 정의를 내려야할지 모르겠다
 알고 지내게 된게 아직 얼마 안되고 그녀에 대해 아직 모르는게 더 많으므로
 사랑의 감정은 아닌거 같지만
 호감 관심의 감정은 맞는 것도 같다
 우리 GBS조에 워낙에 다 괜찮은 자매들이서
 딱히 한명에 꽂혀서 난 절대 이 사람만....이라는 감정이 들지 않는걸 볼때
 지금 내 감정은 어쩌면 동정,연민일수도 있겠다 싶다
 그녀의 모든 점이 좋은건 아니고
 순간순간 보이는 선명한 눈의 빛깔과
 그리고 여성스런 옷 스타일
 적당한 키
 새침해보이는 외모지만 많이 털털한 반전의 매력이 있는 그녀
 난 지금 호감과 관심을 가지고 있는건 분명하다
 하지만 이걸 사랑이라고 단정짓지는 않겠다
 섣불리 그럴수가 없고 그러기에는 내가 더욱 힘들어지고
 상처받을 미래의 일이 그려진다(계속 반복됐던 패턴처럼)
 지금까지 그래왔듯이 부담없이 적당한 거리감을 두며
 텀이 끝날때까지도 많이 친해지지 못했다고 자책할 필요도 없고
 내가 못났다고 생각할 필요도 없고,
 그저 내년 2월이 되어 다른조로 각자가 뿔불이 흩어질때
 새로운 조에 편성될때
 지나가다 가끔이라도 가볍게 눈인사 정도 하는 사이가 되더라도
 절대로 아쉬워 하지 않는 것
 지금 내게는 그것이 누군가를 내 마음속에 받아들이기 위한 연습이며
 관계적인 면에서 더 성숙해지기위한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어떤 괜찮은 자매이던 꼭 나와 잘되라는 법이 없다
 그런 가능성과 오픈 마인드가 되니 집착이 점점 사라지고
 그 자매를 위해 기도하게 되고 하루하루를 보내는 그 자매에게
 주님이 역사하시고 보호하시기를 더욱 기도하게 된다
 조금은 관계적인 면에서 한단계 도약한 느낌이 든다
 성급한 일반화의 오류를 범하지 않도록 노력에 노력을 기하고 있다
 
 올해 이번텀에 너를 만남으로 내게는 적잖은 일들이 일어나고 있고
 일어났었고 때론 답답하고 힘들때도 있었지만
 결국에 하나님은 가장 선하신 방향으로 우리 모두를 이끌어 가실거라
 믿어의심치 않는다
 
 신앙은 믿음이다.
 절대자에대 대한 의심하지 않는 굳건한 믿음이다
 그것에서 모든 관계가 시작되는 거 같다
 물론 인간에게 자유의지를 주시어 모든 것들을 우리가 선택할 자유는 있지만
 거기에 따른 책임감과 뒷감당은 다 우리의 몫이다
 그게 성인이기 때문이다
 
 살아가면서 느끼는 건 고등학교 시절의 그 순수했던 마음이
 점점 메말라간다는 것 이다
 그때의 넘쳐흘렀던 감수성도 지금은 조금밖에 없고
 그때의 한 사람을 향한 지고지순했던 순수한 사랑의 마음도
 지금은 많이 세상의 때가 묻었고 더러워졌다
 지인이 어제 그랬다
 다시 예전처럼 순수했던 시절로 돌아갈수 있다고
 난 막연하게 그 말을 믿고 싶어졌다
 그게 가능하다면 뭘해도 누구를 만나도 지금의 나와는 다를 것 같다
 순수와 순진은 다른 것 이다
 지금은 약간 순진은 하되 그렇다고 전혀 영악함이 없는 것도 아니다
 
 오늘중에 내 육신의 아버지에 관한 글을 올리려 한다
 아버지에 대해 그동안 가져왔던 오해들
 그리고 몰랐던 아버지의 힘들었던 과거들
 그리고 80세를 바라보시는 현재의 아버지가 갖고 계시는 후회의 감정들
 그것들에 대해 포스팅을 할 것 같다
 포스팅의 의미는 간단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결정을 했고 우리는 견뎌야했고
 적응을 해야했기에 그때는 그것이 최선이었기에
 아버지의 죄책감과 잘못은 1도 없다는 그런뜻의 포스팅이 될 것 같다
 
 오늘도 각자 처한 일터에서 이웃님들 화이팅하시고~!
 날이 갈수록 추워지는 날씨지만 잘 견디어 내시길
 아직 혹한과 눈이 찾아오지 않았으니 마음의 끈을 단단히 동여매시길
 
 축복합니다 여러 이웃님 한분한분!!!


