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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형민 Sep 29. 2024

Ep2| 일본어를 그리다_하(あ)행에서 가타카나까지

は、ひ、ふ、へ、ほ

하, 히, 후, 헤, 호


어느덧 히라가나 공부도 후반전에 접어들었다. 아행부터 타행까지는 그런대로 생김새가 확연히 달랐다. 한눈에 동양인, 서양인 구분이 되는 것처럼. 그런데 나행부터 시작해서 마행이 다다르자 이게 나인지, 하인지, 마인지 헷갈리기 시작했다. 이 중 메(め)는 앞서 외웠던 누(ぬ)와 너무나 닮아 있었다. 밑 꼬리를 말고 가느냐 아니냐 차이다.


ま、み、む、め、も

마, 미, 무, 메, 모


그다음으로 맞닥뜨린 야행(や行)은 감사하게도 3자로만 되어 있다. 야, 유, 요. 생김새는 어딘가 아행과 비슷하다. 그래도 세 가지만 알면 되니 감사할 따름. 야행은 그 자체로도 쓰이기는 하지만 한글의 모음처럼 글자 옆에 붙어 새로운 음을 만들어 낸단다. 대신 작게 써서.


や、ゆ、よ

야, 유, 요


이제 정말 끝이 보인다. 라라라~♫ 콧노래가 절로 나오기 시작한다. 라행(ら行)는 한글 'ㅎ'과 알파벳 'Z'와 엇비슷한 위치다. 이쯤까지 히라가나라를 쓰면 샤프 밑단을 받치고 있던 오른쪽 중지 손톱밑 좌측면이 얼얼해진다. 그래도 종착점에 거의 다 왔으니 조금만 참아보자고 스스로를 다독이며 한자씩 쓰며 외운다. 그런데 갑자기 급제동이 걸렸다. 레(れ)라는 글자와 마주치자마자 네(ね)가 떠올랐다. 그 뒤를 이어 등장한 로(ろ)는 루(る)와 비슷하다. 마지막까지 방심할 수 없었다.


ら、り、る、れ、ろ

라, 리, 루, 레, 로


일본어 공부를 하겠다고 결심했던 것보다 오십음도를 여기까지 써온 나 자신에게 감탄했다. 시험기간을 제외한다면 온전히 내 힘만으로 장시간 의자에 엉덩이를 붙이고 있었던 적이 없었다. "와! 이게 되네?" 그런 놀라움이 담긴, 마지막 와행(わ行)다. 그리고 무려 야행보다 한 자 적은 두 자로 구성되어 있다. 사실 내가 공부했던 교재에는 ゐ(wi)와 ゑ(we)가 있었지만 현대 일본어에서 발음은 '이(い)'와 '에(え)'와 같아 현재는 거의 사용되지 않는다고 한다. 외우느라 조금 고생하긴 했지만 복습할 필요 없음에 감사했다.


わ、を

와, 오


마지막으로 오십음도에 속하지는 않지만 히라가나 맨 마지막에 자리 잡은 응(ん)이 있다. 이 글자는 단독으로 쓰이지 않고 받침의 역할만 한다. 그냥 물결모양으로 사인하듯 흘려 적으면 되니 금세 외워졌다. 이렇게 오십음도 공부가 끝이 났으니 본격적으로 일본어 세계에 들어가는 일만 남았다며 기뻐했다. 자막 없이 일본애니랑 드라마를 보고 여행 가서 프리토킹하는 모습을 상상해 보았다. 그리고 다음에 펼쳐질 일본어 회화 내용을 기대하며 페이지를 넘겼다.


제기랄...!


입밖으로 탄식이 세어나왔다. 손가락에 불이 나도록 연습장에 깜지를 쓰며 이제야 겨우 끝이 났다고 생각했는데 카타카나(カタカナ)라는 새로운 히라가나... 아니 50음도표가 자리 잡고 있었다. 생긴 것도 어찌나 날카롭던지. 일본어가 귀여워서 시작했는데 이건 배신이었다. 영어에서 대문자와 소문자를 따로 외우던게 생갔났다. 생김새도 전혀 다르다. 심지어, 심지어! 더 안 외워진다. 여기서 포기해야 하나 싶은 생각이 수십번은 들었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 벌어졌다. 나도 모르게 샤프로 손이 가더니 다시 아행(ア行)에서부터 와행(ワ行)까지 히라가나때와 마찬가지로 연습장을 빼곡히 채워가기 시작했다. 안 외워지면 외워질 때까지 썼다. 지금처럼 인터넷에 일본어공부 자료를 손쉽게 구할 수 있던 때도 아니었다. 요령은 없었다. 손이 기억할 때까지 또 쓰고 또 썼다. 유난히도 폭설이 많이 내렸던 속초에서의 고등학교 1학년 겨울방학. 일본어 공부로 손 시릴 틈 없이 순식간에 지나가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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