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얀이라는 친구가 있었다.
같은 판잣집 동네와 시장 건물 동네에서 살던 친구였다.
하얀이 위로 노래 잘하고 곱게 생긴 언니가 있었고 밑으로 동생 둘이 있었다.
다 딸이었다.
하얀이 부모는 시장에서 온종일 채소장사를 했으므로
동생들의 육아와 살림살이를 하얀이와 언니가 맡고 있었다.
하얀이는 눈꼬리가 치켜 올라가 사납게 생겼을뿐더러 실지로도 사나웠다.
그런 하얀이와 나는 매일 싸우면서도 잘 어울려 놀았다.
하얀이의 등에도 내 등에도 막냇동생이 업혀 있었다.
어느 날
이유는 기억나지 않지만 하얀이와 나는 동생을 업은 채 쌈이 났다.
여자아이들의 싸움이란 기본적으로 누가 선빵을 날리느냐가 중요했다.
그 선빵이란 머리채를 먼저 잡는 것이었다.
그날은 내가 먼저 머리채를 휘어잡았다.
그런데 사나운 하얀이가 더 세게 잡았다.
“놔! 안 놔!”
서로 막 욕을 퍼부으면서 놓으라고 소리를 질러댔다.
성난 쌈닭처럼 피가 터질듯했다.
사람들이 몰려들어 구경을 했다.
둘 다 아이를 업고 싸우는 꼴이 볼만한 구경거리였던 거다.
창피하기도 하고 울고 싶기도 하고
그냥 내가 먼저 놓을까 하다가도 조금만 버티면 내가 이길 것 같기도 하여
정말 안간힘을 쓰며 버티고 있었다.
그 순간
구경꾼들 사이에 엄마가 보였다.
“다행이다. 엄마가 말려주겠구나!”
라고 생각하면서 좀 더 버텨보기로 했다.
그런데...
엄마가...
그냥 구경만 하고 있는 게 아닌가?
“엄마, 내 엄마 맞아?
이렇게 동생을 업고 싸우고 있는데 구경만 하고 있다니!
아마 나는 분명히
다리 밑에서 주워온 아이일 거야!
친엄마라면 그럴 수는 없지!”
짧은 순간 평소에 품고 있던 생각과 함께 눈물을 찔끔 거리며 버티고 있었다.
결국 하얀이가 먼저 울면서 머리채를 놔버렸다.
내가 이긴 셈이다.
쌈박질에서 이기긴 했지만 기분이 몹시 좋지 않았다.
말리지 않고 구경만 하고 있던 엄마가 원망스러웠다.
집으로 들어가자마자 울면서
“왜 말리지 않았어? 왜? 왜? 내가 얼마나 힘들었는지 알아?”
라며 엄마한테 막 대들었다.
엄마는 아무렇지도 않게
“니가 이기고 있는데 왜 말리니?”
라고 했다.
수십 년이 지난 지금...
이 글을 쓰면서도
괜스레 서럽고 착잡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