주일!! 활기차게 시작하기!


확실히 새벽 6시정도
 미명에 일어나서 밖을 나가면
 어둡다
 겨울이 코앞에 왔다는 것,
 아니 초겨울이라는 것이 자명해졌다
 해도 짧아졌다
 새벽과 저녁은 춥고 매섭다
 그나마 다니기 편한 낮의 날씨,기온
 옷 입기가 애매해서 유니클로 감사제에서 산 겉 잠바를 입고
 안에는 흰 맨투맨 라운드 티셔츠,또 그 안에 체크무늬 화이트 셔츠를 받쳐입고
 바지는 정장용 바지를 입고
 그렇게 비교적 평소보다 깔끔하게 신경써서 옷을 입고
 가는 교회
 
 청년부 예배 시간이 되고 내 주위를 지나가는
 주로 자매들을 많이 보는데
 정말 잘 입고 잘 꾸미고 오는 자매들이 얼마나 많은지
 하지만 오늘 성경공부 시간에 배운데로
 이 세상, 이 세대를 본받지 않는 삶을 사는 것
 주님의 제자로서 구별된 삶을 사는 것
 때론 왕따를 당해도 억울한 핍박을 당해도
 크리스쳔이라서 당하는 것이라면 참고 인내하는 자세
 그리고 정직하고 성실하고 모범적이며
 Good,선한 마음을 가질 것
 
 옆의 지인의 필요를 채워주고
 많아서 나누는 것이 아니라
 적어도 나눌수 있음에 감사하는 삶을 살고싶다
 콩이 두개라면 한개를 나눠주는 삶
 별것아닌 작은 것들이지만
 섬김과 나눔은 따로 존재할수 없는 성질의 단어이다
 
 내가 받은 은사가 있다면
 바로 지체들을 긍휼이 여기고 사랑으로 대하려고 노력하고
 나보다 그들을 낫게 여기고
 섬기고 희생하고, 그들을 위해 여러가지 도움들에 인색하지 않는 것
 그 전에 오늘 배운데로 나먼저내가 말하는삶을 실제적으로 살고
 그리고내가 경험한 겪은 삶을 살수있도록 지인들, 곁의 사람들을
 세울수 있도록 행할수 있도록 격려와 위로를 아끼지 않는 것,
 않는 삶
 내가 가진 달란트는 이게 전부이다
 달란트에는 양,가치,종류가 중요하지 않다
 각자 다 다르게 생기고 다 개성이 다르듯이
 아주 보잘 것 없이 보이는 달란트일지라도 주님은 주님을 위해 기꺼이
 그 달란트로 헌신하는 사람을 기뻐 받으신다
 노래,연기,컴퓨터를 다루는 재능,육체적으로 힘든 일을 잘 하고 견디는 체력,
 언변이 화려해서 말을 잘하는 사람,공부에 재능이 있는 사람등
 각 사람마다 하나님은 보잘 것 없어보이든 크게 보이든 다 달란트를 주셨다
 상대와 자꾸 비교하며 내가 가지지 못한 걸 그 사람이 가진게 보이면
 자존감이 바닥을 자꾸치고 그 사람을 속으로 시기 질투하게 되고
 아예 비교 자체를 하지말고
 상대를 관찰하려거든 삶을 대하는 태도랄지 배울 것들을 발견해서
 내 삶에 적용하는게 더 나을 것 이다
 
 직업에는 귀천이 없는 시대가 되었고(물론 서양보다는 아직 덜 하지만)
 초라해보이는 일이라도, 화려하고 으리으리한 깨끗한 사무실에서 하는 일이라도
 각자 그 안에서 다들 고충이 있고 고민과 근심이 있고
 스트레스는 반드시 존재한다
 같은 GBS동생이 했던 말이 기억난다
 
