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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형민 Oct 06. 2024

Ep3| 제2외국어로 일본어를 만난 뒤

2004년 3월, 고등학교 2학년으로 진학했다. 한 가지 특별할 게 있다면 제2외국어로 일본어를 선택했다는 점이다. 겨울방학 내내 손에 불이 나도록 깜지를 써댔던 히라가나와 가타카나를 학교에서 마주할 시간이 다가왔다. 공부에 영 흥미가 없었지만 일본어 시간만큼은 기다려졌다.


수업 종소리가 울리자 교실 문을 열고 한 중년 남성이 걸어 들어왔다. 짧은 반곱슬머리에 네모난 안경, 살집이 있는 동그란 얼굴에 조금 튀어나온 배. 일본어 선생님과의 첫 대면이었다. 어딘가 일본 드라마에서 보던 일본 아저씨 같은 느낌이었다. 선생님은 칠판에 본인의 이름을 한자로 적었다. 그리고 자기소개를 이어나갔다.


"안녕하세요. 일본어를 맡게 된 장(張:ジャン)입니다. 초등학교 때까지 일본에서 살다가 왔어요."


기간제 교사로 새로운 선생님이어서 안면은 없었다. 그러나 낯설지 않은 외모와 일본에서 살다왔다는 말 때문이었는지 금세 친근하게 느껴졌다. 아이들의 흥미를 돋우기 위해서인지 일본어 자체보다는 일본에서의 유년기 추억 이야기라던가 일본에 대한 질문에 답을 해주었다. 어떻게 하면 안걸리고 잠을 잘 수 있을까를 고민하던 다른 수업때와는 달리 말똥말똥한 눈으로 집중해서 들었다. 일주일에 두 시간밖에 없다는 사실이 원망스럽기까지했다.


레- (礼:れい. 수업시작 전 '차렷, 경례' 하는 것과 비슷한 일본의 수업인사 방식)

요로시쿠오네가이시마스 (よろしくお願いします. '잘 부탁드립니다.' 일본어 표현)


수업은 일본학교와 같은 인사로 시작되었다. 교과서 첫 페이지는 히라가나 익히기다. 다른 아이들이 이제야 둥글둥글한 일본 문자를 접하기 시작했다. 나 홀로 페이지를 뒤로 넘겨 인사, 소개, 취미 등 다음장으로 진도를 나갔다. 선행학습의 묘미를 제대로 만끽했다. 히라가나만 공부할 때보다 더 재미있었다. 적어도 일본어만큼은 우등생이라고 자부할 수 있었다.


시간이 흘러 6월이 찾아왔다. 날도 제법 더워지기 시작했다. 교실에 있는 벽걸이 선풍기 4개 모두 고개를 좌우로 왔다 갔다 하며 바람을 날려 보냈다. 여느 때처럼 수업이 끝나고 복도를 지나가고 있을 때 한 포스터가 눈에 들어왔다. 여름방학 '일본 홈스테이' 참가단 모집. 당시 서울과 지방학생들 간 홈스테이 교류는 종종 있었다.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포스터를 살펴보기 시작했다. 기간은 3박 4일에 모집인원은 속초시내 중등학교 20명 내외, 선발기준은... 내신 성적.


사실상 공부와 담을 쌓았기 때문에 내신은 바닥이었다. 20명 안에 들어가는 건 도저히 불가능했다. 일본어 선생님이 이번 홈스테이 운영단장이어서 우리 학교 학생들이 많이 참가하면 좋겠다고 했다. 몇몇 내신 좋은 아이들이 참가신청을 했다. (물론 일본어는 내가 그들보다 위였다.) 나와는 연이 없다고 애써 자기 합리화를 하며 한 주, 두 주를 보냈고 모집이 마감되었는지 포스터가 떼어졌다. 그러나 머릿속에서는 내용이 잊혀지지 않았다. 때마침 청소담당 구역이 일본어 선생님이 계신 학생 주임실이었다.


"선생님, 저 일본 홈스테이 너무 가고 싶어요!"

> "미안하지만 안돼. 이미 모집인원 마감 되었어."


"방법이 없을까요? 수업시간에 말썽 안 부리고 열심히 잘 들을게요.. 제발..!"

> "음... 좋아. 내가 어떻게든 자리 추가로 만들어 볼게. 대신 기말고사에서 100점 맞는다는 조건이야."

"감사합니다!"


학생 주임실에 선생님이 계실 때면 홈스테이에 참가하고 싶다고 말씀드렸다. 선생님이 안된다고 하면 시무룩한 표정으로 뒤돌아 섰지만 쉽사리 포기가 되지 않았다. 다음날, 또 다음날도 계속해서 찾아갔다. 선생님이 안 계실 때를 대비해 적어둔 장문의 편지를 책상 위에 올려두고 나오기도 했다. 어느새 선생님도 지치셨는지 아니면 내 진심이 느껴졌던 것인지 조건부 승낙을 받아낼 수 있었다. 그리고 약속대로 기말고사에서 일본어 100점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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