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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황미숙 Jun 24. 2020

'꼬마신랑의 한'

내 생애 첫 영화 감상

    

우리가 살던 시장 건물 입구 쪽에 10원에 다섯 개 하는 풀빵 집이 있었다. 몸집이 커다란 언니가 앉은뱅이 의자에 앉아 풀빵을 구웠다. 풀빵이 곧잘 팔려 풀빵 집 온 식구들은 풀빵을 팔아 입에 풀칠을 하고 사는 듯했다. 나는 그 집 풀빵을 좋아했다. 푼돈이라도 생기면 언제나 풀빵 집으로 향했다. 풀빵을 사 먹을 때 요령이 있다. 재고로 쌓인 풀빵은 식어서 맛이 없다. 그래서 나는 언제나 갓 구운 풀빵을 사 먹기 위해 재고가 다 팔릴 때까지 옆에 서서 기다렸다가 노릇노릇하고 파삭하게 구워진 풀빵을 사 먹는다. 그러면 단골임에도 불구하고 풀빵 집 언니는 나를 흘겨보기도 한다.



풀빵이 잘 팔리다 보니 풀빵 집은 하나둘씩 물건을 비치하고 팔기 시작했다. 오가는 사람이 많은 곳이라 영화 포스터도 붙이기 시작했다. 풀빵 집은 영화 포스터를 가게에 붙이는 대가로 동시 상영극장으로부터 서너 장의 영화표를 얻는다. 그러면 영화표를 얼마간의 구전(口錢)을 붙여 사람들에게 다시 판다.


어느 날 엄마가 표 한 장을 샀다. 엄마는 그 영화가 정말 보고 싶었던 모양이다. 제목은 ‘꼬마신랑의 한’이었다. 그 영화는 1973년에 개봉된 청소년 관람불가 영화였다. 나도 풀빵 집을 지나치면서 영화 포스터를 본 적이 있었다. 포스터만 봐도 정말 공포 그 자체였다. 구렁이의 모습이 포스터 전면을 덥고 있었고, 머리를 풀어헤친 하얀 소복을 한 여자가 입에 피를 흘리며 슬픈 모습을 하고 있었다. 게다가 꼬마신랑인(당시 아역배우 이승연) 역시 입에 피를 흘리며 울부짖고 있었다. 그리고 그 옆에는 해골도 그려 넣었다.


당시에는 유난히 한(恨)과 관련된 귀신영화가 많았던 것 같다. ‘며느리의 한’, ‘옥녀의 한’ 등등... 내용은 한을 품고 죽은 사람이 귀신이 되어 원한을 갚는다는 이야기다. 당시 텔레비전에서 한창 인기 있었던 ‘전설의 고향’의 내용도 그런 류가 많았다. 전설의 고향을 방영하는 날이면 시장통의 만화가게가 미어터졌다. 텔레비전이 흔하지 않았던 시절이었으므로 주로 만화가게에서 돈 주고 TV프로를 볼 수 있었다. 만화가게에서 10원짜리 표를 만들어 판다. 말하자면 그 표가 입장권이다. 어린이였던 나와 동생은 좋아하는 프로를 보기 위해 가짜표를 만들어 들어가기를 시도한 적도 있다. 짠하게 여겼던 만화가게 할아버지가 그냥 들여보내 주기도 했다.  



어쨌든, 극장표를 산 엄마는 혼자 가기가 뭐했는지 청소년 관람불가임에도 4학년인 나를 데리고 갔다. 불은 꺼지고 영화가 시작되었다. 첫 장면부터 흉가에서 구렁이가 득실득실 나오더니 그야말로 포스터는 저리 가라였다. 시골에 살면서 옛날이야기로만 들었던 상상 속 귀신 이야기가 총천연색으로 눈앞에 펼쳐졌다. 나는 처음부터 끝까지 눈을 가리고 어두컴컴한 극장에서, 공포 속에서, 영화를 보는 둥 마는 둥... 봤다.


영화를 보고 돌아온 나는 혼비백산이 되었다. 밤새 꿈을 꾸느라 잠을 자지 못했다. 구렁이가 내 몸을 휘감는 꿈, 우물에 던져지는 꿈, 등 뒤에서 하얀 소복을 한 여자가 나타나 나의 목을 조르는 꿈을 연속해서 꾸었다. 그러다 보니 가위에 눌려 신음을 소리를 냈던 모양이다. 영문을 몰라하시던 아버지가 아이한테 무슨 일 있었느냐고 엄마한테 물었다. 사실 엄마는 영화를 보고 나오면서 나에게 절대 아버지한테 말하지 말라고 입단속을 시켰다. 결국 엄마는 이실직고를 했고, 아버지는 노발대발하면서 아이한테 못 볼 걸 보여줬다며 엄마와 부부싸움을 했다.

 나는 낮에도 밤에도 난리에 난리를 구경했다.


첫 영화 감상 후 나는,

수년이 흘러서야 겨우 영화를 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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