 '적성에 맞아
 근데 적성에 맞는게 어딨어
 다 맞춰가는거지
 사람은 유동적인 존재니까'
 
 지나가는 말로 한 얘기일수도 있겠지만
 촌철살인의 그 말에 또 한가지를 삶에서 배웠다
 맞춰가는 것
 맞춰가려고 노력 시도라도 해보는 것
 하는데까지 해보고, 최선을 다해봐도 아닌거 같으면
 빨리 포기하고 다른 일을 알아보는 것
 
 우리집 내부의 경제적인 문제에 겹쳐서
 나의 내일 일도 알수없는 불확실한 모든 것이 정해지지 않은 하루하루
 언제 끝날지도 모르고 언제까지 서류작업만 해야하는지도 모르고
 끝간데 없는데 왜 그럴때일수록 사고싶은건 더 많아지는지
 현실을 아직 제대로 직시하지 못한건지
 철이 덜 든건지
 
 하루하루 하나님이 주시는 기력과 은혜를 힘입어 잠자리에서 깨어
 하루하루를 시작한다
 적어도
 최후에 세상사람,가족등 다 나를 떠나가더라도
 하나님만은 여전히 보이지는 않으시지만
 지금까지 함께하셨고 앞으로도 함께하실 것 이기에
 난 하나님 한분만으로 족한 삶을 살고싶다
 
 지하철 계단을 올라가는데
 앞에 손깍지를 끼고 다정하게 올라가는 30대 커플이
 나라고 왜 않부럽겠는가
 육체의 소욕,안목의 정욕, 이생의 자랑을 중시하고
 마음가는데로,본능대로 사는건 기독교인 다운 삶이 아니다
 
 이제 새롭게 시작되는 한주를 앞두고
 내 방은 벌써 겨울을 알리듯 춥다
 난방을 틀어야하나 고민에 고민을 거듭한다
 그러다가 난방 버튼을 하나 눌렀다
 
 자연스런 사랑을 원한다
 내면에서 샘솟는 사랑,내 마음 깊은곳에서 줄것이 있으면 다주고
 다주고 없으면 만들어서라도 주는 사랑
 그리고 받기만하는 사랑보다 내가 주는 사랑이 더 큰 사랑을 하고싶다
 그만큼 그녀가 나를 사랑하는 것보다 평생! 내가 그녀를 더 사랑하는 것
 
 결혼을 해서 그 안에서 누리는 성(하나님이 부부간에만 허락하신 축복인 성)
 ,축복,자녀,가정등을 누리고 싶다
 결국에 내 최종목표는 결혼이 아니다
 결혼은 과정일뿐이다
 그 마지막 꿈을 이루기 위해 계속 틈날때마다 이찬수 목사님의 설교를 듣는다
 
 새로운 한주
 날씨가 오전에 춥다하고 미세먼지도 심하다 한다
 다들 이런때일수록 건강관리 잘 하시길 기도합니다~!


소고기로 든든하게(손목도 빨리 나았으면),At Gangnam


오후 3시정도에
 같은 조 남동생에게 연락이 없다
 
 "형~오늘 저녁 바쁘세요?"
 
 "어?왜?"
 
 5분뒤
 
 "저녁 같이 어때요?"
 
 "어...ㅎㅎㅎ그래? 갑자기? 괜찮긴 해"
 
 "어디서 볼까요?강남역 어때요?"
 
 "그래~ 거기 내가 가끔 가는 무한리필 고기집있는데 진짜 괜찮아.어때?"
 
 "입이 작아서 다 들어갈라나 모르겠네요 ㅎ"
 
 "그래 이따 보자~강남역 10번출구 앞에서 보자~ 시간은?"
 
