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년 5월, 창원의 중심 상업지역인 상남동의 10층 빌딩 1층에 공인중개사 사무실을 개업한 지 하루나 되었을까? 사무실 문을 열고 청소를 하는 그 순간에 환경미화원 복장을 하신 아저씨 한분이 선뜻 사무실에 발을 들여놓지 못하고 제게 묻습니다.
"여기 어디에 커피 자판기가 없습니까?"
" 네~ 이 빌딩에는 5층 학원 입구에 커피 자판기가 있고 다른 곳에는 없네요~"
커피 한잔을 마시려고 해도 자판기가 없어서 한동안 자판기를 찾아 헤매셨다는 그 아저씨께 그러면 우리 사무실 안에 자그마한 커피자판기를 설치해 놓았으니 들어오셔서 커피 한잔 하시라는 저의 말에 아저씨는 미안한 표정으로 망설이는 듯하더니 조심스럽게 사무실 안으로 들어오셨습니다.
날마다 아무 때나 커피 생각이 나시거든 망설이지 마시고 우리 사무실에 커피를 마시러 오시라고 했더니, 대번에 그 아저씨는 그러면 미안해서 어떻게 하느냐고 하십니다.
그렇게 시작이 된 그 아저씨와의 인연. 곧 연세 60이 다 되어가는데도 불구하고 남들이 선뜻하기를 꺼려하는 궂은일을 하면서도 자신이 하는 일에 대해서 자부심도 대단하시고, 주변 사람들에게 폐 끼치지 않고 32평 아파트를 분양받아서 살고 있노라고 자랑스럽게 말씀하시고는 했습니다.
개업을 한지 며칠이 지났음에도 아직 계약서 한 장을 쓰지 못한 저의 처지를 저보다 더 안타까워하셨고, "커피 생각이 날 때마다 망설이지 마시고 오세요"라는 저의 그 한마디에 저에게 그만 홀켜 버리고 말았다는 그분은 이제 곧 결혼을 해야 하는 큰아들과 작은 아들, 아들만 둘인데 꼭 저 같은 며느리를 보고 싶다고 하셨습니다.
며칠 후 제가 처음으로 부동산 중개계약서를 쓰고 도장도 찍었다고 자랑스럽게 이야기를 했더니, 저보다 얼마나 더 기뻐하시던지요...
그런 성씨 아저씨께서는 날마다 커피 한잔을 공짜로 얻어먹기 부끄럽다고 사무실 쓰레기통을 며칠마다 한 번씩 비워 가시고는 합니다.
우리 집의 쓰레기도 가져오면 다 실어 가시겠다고 하셨지만, 그렇게까지 안 하셔도 된다는 저의 말에 3일에 한 번쯤은 사무실 쓰레기통을 말끔하게 비워 가시는 환경미화원 성씨 아저씨.
그분과의 만남은 제가 사무실을 개업한 후 처음으로 갖게 된 마음 따뜻한 만남입니다.
그리고 간혹, 아주 급하게 아무런 준비도 없이 빌딩 1층 화장실에 왔다가 우리 사무실에 찾아와서는 휴지를 달라고 하는 사람들도 계시고, 차가운 물 한잔을 마시자고 청하는 분들도 여럿 계십니다.
부탁을 하시는 분이 행여나 미안해할까 봐 더욱 반갑게 원하는 만큼 휴지를 가져다 쓰게 하거나, 마시고 싶은 만큼 물을 드시게 하면 너무도 고마워하십니다.
얼마 전에는 우리 빌딩 뒤편의 널찍한 공터에 텃밭을 일구어서 여러 종류의 채소를 가꾸시던 할머니 한분이 시원한 물 한 컵을 청해 마시고, 또 빈병에 물을 가득 채워 드렸더니 풋고추 한주먹을 따다가 사무실 탁자 위에 놓고 가셨습니다.
그 풋풋하고 시골스러운 마음을 느끼노라면 부동산 중개사무실을 개업하고 나서 이런저런 크고 작은 일로 속이 많이 상했다가도, 아직은 그래도... 하면서 마음속에 작은 위안을 삼아 보기도 합니다.
급하게 팩스를 보내고 싶어 하는 아저씨께 사무실의 팩스 사용을 허락했더니 차가운 캔커피 2개를 어느 사이엔가 제 책상 위에 나란히 남겨 놓았던 일, 제가 사는 아파트의 동별 평형이 적혀있는 서류 한 장을 복사를 해 드렸더니 당근 주스 한 박스를 저도 없는 사이에 사다 놓고 가신 학원 원장님..
뉴스 시간이면 마음에 충격을 받을 사건들이 넘쳐 나는 요즘 사람이 살기에 세상은 너무 살벌하다는 말들을 하지만, 그래도 이렇게 크고 작은 따뜻한 마음을 나누는 사람들이 많기에 그래도 세상은 살만하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