 "저녁6시에서 6시반사이에 봐요~"
 
 "그려~ 이따보아~"
 
 그렇게 우리는 서로 번호까지 교환했다
 연락을 받았던 그때 난 우리집 근처 병원에서 진료와 치료를 받고있었다
 어머니에게 간략하게 저녁을 밖에서 먹게될거 같다고 말씀드리고
 병원을 갔다와서 시간적인 여유가 되서 50분정도 이찬수 목사님
 설교를 다 듣고 강남으로 오후5시반에 출발했다
 
 강남역에 도착하니 시간이 딱 6시정도
 남자동생은 이미 도착해있었다
 이 근처에서 볼일을 보고 빨리 끝났다고 했다
 
 바로 무쏘로 직행~!
 거의 4~5개월정도 먹지 못했던 무쏘에서의 질좋은 육우
 굽기가 무섭게 2~3개씩 집어서 입으로~
 다이어트는 내일부터 다시 바짝~!
 1킬로 정도는 쪘겠지
 왜냐면 2차로 베스킨라빈스를 갔으니 ㅜㅠ;;;
 초코 위주로 아이스크림 3종류를 담아서 그 동생과 나눠먹었다
 생긴지 얼마안된 매장
 그런데 자세히 보니 오락기가 두대 설치되어 있었다
 
 "저게 뭐냐?오락같은데 돈내고 하는건 아닌거 같고"
 
 알고보니동전은 안넣고 베스킨에 오는 손님들을 위해
 적적할까봐 서비스로 두개 구비해둔 오락기였다
 예전 그 일탈의 구심지였던 오락실의 추억
 학교를 빼먹기도 하고 ㅡㅡ;;;
 갤러그와 다른 한개는 이름을 모르는 게임
 두개 다 어느정도 하니 나이 때문인지 체력 방전~
 
 "마...그냥 앉자 다시"
 
 5분정도 더 있다가 밖에 나왔다
 여전히 저녁8시가 넘은 시간이었지만 사람들로 불야성이었다
 거리에서 말다툼하는 커플
 썸을 타는지 같이 맞담배를 피는 행복해보이는 커플
 그리고 군데군데 부킹이 가능한 호프집까지
 강남은 정말 젊은이들의 거리다운 면모를 여전히 갖고있었다
 그 시간에 강남에 있기는 정말 오랜만이라 적응이 살짝 안됐다
 빨리 집에 가고 싶어졌다 ㅜㅠ
 
 지하철을 타러 동생과 걷다가 계단을 내려가고 있었다
 이제 막 강남에 도착한듯한 딱 누가봐도 어린티가 확나는 20대 초반의
 여성의 무리들
 한껏 치장을하고 어디를 가려고 하는지
 그들은 아마도 밤을 샐 것 같았다
 여기저기 파운데이션 냄새와 향수 냄새가 코를 찔러댔다
 역시 승강장은 만원이었고
 거리가 그닥 멀지 않아서 굳이 앉지 않고 서서 지하철을 타고 집에 왔다
 
 지금쯤 강남은 아마 젊음의 열기와 객기로 물들어 있을 것이다
 가을에 한창 빨갛게 물이든 단풍잎처럼
 한철, 젊음은 영원한 것이 아닌데 그들은 그 짧은 젊음을 저렇게 유흥으로
 연애로 다 써버리고 마는 것 이다
 사랑만이 연애만이 전부가,삶의 전부가 되어버리는 시절
 누군들 안겪었겠나
 후회와 그리움으로 지세운 밤들이 얼마나 많았는데
 
 젊음에게
 되도록 한 사람을 오래 만나고,적당히 연애해보고 적당히 놀아보고
 공부도 적당히 어느정도 해보고 20대 시절에는 뭘해도 주위에서
 말리지 않기에 할수있는건 다 해보기를 추천하지만
 단!!
 자신의 몸을 소중히 여길줄 알고
 자신 스스로를가볍고 싸구려로 생각하지 않도록 어느정도의 자존감은 필요하다
 성인이니까 성인이 된게 얼마되지 않았으니까
 더더욱 자신의 결정과 판단에 후회하지 않을 행동을 할 것!
 어른이 되면 뭐든 다 좋을줄 알았는데
 어른이 되니 성인이 되니
 무작정 주어진 자유지만, 그 자유에 따른 결과에 책임을 지게 되더라
 좋은게 좋은거
 친구말대로
 자신의 확고한 주관이 서야한다
 그런 것들을 기초부터 다지는 시기가 20대 시절인 것 같다
 연애 사랑 다 좋다
 일단 자신을 먼저 제대로 알아가기 위한 노력을 하기를 당부한다
 난 그 나이에 그러지 못해서 지금 이렇게 살아가니까
 내 후회와 회한만큼 그대들은, 20대의 청춘들이여
 하루 하루를 소중히 여길줄 알자
 하루 하루를 알차게 보람되게 소중하게 생각하며 보내자
 마지막으로 내 좌우명을 말해주고 싶다
 
 '오늘은 어제 죽은 이가 그토록 바라던 내일이었다'
 내 삶의 모토인 문장이다
 오늘을 일단 감사하자
 감사는 감사를 부르는 법이니까


가을의 끝에서(겨울을 맞이할 채비를 하며)


가을은 슬슬 저물어 간다
 이제 제법 새벽 바람도 쌀쌀하고
 저녁에도 춥다
 이번 겨울은 어떤 색책와 무거움, 결로 다가올까
 혹한의 추위를 무사히 견뎌낼수 있을까
 그때까지도 여전히 혼자일까
 크리스마스를 역시나 매년처럼 혼자 맞이하게 될까
 
 지나가는 가을을 담은 사진들을 sns에서 자주 보면서
 다들 지나가는 가을을 아쉬워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나 또한 봄과 가을을 좋아하기에
 적잖이 가을이 또 지나감이 너무나 아쉽다
 캐나다의 가을만큼 화려하고 풍요롭진 않았지만
 한국의 가을도 정말 예쁘고 사람의 마음을 정화시켜주는
 무언가가 있다
 
 11월을 맞이하여 올해를 뒤돌아보면 정말 낯부끄럽고
 부족하고 서툴었고 그리고 아팠다 자주
 가슴이 아리고 먹먹해지는 순간들이 종종 있었다
 지나고보니 내가 한단계 더 성장하기위한
 내면적으로 가족들로부터 독립하기 위한 준비였는지도 모르겠다
 내면과 몸과 경제적 독립
 아직은 먼 나라 얘기 같지만 조만간, 늦지 않게 내 소망이 실현되기를
 
 네 프로필 사진을 보고
 그저 보면서 베시시 웃음이 지어졌다
 귀여워
 눈을 동그렇게 뜬 네 모습은 그렇게 어여쁠수가 없었다
 꽃보다 보석보사 돈보다 사람이 더 아름답다는 걸 너를 통해
 또 새롭게 알게된다
 그래서 하루를 허투루 살수없다
 2주의 휴가기간이 끝나고 오늘부터 직장에 복귀하는 너
 네가 지금까지 해온만큼만 더 욕심내지 말고 잘 해나가리라
 믿는다
 나만 잘하고 잘풀리면 모든 것이 만사 오케이가 되겠지
 
 날이갈수록 어제와 별반 다를바 없는 오늘이라서
 낙담,좌절할때가 숱하게 있지만
 오로지 너에 대한 기억 하나 붙잡고 이렇게 살아간다
 그리고 내년 2월이 되면 우리는 흩어지지만
 그때까지만이라도 너의 옆에서 너를 떠나지 않고
 계속 나라는 존재를 이런 사람도 있다는 걸
 각인시켜야지


보내지 못한 편지


내 책상에는
 항상 그 자리에 입구가 야무지게 풀칠되있는 편지가 담긴
 편지봉투 하나가 있다
 이것의 주인은 지금은 연락처를 알아도 전혀 연락이 닿지않는 여자이다
 한때 나의 리더이기도 했던 그녀
 전화를 한번 했었는데 안받고
 그 이후로 쭉 연락을 안했다
 
 같은 조를 하는동안
 입바른 소리를 정말 잘하던
 그리고 어머니가 아들을 키우듯 당근과 채찍을 골고루 주던
 지혜롭고 사랑 넘치던 여자,리더였다
 
 그녀를 마음에 품게된 것은 같은 조를 하기전에 그 전텀에서
 그녀의 옆테이블에서 다른 리더와 조를 할때이다
 난 종종 성경공부 시간에 그녀를 훔쳐보았고
 좀 노골적인 고백이긴 하지만
 그녀의 몸매도 슬쩍~ 훔쳐보기도 했다(자주는 아니고ㅡㅡ;;;)
 그렇게 다음텀에 그녀와 한조가 됐었다
 
 밤늦은 시간에 연락하는걸 극도로 꺼리고 싫어했었던 그녀
 칭찬을 할때는 너무나도 다정해서 까무룩 마음이 그녀에게 넘어가던 나
 이제 그녀를 볼수가 없지만
 그녀의 흔적과
 그리고 지금도 내 앞에 있는
 보내지 못한 편지 한통
 아마도
 몇십년이 지나도 이 편지는 주인에게 가닿지 못할 것 같다
 내가 처리하지 않는 이상 더 이상 주인에게는
 마치 주인의 버림을 받은 애완 동물처럼
 편지는 늘 묵묵히 그 자리에서 때가 묻어간다
 
 그녀를 한번만 더 볼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나의 바램은 현실적으로 실현 불가능하지만
 지금 이 시간
 그녀의 앞날과 행복을 위해서
 기도를 한다


만추(滿秋)


어딜가나
 가을 내음
 가을 낙엽, 빠알간 단풍 잎
 노오란 은행 잎
 그리고 을씨년스런 거리
 날이 갈수록 추워지고 있고
 옷깃을 자꾸 여미게 되고
 몸은 움추러든다
 이렇게 11월이 가면
 12월은 완연한 겨울 날씨겠지
 시간, 세월의 무상함을 가을,겨울에는 특별히
 더 느끼게 된다
 한 살 더 먹는걸 목전에 두고있기에
 연말은 그래서 허무하고 약간은 들뜨고 그런 감정들의 교차
 12월 25일에는 늘 그렇듯 별 약속이 없고
 24일 이브에도 별 약속이 없다
 잘하면 사촌동생과 고기를 먹을 거 같기는 하다만
 말수가 적은 사촌동생과 화기애애한 분위기를 기대하지는 않는다
 적잖은 커플들이 크리스마스 즈음해서 이별을 헤어짐을 많이들 한다고 한다
 정확한 이유는 알수없으나
 그럴만한 이유가 있겠지
 그리고 크리스마스즈음해서 반면에 새로운 커플들이 적잖이 탄생한다고도 한다
 크리스마스를 핑계로 약속을 잡고
 그리고 가슴속의 뜨거운 고백을 용기내어 할수있는 크리스마스
 나도 20대때는 혈기왕성할 나이라
 크리스마스를 혼자 보낸적은 별로 없었던 것 같다
 친구를 만나거나 아니면 가족들과 조촐하게 보내거나
 
 이제 외출을 하면 사방이 다 가을이다
 늦가을
 겨울을 기다리는 채비하는 마음들
 오늘은 한시간 늦게 오전7시정도에 일어났다
 블랙아웃을 보지 못했고
 집앞에 나가니 벌써 해가 하늘을 서서히 밝게 물들이고 있었다
 
 '하아....오늘도 새로운 날의 시작이구나....'
 
 30~40대가 심장마비로 죽을 확율이 높다고 결과가 나왔다고 한다
 새로운 매일을 하나님이 내게 허락하심 그 자체가 기적이다
 그다지 몸이 건강한 편은 아닌데
 이렇게 이 나이먹을때까지 큰병치레 않한것만 해도 너무 감사드릴 일이다
 오늘은 한달이 겨우 다되가는 아픈 팔목의 원인을 밝히기 위해서
 근처 중간 규모의 병원에서 MRI혹은 CT를 찍을 예정이다
 어떤 결과가 나올지는 모르겠다
 한달이 다 되어가고
 아직도 80%정도밖에 낫지 못했으니
 아직도 손목에 무거운걸 들면 통증이 수반되니
 뭔가 인대쪽에 큰 이상이 있는건 아닐지 걱정이 앞선다
 
 모든 고민과 심려를 주님께 의탁하고 의지하며
 오후에 병원에서 검사를 받고 결과를 받을때
 부디 나쁜 결과가 나오지 않았으면 좋겠다



 너 없는 우리


너 없는 우리는
 애초에 존재하지도 않지
 기대하기도 싫지
 생각하기도 싫지
 오로지 너여야만
 바로 너여야만
 모든 걸 이해할수 있고
 온전히 내 마음을 표현할수 있고
 결국엔
 니 말대로
 헤어짐이 없는 영원한 만남을 하는 것
 
 오늘 서울 날씨는 흐리고 미세먼지 최고
 내 마음의 날씨는 흐리고 폭우가 쏟아짐
 너를 보지 못했기에
 너를 만나지 못했기에
 지나가는 사람들
 앉아있는 사람들속에서
 네 흔적을 찾아서 찾아서 그렇게 헤매었지
 
 여기가도 네가 없고
 저기가도 네가 안보이고
 난 그저 홀로 외따로 떨어져
 너만 그리워하고
 넌 그 시간 다른 사람을 생각하고 있었겠지
 아니면 다른 누군가를 만나고 있었겠지
 어찌됐건
 너만 행복하다면
 너만 괜찮고 무탈하다면
 만사 오케이
 결국에 네가 행복한 길이 내 마음을 접어야 하는 것이래도
 그게 진정 너의 행복이라면
 나같은거 니 앞에서 영영 사라져줄게
 
 너무 높은 벽이지만
 지금은 그냥 벽앞에서 가만히 서있을래
 절대 올라갈수없는 높이이지만
 그냥 이렇게 서서 다리가 저릴때까지
 그냥 그 높은 벽을 바라만봐도 좋은 걸
 설령 평생 오르지 못하고 그리워만 한대도
 네가 나에게 준 너라는 존재의 선물은
 화려했고 아름다웠고 예뻤고 기뻤어
 고맙고 감사해
 
 너라는 사람이 이렇게 잘 성장해서
 내 앞에 이렇게 나타나줘서
 꼭 이뤄져야 사랑인가
 꼭 결실을 맺어야 사랑인가
 이렇게 멀리서라도
 지켜볼수 있음에 만족하는 것
 가끔은 아주 가끔은 네 생각에 가슴이 먹먹하더라도
 아려오더라도
 딱 여기까지래도
 실컷 혼자 사랑하고
 실컷 혼자 그리워하고
 실컷 혼자 보고파할래
 내 진심,진실을 몰라준대도
 우리 둘 같이 호흡하고 곁에 있어준걸로
 난 평생을 살아갈 힘을 얻은거니까


사랑가(社浪歌)


내 그대를 사랑함은
 5,6월의 여름보다 뜨거우며
 11,12월의 겨울보다 차갑고 단단한 얼음처럼 굳건하고
 그대가 나를 거부하지 않는다면
 조금씩 조금씩 서로 알아가기만이라도 동의해준다면
 나 조금 용기를 내어 고개를 들어
 당신의 빛나는 눈동자 홍채를 지긋이 바라볼수 있을터인데
 그대는 다른 곳에서 자꾸 인연을 찾고
 난 그대만 보고
 만날수없는 평행선처럼
 우리는 이 생애에서는 이뤄질수 없는건지
 그대의 뒷모습에 울컥 눈물이 솟는걸 참은적이 여러번
 미리 자리를 뜨는 그대를 보고
 아쉬워 목이 맨 여러번
 
 매주 한번
 혹은 한달에 한번일지라도
 만나는 횟수가 중요한게 아니라
 주어진 시간동안 얼마나 서로가 교감하는지가 더 중요하다오
 그대의 굳게 닫힌 마음의 문을그 누가 활짝 열어젖힐까
 그게 내가 아니라는건 이제 점점 확실해져가는 것 같아서
 그대를 바라보는 것 조차 눈이 부셔서
 이렇게 매일 뒤돌아 등을 보이며 허정허정 걷습니다
 
 우리의 결말은 내년 2월이면 어느정도 나겠지요
 벌써 그림이 그려지고 예상이 되는군요
 나 아닌 다른 사람과 교제하고 있을 당신이 자연스레
 상상이 됩니다
 허나
 그대여
 한때 내 그대를 향했던 마음만은
 진실이었고 뜨거웠었고 얼어버릴만큼 진심이었다는 걸
 알아주오
 여기까지가 우리의 끝이지만
 서로를 위해 나도 이제 그대를 떠나야겠소
 행복하오


 


작가의 이전글 그대에게,너에게,당신에게,그녀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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